환상(幻想, fantasy)은 현실성이 없거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말한다. 어린아이들일수록 환상의 세계를 좋아한다. 환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결핍 등을 원하는 방법으로 채우고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상 속이라면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자유자재로 경험할 수 있고 아이의 내면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영역이다. 환상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며 내적 세게 와 외적 세계를 조화롭게 만들어간다.
아이가 성장하여 어린이 되면 점차 환상의 세계는 줄어든다. 내가 어려움에 처할 때 나를 구출해줄 백마 탄 왕자님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된다. 내 삶은 내가 구출해야 하고 내가 아무리 착한 사람이 되어도 깜짝 선물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환상 속에서 벗어날 나이가 되었는데도 헛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쓴소리를 듣게 되고야 만다.
"정신 차려, 이건 현실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어린아이 일 때는 환상이든 상상이든 공상이든 그 세계를 맘껏 누려도 좋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동물이 말을 하고 나를 지켜주는 천사가 내 주위에서 나와 대화를 한다는 환상은 어린아이에게는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큰일 아닌가.
어른이 된 이후에도 갖게 되는 일상적인 환상은 얼마든지 많다.
- 최선을 다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내 몸은 잘 견뎌줄 거야
- 지금 내가 자금사정이 안 좋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지게 되겠지
- 내가 아이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아.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좋아해 줄 거야.
- 내가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얼마든지 술, 담배를 끊을 수 있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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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식적으로 이런 환상을 붙잡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세계의 영토가 점점 확장될수록 내 안에 있는 자기가치감이 튼튼하지 않다. 의식적인 삶이란 자신이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가야 할 방향과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방향대로 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행동 방향키를 잡고 제대로 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식적인 삶이라고 해서 매사에 모든 것을 신경 쓰며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의식적인 삶은 현재 자신이 하려는 일에 있어서 거기에 알맞은 마음가짐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필요한 소음이 들리지 않게 되고 자신이 선택한 대로 의식적인 삶에 머무를 수 있다. 우리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의식의 세계를 통해서도 충분히 황홀감을 경험할 수 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황홀감을 경험한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내기 위해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화가는 자신의 의식 수준에서 충분히 머물며 의식의 세계를 즐긴다. 때로는 이러한 몰입이 상황에 맞게 적용되어야 한다. 운전을 할 때 지나치게 그 순간에만 의식적으로 집중한다면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결국 의식적인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을 충분히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고 정크푸드를 즐겨 먹다 보면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말 것이다.
현실세계는 외적 세계뿐 아니라 내적 세계까지 포함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 욕구, 소원 등이 내적 세계에 속한다. 두려워서 피하거나 불안해서 시도하지 않거나 부당함을 느끼지만 참고 억누르는 감정 등이 포함된다. 의식적인 흐름에 자신이 머물 때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갖고 있는 억압이나 회피, 두려움, 불안 등은 현실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내가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만을 가지고 합격증을 받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삶에서 느끼는 정서를 탐색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정서를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도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무르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찾아서 하면 나를 좋아해 줄까요?'
타인에게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고서는 절대 얻어낼 수 없는 결과이다. 타인은 절대로 절대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기준점으로 삼는 삶은 고단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의 삶의 주체이며 나의 삶을 만족시켜줄 수 있다. 자신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권을 존중하는 행동으로 옮겨갈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대하는 환상의 세계는 걷히게 된다.
아이들이 환상의 세계에 환호하는 이유는 환상의 세계 자체가 놀이이기 때문이다. 놀이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아이로서는 주된 일이다. 어른으로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세계는 아이들의 환상세계와는 다른 듯 보이지만 현실세계에서도 어릴 때의 환상세계에서 느꼈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유사하다. 의식에 머무를 때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순간, 지금 하려던 일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모두 현실에 머물고 있다. 추억을 떠올리고 싶으면 과거로 가고 미래를 꿈꾸고 싶을 땐 상상을 한다. 언제든지 넘나드는 시간의 세계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 내가 과거로 간 적도 없고 실제로 내가 미래로 갈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과거의 기억을 되새김 질 했을 뿐이고 미래에 일어날만한 것들을 그려볼 뿐이다.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다 보면 현재를 놓치게 되고 너무 멀리 미래를 꿈꾸듯 따라가는 것은 현재를 놓치게 된다.
"저는 언젠가 나이가 들면 자신감 있게 나의 일을 당당히 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인정받는 삶을 살 자신이 있어요. 제 생각에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미래에 대한 상(像)이 긍정적이어서 다행이지만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이 그린 그린 미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화지는 준비되어 있는지 밑그림은 구상해 두었는지, 붓을 들고 작은 점 하나라도 찍고는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어떠한 것에 대한 시도가 두렵고 고통스럽다면 시도 자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손가락 터치만으로도 가능한 일이 널려있고, 음성인식만으로도 원하는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 보니 노력하고, 생각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알아간다는 과정이 힘들다는 생각에 회피하고, 뭔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디어 속으로 도망가면 그뿐일까
자신의 삶을 좀 더 의식적인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환상 속 세상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두렵고 불안하겠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신호이다. 자신이 더 자세히 살펴야 할 자신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이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닫았던 마음을 다시 열어야 할 때이다. 현실세계의 당면한 문제들을 단번에 해치워 버릴 수은 없다. 당면과제가 없어야 완벽한 삶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지금 현실세계에 발을 제대로 딛고 있는지 공중에 떠있는지 아는 데서부터가 시작이다. 공중 부양되어있다면 다시 땅 위로 발을 똑바로 디디면 그뿐이고 발을 딛고 있는데도 갈창질팡하고 있다면 다시 두 발을 세심히 살펴보면 된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부터 하고 싶은지 관심 있게 물어보는 것부터 하자. 나를 건너 띄고서는 나의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나의 삶은 내 두발로 걸은 그 발자국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