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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꽂쌤 Mar 13. 2023

분노, 화

분노는 자신을 보호하라는 시그널





대화를 하다 보면 말속에 유독 '화'가 많은 사람이 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쉽게 짜증이 나고 기분이 나빠진다.  '화'가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요양병원에 수년간 계셨을 때의 일이다.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치매가 좀 온 것 같다고 하시더니 '어르신이 화병이 있으세요'라고 말했다. 치매가 화병이랑 무슨 상관일까 싶었는데 화병이 있는 사람들은 치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병원 내 입소된 어르신들 상당수가 화병이 있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 정서 중에 '화' 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화는 한국문화 속에서는 친숙한 정서다. 그래서 '화병'을 문화 관련증후군의 하나로 본다.


화라는 감정을 떠올리면 분노, 원망, 복수, 억누름 등 극단적인 단어들이 엮어져 딸려온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참거나 눌러야 예의 있는 행동이라 여겼다. 그러나 참았던 화가 뭉치면 신체증상으로 드러나거나 우울감으로 번질 수 있다. 분노라는 감정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기 때문에 억누르고 삼키면 '화병'이 된다. 분노의 감정이 생기면 수동공격적인 방법으로 드러나곤 하는데 괜히 시비를 걸거나, 따지거나 짜증을 부리고 맡은 바 일을 교묘하게 피하기도 한다.


심리검사 종류 중에 문장완성 검사(Sentence Completion test, SCT)가 있다. 미완성 문장을 주면 자기가 생각나는 대로 완성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나는  어머니를 좋아했지만 _____________________

내 생각에 가끔 아버지는_______________________

나의 가장 큰 결점은 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인용 SCT검사의 문장은 50개 정도로 사용되는 다양한 문장들이 있다. 그중에 부모님에 대한 것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미완성문장을 완성하게 되는데 '욱하는' '짜증이 많은' '참을 수 없는' 등 분노에 대한 감정단어를 많이 적는다. 이는 누군가의 분노 때문에 상처 입고 고통 속에 있음을 말한다.


분노를 섞지 않고 대화를 하면 상대방과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화나 짜증 섞인 말이 나가다 보니 대화의 본질은 온 데 간 데 없고 '왜 그렇게 화를 내면서 말을 하느냐'는 말투가 오히려 다툼의 주제로 전환된다. 


우리는 어째서 분노의 노예가 되는 걸까. 


겉으로는 순해 보이는 사람이 한번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분노를 폭발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원망이 많거나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일수록 그렇다. 남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자신에게는 민감할 수 있다. '다른 말은 다 참는데 그 말만은 못 참아'라며 폭발하게 된다. 별거 아닌 일에 발끈하게 되는 것이다. 당사자만이 가지고 있는 분노센서가 있기 때문에 살짝만 스쳐도 터질 수밖에 없다.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묻지 마'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유 없이' '나도 모르게'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분노가 쏟아진다. 분노는 기존에 참아두었던 감정이 전혀 상관없는 대상에게 터지기도 한다.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해 원망이 있는 사람은 자기보다 권위가 있는 상사, 교수, 목소리가 큰 남자 등에게 심한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는 약자를 향해 공격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분노를 켜켜이 쌓아두고 모른 체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위험하다. 


분노는 수치심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치심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분노의 감정도 쉽게 느끼고 화를 잘 내거나 숨긴다. 분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한번 더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분노의 감정은 분명히 스스로 다룰 수 있다. '너 때문에 화가 나서 어쩔 수 없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분노를 조절하고 다룰 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다. 분노가 생겼을 때 이 분노감정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에 대해 분명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분노는 없애버려야 하는 감정일까? 


분노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불쾌하다. 몸이 뜨거워지고 심박수는 상승한다. 적대감이 들고 어찌할 바 모르는 충동성이 올라온다. 분노는 교감신경계를 자극하기 때문에 근육긴장이 일어나 뭔가 행동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각성상태로 만든다.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느껴지면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나는데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조율하는 것이다. 조율을 통해 해결되지 않으면 뒤로 후퇴하다가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공격이 시작된다. 바로 분노폭발이다. 이렇듯 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읽을 필요가 있다. 


갑자기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누군가 나의 영역에 침범했을 때

내가 하려던 일에 방해받았을 때 


분노라는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분노는 내 삶을 재정비하고 부당함에 맞서라고 잠자는 우리를 깨운다. 분노가 주는 부정적 인식 때문에 내 안에서 몰아내야 하는 적군처럼 느끼지만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원동력이다. 


분노는 케케 먹은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분노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분노를 느끼지 않으려 억누르려 하니 문제가 된다. 분노는 조절해야 하는 감정이지 없애버려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분노를 그대로 직면하고 조절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분노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분노가 주는 신호에 답하지 않을 때는 분노의 늪에 휘말려 더 깊은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다. 분노를 잘 조절하면 우리 삶에 유용한 신호를 주지만 분노를 함부로 사용하면 독이 된다. 


분노는 신호다. 


그렇다면 그 신호는 무엇을 하라는 신호일까. 자신을 보호하라는 신호다. 지켜내라는 신호다.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다. 그런데 어찌 보면 분노를 억누르는 것도, 발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효과적으로 분노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노가 일어났을 때 신체반응에 함몰되고 각성상태에 순응하면 위태로워진다.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대상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비난하고 구석으로 몰아세우다가는 관계는 망가질 것이다. 여과되지 않은 분노를 날것으로 표현하게 되면 분노의 원인보다는 분노행동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분노는 우리를 지키기 위한 신호다. 그렇다면 우리의 분노표출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인지 체크해보아야 한다.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충동을 알아차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분노의 이면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는지, 상대방에게 무엇이 서운한지, 속상한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운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시작해 보자. 


애착관계 경험을 한다.


분노라는 뜨거운 감자를 기꺼이 받아주고 안아주는 관계경험을 할 때 가능하다. 모든 분노가 '화나게 했던 그 대상'을 만나서 직접 풀어야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분노는 해결되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감정이라는 것은, 적절한 표현을 할 때 관계형성에 이롭다. 그러나 분노는 표출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나고 흥분되기 때문에 스스로 제어 못하는 분노중독이 된다.


주의를 환기시킨다.


분노가 치솟을 때 그 감정에 취해 가속페달을 밟았다가는 운전미숙으로 인해 사고가 난다. 호흡을 가다듬고 진정될 때까지 잠시 멈춰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무리 격한 감정이라도 18초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한다. 숫자를 세며 마음을 추스르거나 호흡을 가다듬어도 좋다. 그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거나, 걸어도 좋다. 격양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찾아보자. 조절이 안되고 조급한 해결방법에만 힘쓰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그릇이 아직 덜 자랐기 때문이다.


분노를 승화시킨다.


분노의 감정은 우울이나 불안,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번져 있다. 분노가 클수록 슬픔도 크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이라는 프랑스 화가는 어린 시절 성적 학대로 인해 우울증을 앓았지만 그림을 그림으로써 고통과 상처를 치유했다. 석고 위의 물감주머니를 총으로 쏘아 흘러내리게 함으로써 슈팅 페인팅 작업을 했는데 그녀의 분노와 공격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지점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니카무라 슈지는 수상소감을 이야기할 때 '분노가 연구의 원동력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연구원시절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했던 그는 분노에 휩싸여 역사적인 LED 조명에 대한 발명을 했던 것이다. 화가 많은 사람들은 달리거나 드럼을 치게 권유하기도 한다. 때로는 야구를 함으로써 정당하게 방망이를 휘두름으로써 합법적으로 분노를 배설하는 방법도 있다. 기질적으로 충동성이 높은 사람들이 과격한 스포츠를 즐기며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분노를 승화시킨 좋은 예이다.


분노의 편지 쓰기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 평소에 직장 내 스트레스가 많은 A 씨는 노트북 바탕화면에 분노파일이 하나 있다. 화나고 속상할 때 쓰는 편지파일이다. 화나서 글을 쓸 때는 상대방에게 직접 이야기하듯이 쓰지만 편지를 써 내려가다 보면 마음 정리가 되어간다. 결국 이 편지를 상대방이 받아본 적은 없다고 한다. 편지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되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내가 내 마음을 정리했다는 것, 내가 내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는 것, 내가 이렇게까지 속상했구나 하며 나 스스로 위로해 주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쓴 지 하루 이틀 지나고 '화 난 이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때쯤 편지를 삭제하면 어느 정도 화난 감정이 조절된다고 한다. 혼자 적고 삭제하기 때문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분노감정을 담은 글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면 조용히 삭제버튼을 누르거나 찢거나, 태우는 방법도 좋다.


 분노는 언제든 다시 찾아온다. 그러니 오늘만 살 것처럼 분노를 폭발시키지 말자. 무엇이 이토록 불합리한지 무엇이 자신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지 살피고 신호를 알아채야 한다. 순간의 충동으로 보복하고 싶지만 그 행동으로 인한 완벽한 해결은 없다. 감정은 어차피 다시 찾아온다. 다시 찾아올 때마다 충동적인 행동을 하며 살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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