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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석 Jan 12. 2022

극부부도 #9. 출산 시 100만원..이참에 셋째?

1.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MB 정부 시절 이화여대에서 입학과 동시에 7~8년이면 박사까지 딸 수 있는 과정을 만들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왜 박사를 빨리 따면 좋은고 하니, 내가 기억하는 학교 측 논리는 이랬다.


-여성이 현실적으로 박사 과정까지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과 육아 때문이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며 박사과정을 밟는다는 것은 제약이 크다.

-일반적으로 박사를 따는데 10년 이상 걸린다고 보면 또 결혼 적령기를 놓치므로 여성들이 박사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사를 7~8년 안에 딸 수 있게끔 학부 시절부터 전공 관리를 하는 코스를 만들어 결혼 적령기가 도래하기 전 박사를 배출함으로써 ‘박사 후 결혼’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낼 수 있다.

-이화여대 만세


나는 학사 수료증 밖에 없고 학위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당시 이러한 시도를 소식으로 접하곤 ‘그럴싸하다’라고 생각했다. 분명 어렸을 때 신문을 보다 보면 ‘20대 최연소 박사 탄생’ 이런 식의 신문 타이틀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신문에 날 정도의 인재들을 대량 육성하겠다는 선포 아닌가?


정작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 가방끈이 긴 여성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니, 공부하는데 결혼은 솔직히 문제 안 되고. 결혼 적령기? 나 참.. 그래서 서른 살 넘은 나는 뭐 골드미스야?”


30대 초반의 박사과정 여성 A는 바닥을 쳐다보며 손으로 머리카락을 몇 번 넘기다가 샴푸 광고처럼 머리카락 써머솔트킥(주1)을 날리며 화냈다.


연신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손부채질을 해대던 20대 중반 석사과정 여성 B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무슨 박사가 7년, 8년 뚝 시간 정해놔? 시간 다 됐네, 자 여기 학위.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학위 안 따 본 사람이 만든 정책인가요?”




(주1) 게임 ‘스트리트파이터2’의 캐릭터 ‘가일’의 필살기로 오버헤드킥을 차면서 공중에서 한 바퀴 돈다.



2.


아내와 나는 캠퍼스 커플, CC이다.


우린 학교 교가도 모르고, 동창회비도 내지 않지만 그래도 학교를 참 사랑한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것도 학교 덕분이다. 교환학생으로 영국으로 보내줬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 해서 과목 이수를 못 했다.

근데 둘이 눈이 맞아 돌아왔다. 그냥 눈이 맞은 게 아니라 혼자 갔다가 셋이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지만, 함께 졸업한 아내는 곧바로 석박 통합 과정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아이 둘을 데리고 학교에 다녔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도 학교 덕분이다. 당시 학교에 모 대기업이 어린이집을 지어줬는데, 학교는 교수와 교직원을 대상으로 원아 모집을 했다가 정원 미달을 초래했다. 그러자, 대학원생들도 필요하면 어린이집을 신청하라고 했는데 아내는 냉큼 두 아이를 동네 어린이집에서 끌고 나와 학교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난 이름이 ‘하이마트어린이집’이라 마음에 안들었지만…


그녀가 아침에 학교로 향하는 길을 당시 3층이었던 복도 발치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어깨에 가방을 메고, 침이나 코 따위를 흘리거나 손가락을 빨고 있는 흐리멍덩한 꼬맹이 하나는 안고, 또 하나 징징대긴 하나 걸을 수 있는 녀석의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간 뒤, 들쳐 맨 꼬맹이를 카시트에 묶어둘 때면 어깨에 맨 가방은 막 허리에서 배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그러고 있으면 또 코딱지 만한 놈은 어딜 막 걸어가서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빨리 타라고 보채서 또 애를 카시트에 앉히는 사이에 이미 앉은 놈이 울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출발하자, 기어 D 박고 부아앙 출발한다. 가는 내내 뒤에선 자꾸 말 걸어싸코 울어싸코 했겠지.


아내는 보통 아침 7시면 나가서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연구실을 빠져나오곤 했는데, 어린이집은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아이들을 돌봐줬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 애들은 어린이집에 매일 가장 오래 있는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로 간 뒤,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서 돌아왔다.


한 번은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 나도 학교로 갔다가 상경대 옆 숲에서 아내를 만났다.


“학교 참 예뻐 지금 봐도.”

“응 난 학교가 좋아.”

“애도 키워주고…”

“맞아, 애도 키워주고…”

“학교 아니었음 자기 대학원 못 다녔을 것 같은데?”

“어 포기했지도 몰라.”



3.


저출산의 시대. 이제는 지구온난화처럼 해결책도 마땅히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잠자코 있을 수도 없어 당연히 받아들이는 문제.


대선을 앞둔 시기이다.


아이를 낳으면 월 100만 원을 주겠다는 공약도 나왔다. 어쩌면 각론에 불과한 것 같은 공약이 그 후보의 정책 공약 중 가장 관심을 많이 받았다. 포퓰리즘이다, 금권선거다 거품 물며 달려들 수도 있겠다. 그 후보는 저출산 시대를 대비해 출산하는 부모들을 위한 장려금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내 소득이 16년 전보다 당연히 월 100만 원은 늘어났다. 아니, 솔직히 그 몇 배가 더 늘어났다.

내 친한 친구 부부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우리 부부라고 해서 더 못 낳으란 법도 없다. 그렇지만 아이 낳을 생각 못한다.

아이를 낳는 문제와 가처분소득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려금을 더 준다고 해서 애를 낳지 않으려던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부부가 “그래, 결심했어. 월 100만 원도 주는데”라고 할까, 혹은 이미 애가 있는 부부가 더 낳자고 할까.


외벌이 가구의 경우엔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도 보지만, 글쎄 맞벌이 부부한테는 과연?


“우리도 셋째?”

“한 달에 100? 집도 넓혀야 하고, 차도 큰 차 필요하고, 일단 10억 주면 계산은 맞는데 그래도 안 돼.”

“왜?”

“회사에 어린이집 없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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