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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보스J Jan 12. 2024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영화 리뷰>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이영도


서한으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나눈 두 문인의 시다.


초연결사회를 가능케 하는 온갖 최신 기술 덕분에 우리에게는 좀처럼 ‘그리움이 고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사회에서의

소통의 끊어짐이란

어쩌면  보다 단호한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만남, 재회, 이별은

우리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영역의 무엇인지도 모른다.


’ 인연‘을 믿는다면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

-석가모니

<영화 Past Lives, 셀린 송 감독> (2023)


연말에 비행기에서 본 보석 같은 영화 두 번째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는 인연에 관한 영화이다.


#인연


영화는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대화가 들리지 않기에 그들의 관계는 추측만 가능하다. 그들은 어떤 인연일까? 중간의 여자는 백인 남자 가까이 앉아있지만 시선은 동양 남자에게 향해있다. 백인 남자는 대화에 끼지 못한 것인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이다.


#떠남과 재회

나영(그레타 리)은 열두 살 때 단짝 친구 해성(유태오)을 남겨두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그리고 12년이 흐른다.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 지망생 노라로 해성은 군대를 마치고 복학한 대학생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나영은 페이스북을 통해 해성이 자신을 찾고 있음을 알게 되고 해성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렇게 다시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

온라인을 통해서지만  처음으로 어른이 된 서로의 모습을 마주한 노라와 해성은 풋풋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페이스타임을 이어가는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노라가 소통의 단절을 선언한다.


“나는 두 번의 이민을 거쳐서 여기에 왔어. 이곳에 이루고 싶은 게 아주 많아. 그런데 너랑 이야기하고 있으면 내가 자꾸만 한국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잖아.”


날이 갈수록 해성을 향해 커져가는 마음을 접지 않으면


떠나온 자 ‘노라’로서의 삶,

작가의 꿈을 지켜낼 수 없기에.


또다시 12년이 흐른다.

노라는 작가 레지던스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 유대인계 작가 아서(존 마가로)와 결혼해 미국에 뿌리를 내렸다.


해성도 다른 인연을 만났다가 헤어지고

노라를 만나러 뉴욕으로 오면서

두 사람은 헤어진 지 24년 만에 드디어 재회한다.

오랜 소통의 단절 이후에 만났지만 두 사람 간의 ‘끌림’은 오히려 더 강렬해진 듯하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노라는 분명 흔들리고 있다. 영어를 쓰는 노라로 살고 있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나영이가 있다. 꿈꿀 때는 한국어로 꾸니까.

어릴 적 인연의 등장에 불안을 느끼는 남편

노라는 해성을 남편에게 소개해준다. 처음에는 노라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지만 세 사람의 대화는 이내 노라, 해성 간의 속삭임이 되고 만다.


우리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네가 이민을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결혼을 했을까?

우리는 아기를 낳았을까?


세 사람의 어색한 만남도 끝나고 이제 해성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


결국 노라는 떠나온 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어릴 적 꿈꾸던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은 요원해지고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 지금, 여기‘의 삶을

택시를 기다리는 해성을 배웅하는 노라,

두 사람을 가볍게 포옹하고 작별인사를 한다.


”지금이 다음 생의 전생이라면, 다음 생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무엇이 될까? “

-해성

What if this is a past life as well, and we are already something else to each other in our next life? Who do you think we are then?


집으로 돌아온 노라가 남편의 품에 안기며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2024년 1월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타이틀 배경: 김환기,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영화패스트라이브즈#pastlives#인연#전생#노라#해성#나영#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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