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관한 이야기_산문집 <보통의 존재>와 영화 <연인>
나는 극장에서 손잡는 것을 좋아한다.
촌스러운 취향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내겐 극장에서 손을 잡는 것이 프러포즈요
애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남녀가 거리낌 없이 하룻밤을 보내는 원 나잇 스탠드가
요즘처럼 횡행하는 세상에서도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행위가 여전히 특별할 수 있다는 것.
그 느낌이 이렇게나 따뜻하고 애틋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눈물겹다.
잠시 잠깐 만난 사이에서는 결코 손을 잡고 영화를 보거나
거리를 걷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으니까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처럼 온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누구든 아무하고도 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 하고나 손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잡는 것이 좋다.
<보통의 존재>_이석원 산문집
책장 다이어트 중이라 처분할 책을 고르다가 노란 표지의 <보통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왜 아직도 가지고 있지?'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이석원이 쓴 산문집으로
담담하게,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이 꽤 재밌었던 인상만 남아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꼭 처분해야지 마음먹고 책장에서 꺼내 펼쳤는데... 바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손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꼬물거리는 아이의 통통한 손
아리따운 여인의 손
곱고 섬세한 피아니스트의 손
사내임이 감춰지지 않는 두껍고 투박한 남자의 손
어느새 검버섯이 앉은 정직한 내 엄마의 손
시커면 기름이 손톱에 박혀있는 노동자의 손
그리고 손이 하는 모든 것들
만지고,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고, 만들고, 쓰고..
손에 관한 글들은 따로 저장해 둔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
<마음사전>_김소연
'손'은 어느 하나의 모습을 찍어서 말할 수 없다.
'손'은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이다.
인간은 악기를 연주하는 손으로 총을 쏘아서 남을 죽인다.
-소설가 김훈-
손은 또한 관능적이기도 하다.
'관능'에 관해서라면 연출이나 음향면에서 <연인 (The Lover)>(1992)의 손 잡는 장면을 능가하는 작품을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의 손이 닿고 마침내 겹쳐져 서로를 교감하는 그 떨림과 흥분이란.
영화 <연인, The Lover> (1992)
손은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을 기억하는 최종의 감각 그 무엇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직 온기가 흐르고 있던 그의 손을.
처분하려고 꺼내 들은 <보통의 존재>는 다시 책장 그 자리에 꽂혀있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읽는 재미가 여전하다.
책을 정리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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