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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Jul 06. 2020

출근길에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몰랐다. 짧은 외국생활을 기록하려고 만든 공간에서 생각보다 일찍 그 생활이 끝나며 글도 하루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조금의 생각할 시간 없이 한국에 돌아와 한 일이라고는

넷플릭스와 지긋지긋한 격리생활을 보냈고,

매일 야구 중계에 환호했고,

밤새워 게임하다 질려버렸고,

격리가 끝나 이따금 산책을 했고,

줄 두줄 이력서를 다시 만들어갔다.


취업을 해야 했다. 혼자 살면서 나날이 야금야금 줄어드는 통장잔고를 보며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래저래  취업 준비를 하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은 팔자라 두 군데 회사의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한 군데는 일하고 싶은 사회적 기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구회사였다. 너무 다른 성격의 선택지였고, 최종면접을 보고 난 후에도 삶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는 일이다 싶어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시간들이 무색하다시피 한 군데만 합격을 했고 결과에 수긍하기로 했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요즘이라 오히려 마음은 가벼웠다. 그렇게 나는 가구회사에 출근하게 되었다.


한때 일을 하면서 직장생활은 나랑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다.(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정장에 구두 차림으로 사람이 미어터지는 전철에 몸을 구겨 넣으면서 나도 당신들도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그건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건방졌던 과거에 삶을 막연히 거창한 줄만 알았고, 매일 아침 함께 출근하는 타인을 보며 요즘의 나는 진심으로 존경심을 느낀다. 도전하는 삶에 열광했듯 묵묵히 걸어가는 삶에, 내게는 부족한 성실함의 냄새를 온몸으로 느끼는 출근길이다.


내일도 역시나 피곤한 아침이겠지만 그럼에도 가야 할 곳이 있어 다행이다.

출근도 안했는데 퇴근 시간이 빨리 왔으면 싶다.

어디가서 게으름 떨치는 법 좀 배웠으면 좋겠다.

바쁜 회사일 중에도 글을 담을 여유가, 이야깃거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일상의 기록이라는 핑계로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직장인도 취준생도 좋은 일이 지금보다 많아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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