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자폐증은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과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과 흥미라는 두 가지 증상 영역에서 결함을 보일 때 진단하는 신경발달장애로 정의된다.*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일어나지 않는 증후군으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 상태라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출처 : * 장하원, '다른 아이'의 구성 : 한국의 자폐증 감지, 진단, 치료의 네트워크,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2020. / **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동요 중에 '내 동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하며 시작되는 그 동요는 동생의 주제곡으로 나는 곧잘 그 동요를 동생 앞에서 불러댔다. 실제 곱슬머리인 동생에게도 다양한 이름이 붙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동생을 부를 땐 주로 '뚱돼지'일 때가 많았다. 뚱돼지인 이유는 동생이 충동 조절과 간질증세 완화를 위한 약을 먹기 시작하며 살이 스물스물 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현관에는 물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물풀장을 설치해두었는데, 어느 날은 새벽에 잠이 깬 동생이 물풀장에 할머니가 열심히 담근 김장 김치를 몽땅 붓고선 옷을 홀딱 벗고 빨간 김장재료와 함께 버무려지고 있었다. 김치에 빠진 통통한 아기돼지가 되어 있었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선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개구쟁이 내 동생'이라는 가사와 찰떡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엄마는 동생을 '애기'라고 불렀다.
이 호칭은 습관이 되어 동생이 정말 애기일 땐 이질감이 없었으나, 서른 살 먹은 동생을 애기라고 부를 때면 어쩐지 부끄럼 모르는 팔불출 같은 호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은유나 콩깍지의 아니라 문자 그대로 동생은 정신만은 나이 들지 않아 그저 오랫동안 3살에 머물러 있다. 몸은 제 나이에 맞게 커가도 마음만은 그렇지 않으니 세상의 기준과 동생은 자꾸만 더 멀어지고 만다.
언어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 동생은 완전한 아기와 같았다. 배가 고플 때, 잠이 올 때, 답답할 때 어린아이들은 모든 의사표현을 울음이나 몸짓으로 표현한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우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인데, 이 부분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래동안 그저 어린 젖먹이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동생을 '재빈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개구쟁이 내 동생이 존재 자체로 좋았다. 동생은 엄청나게 하얗고 볼은 말랑말랑 순두부 같아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동생 볼을 탐스런 사과 물듯 깨물었다.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싫어요."인데 내가 볼을 깨물 때마다 앙칼지게 "싫어요!" 한다. 존댓말로 그 말을 배웠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든 많든 상관없이 존댓말로 싫은 의사를 표현한다. 그러면 그게 다시 귀여워서 볼을 깨물고 싶어졌다.
동생은 아빠를 보고도, 엄마를 보고도, 이모를 보고도 누나라고 하는데 그 호칭이 나에게 와닿을 때만은 맞는 정답이 되어 나는 기분이 좋았다. 모든 이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은 그게 처음 배운 호칭이거나 발음이 가장 쉬워서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나는 그냥 누나를 가장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동생을 '자폐'라고 불렀다. 의사 선생님에게 동생은 뚱돼지도, 애기도, 재빈이도 아닌 '자폐'로 명명되었다.
지나고 보면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 결국 멀리 보면 실체가 드러나는 것들. 어쩌면 모른 척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애라 그런 거겠지. 발달이 조금 늦은 거겠지. 시간이 가면 괜찮겠지.
엄마와 아빠가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실은 이미 내면에서 울리고 있던 작은 목소리가 현현되어 현실이 되었을 때, 어쩌면 그저 나약한 당신들의 두려움 때문에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친 것은 아닐까 하고 겁이 났다고 했다.
오늘 재빈이는 열이 났다. 벌써 3일째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39.4도까지 열이 올랐다. 경기를 할까 걱정이다. 오늘은 자꾸 내 손을 자기 입안으로 가지고 가길래 이가 아픈 줄 알고 봤더니 세상에 입 안이 다 헐어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어른 같으면 아마 밥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말도 못 하고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2000. 12. 1 엄마의 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