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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강주 Apr 20. 2023

계: 나는 왜 한국을 떠났는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와 번듯한 증권회사에 3년째 재직 중인 한 여자가 있다.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6년간 사귀고 있는 지고지순한 남자친구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호주로 떠나려 한다. 그 이유는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장강명의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27살 계나가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는 4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계나가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책 속 계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톰슨가젤 같았던 계나에게 한국이라는 초원은 유독 살아가기 힘든 생태계였기 때문에, 혹은 추위를 싫어하는 남극의 펭귄처럼 계나가 한국 사회에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계나가 한국을 떠난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오고 금융회사에 다니는 여자가 스스로를 두고 경쟁력이 없다고 하는 것이나, 추위 하나 때문에 27년간 쌓아온 학력과 커리어라는 성벽을 무너뜨리고, 남자친구를 버리고, 가족을 떠나고, 고국을 저버렸다는 건 그다지 신빙성이 없으니까.


내가 생각해 낸 결론적인 이유는 바로 계나의 이름에 있다. 책의 초장에서부터 언급되는 주인공의 이름 “계나”를 처음 접했을 때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계나와 계나의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즈음 의문을 품게 됐다. 첫째의 이름은 혜나, 막내의 이름은 예나, 두 자매의 이름은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예쁘다면 예쁜 여자 이름인데 유독 둘째인 계나의 이름이 특이하다. 나 돌림이라고 해도, 유나, 지나, 세나, 두나 같은 예쁜 이름이 많지 않은가. 저자는 왜 주인공의 이름을 계나로 지었을까? 주인공의 이름을 ‘계’나로 지어서 말하고자 한 게 뭐였을까? 책을 두 번 정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가까스로 계나의 이름은 주인공이 벗어나고자 한 모든 것을 함축한 것이 아닌가 하는 흥미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鷄: 거주 환경


계나의 24시간은 온통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닭장 구조의 형태를 하고 있다. 계나의 가족 구성원은 총 5명인데, 27살이 되도록 살면서 한 번도 자신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는 계나는 두 자매와 함께 방을 쓴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언니와 느지막이 일어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인 동생과 최대한 겹치지 않게 생활하기 위해 야간조로 일할 정도이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은 어떤가?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장이 있는 계나는 역삼역 소재의 증권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소위 서울의 지옥철에 해당하는 2호선 아현역에서부터 역삼역까지 출퇴근 길의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역삼역에 내려서는 수많은 고층 빌딩 사이 하나의 조각이 되어 8시간의 근무 시간을 채워야 한다. 24시간 동안 흘러가는 계나의 삶은 집이라는 양계장에서 교통수단이라는 양계장으로, 직장이라는 또 다른 양계장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유지되고 있다.


季: 지리적 요인


한국인들이 꼽는 대한민국의 장점 중 하나는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인데,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건 계절의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더위와 추위에 약한 사람들이 특정 계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계나는 6장 ‘파블로’에서 스스로를 《추위가 싫은 펭귄(The Penguin That Hated the Cold, 1944, 월트 디즈니 세계명작 시리즈)》에 빗댄다. 펭귄 파블로는 추위가 너무 싫어 여러 시도 끝에 따뜻한 섬에 정착하게 되는데, 계나는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본 파블로처럼, 본인을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단아로 취급하고 본인이 한국을 떠나게 되는 두 번째 이유로 한국의 겨울을 꼽는다. 한국의 겨울은 어마어마하게 추운데, 계나네 집은 겨울이 되면 김장 봉투로 창문을 막고, 장갑을 끼고 살아야 할 정도로 난방에 취약하다. 계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일러를 튼 바닥과 맞닿은 피부만 따뜻하고, 그 면적을 제외한 모든 부위는 추위에 덜덜 떨어야 할 만큼이니. 계나는 벌벌 떠는 추위를 못 이겨 재개발에 필요한 돈을 보태주면 이후 독방을 쓰게 해주겠노라 말씀하신 아버지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소중하게 모은 2,000만 원을 챙겨 호주로 떠난다.


械: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


계나가 최종적으로 부정하고자 했던 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부속품으로서 존재한다. 국가의 헌법 아래에서 보호받고 마땅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국가 내 국민임을 증명하는 품번인 주민번호의 앞자리가 같더라도 그들의 역량이나 배경에 따라 중요도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책에서 계나의 주변인들을 통해 다양한 계급의 부속품을 볼 수 있다. 계나를 중심으로 계나가 학교에서 만난 인물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자랑스러운 부속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결혼해서 가족이라는 소규모사회의 한 축을 이루게 된 은혜와 IT 기업의 팀장이 된 미연이, 공대를 나와 기자시험에 합격해 언론인이 된 남자친구 지명이까지. 더불어 지명의 가족은 내로라하는 완벽한 가족 구성원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소재 대학 교수인 지명이의 아버지와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누나까지! 그에 반해 계나의 측근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소개된다. 빌딩 경비 일을 하시는 계나의 아버지, 별다른 직업이 없는 계나의 자매들, 그리고 심지어 호주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재인은 소위 말하는 지잡대를 나오고 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의 의무조차 저버린 사람이 아니던가.

더 나아가 기계의 부속품이 되기 위해선, 그 기계를 구성하기 위한 부속품의 위계階를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하나의 자동차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라. 자동차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엔진과 핸들, 그리고 네 개의 바퀴, 범퍼, 와이퍼…. 자동차를 만들 때 필요한 모든 부품을 모았을 때 청사진에 따라 순서에 맞추어 조립해 굴러간다. 어떤 부품은 바꿔 끼워도 크게 상관이 없고, 어떤 부품이 망가지면 차를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부품은 저렴하고 어떤 부품은 비싸다. 엠블럼은 어떤가. 자동차가 굴러가는 데에는 그 어떠한 기능도 수행하지 않으면서 자동차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지 않나. 이처럼 하나의 기계를 구성하는 데에는 제각각의 중요도를 가진 부품들이 모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부속품으로서의 사람을 평가하기 쉽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 아래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다고 해야 할까? 익명의 20대 중반의 동갑 두 명의 우위를 평가해 보자. 가장 쉽게는 그 둘의 가방끈의 길이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둘 다 대졸자라면 대학이 소재한 지역에 따라 줄을 세워볼 수 있겠다.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단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고….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문과대학보다는 이과대학이, 이과대학 안에서도 공과대학이 자연과학보다 앞에 서 있을 거다. 만약 두 사람이 계나와 지명이처럼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라면 그들의 아버지의 직업으로 그 사람의 중요도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부품의 중요도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취할 수도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되기도 한다. 제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해도 상주는 절대 될 수 없는 계나처럼 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개인을 이루고 있는 학력이나 부모의 배경, 능력에 따라 부속품으로서의 우선순위를 쉽게 매길 수가 있다. 계나의 호주행을 만류하는 지명이에게 계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어도 서로는 결코 같은 계급의 부속품이 될 수 없다고, 여기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평생 2등 시민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실 계나의 이름엔 별 뜻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나의 이름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계나는 출퇴근이 싫고 겨울이 너무 추워서 한국을 떠났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름이 싫어서 호주를 떠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계나라는 이름이 키에나로 바뀐 것처럼, 호주를 간다고 해서 톰슨가젤이라는 피식자의 위치에서 포식자가 될 수 있을까? 계나는 여전히 1등 시민은 아닐 거다. 백인 여성이 아니니 2등 시민도 못 될 거다. 애초에 등급을 매길 수 있는 부속품 취급을 받는 것이 과분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계나의 말마따나 호주에서는 백인과 백인이 아닌 인종으로 등급이 매겨질 거고, 비非백인 중에서도 아시아계의 등급이 있을 테고, 한국인으로 한정하면 교민과 호주 워홀러들이 있을 것이니까.


계나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이자 2등 시민인 여성으로서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2015년의 20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7년이 지난 2022년, 올해로 27세를 맞이한 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청년들은 과연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헬조선이라는 빛바랜 유행어에 여전히 공감하며 해외를 기회의 땅이라 여기고 있을까? 7년 사이 계나가 겪고 있던 문제들은 사라졌을까? 헬조선이나 금수저론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을 탓하는 양상은 유행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보다 개인의 실행력에 의해 삶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능력주의의 허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영끌’, ‘빚투’ 등의 신조어를 보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벼랑으로 사람을 내몰고, 그 선택으로 인해 성공한 사람에게는 기회를 잡거나 노력을 한 자라는 칭호를, 실패한 사람은 합법적 도박에 전 재산을 건 어리석은 사람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계나가 겪었던 여러 상황을 떠올려보자. 백인과 비백인, 교민과 워홀러, 남성과 여성, 한국과 해외라는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몇 단어만 바꾼다면 그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학생과 청소노동자, 이공계열과 인문계열, 의대와 타 단과대.. 결국 시대가 변함에 따라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문제의 형태는 다르지만 선택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부류는 언제든지 존재할 것이며 순서는 조금씩 바뀔지언정 사회 속 사람 사이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위계는 항상 굳건할 것이다.


결국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떠나면 행복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해외로 세대를 떠나는 것을 권장하는 도피주의적 성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혹은 한국이 아닌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생각할 지점을 제시한다. 자랑스러운 나사가 될 것인지 혹은 자유롭게 세상을 굴러다니는 나사가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을 선택할지라도 두 선택 모두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계나는 비록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부속품은 되지 못했지만, 한국을 떠나서 행복할 것이다. 왜냐면 적어도 호주에서의 삶은 온전히 계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어떤 거대한 기계에 포함되지 못한 녹슨 나사로서의 취급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충만한 나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은 계나에게는 더욱 만족스러운 삶이리라.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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