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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ug 20. 2024

[한자썰94] 憲, 법의 사회적 기원

일산(日傘), 백성의 마음(心)을 얻다.


憲(법 헌): 宀(집 면)+丰(예쁠 봉)+罒(그물 망)+心(마음 심)


금문 憲(법 헌)은 일산(日傘) 아래에 커다란 눈이 달린 모양이다. 일산은 지금의 양산(陽傘)과는 사뭇 다르다. 햇빛((陽)이 아닌 태양(日)을 가려야 하니 그 덩치가 엄청나다. 당연히 휴대하지 못하고 수레 위에 탑재했다. 하이엔드급은 그 둘레에 휘장을 치기도 했다 한다.


그런 일산은 고대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로, 그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그러니, 금문 憲의 하단에 번득이는 눈은 위엄에 찬 세도가의 것이다. 거대한 일산이 태양을 가려 깊은 그늘을 만드니 사람의 형체가 흐려지고, 드러난 것이 오직 그 자의 사나운 눈초리다. 【 그림 1 1, 2 】주 1)


그런데, 금문 憲에는 수레와 휘장의 흔적이 없다. 생략이지 부재가 아니다. 幰(수레휘장 헌)이 그 힌트다. 수레휘장 헌(幰) 자에서, 巾(수건 건)이 휘장이니 憲은 수레일 밖에…! 일산 없는 수레는 있으나 수레 없는 일산은 없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 그림 1 】 憲의 자형변천

비 피하는 것이 사치인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뭍 백성들에게는 우산조차 드물다. 하물며 햇빛인들 가리고 다녔으랴! 백성의 삶과는 너무나 머나 멀고 높기만 한 일산의 기세에 억눌려, 백성들은 그저 머리를 낮추어 조아려야 했다.


빛나고 두드러진 것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무언가를 멈추게 하는 것들의 속내는 자신이 그 무언가를 젖히고 빠르게 나아가려는 데에 있다.


그런 식으로, 수레가 백성들 사이를 빠르게 통과했기 때문일까! 憲은 원래 ‘민첩(敏捷)하다’에 쓰였다. 차차로 민첩(憲)은 '앞서 가는 자', '갈 곳을 정하는 자'로 파생하더니, '관리', '관청', '관아', '깨달음', '가르침'... 등의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세도가들이 자신들에게 붙여지기를 바라는 것들에 다름 아니다.


금문 憲은 진(秦)에 이르러 心이 추가되어서 오늘날의 憲 자가 된다. 권력을 지키는 것은 눈(罒=目)으로 감시하는 것만으로 이루지 못하며, 백성의 마음(心)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다스리는 자들이 제 멋대로 하는 통치로는 그 마음(心)을 얻기가 어려우니, 법이라는 정해진 규율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진(秦)의 법치다. '왕이 곧 나라'였던 때이니 민주적 가치는 결여되었지만 그럼에도 지배체계가 진일보한 것은 명백하다. 그리하여 비로소 憲은 법이 되었다. 주 2)


憲(법 헌)은 진(秦)의 법치주의를 잘 담고 있다. 치국의 근본은 백성을 감시하는 것(罒=目)인데, 그 지향은 백성을 마음을 통제(心)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강력한 권위와 위력(日)이 뒷받침된 전국가적 규율(憲)을 세밀하게 갖추어야 한다. 진(秦)은 憲을 기치로 하여 모든 것을 통일했다. 사분오열의 열국과 문자, 화폐, 도량형, 심지어 마차 바퀴의 폭에 이르기까지.... 주 3)


【 그림 2 】 憲의 자형변천

사족, 사람을 진정으로 다스리려면 그 속 마음을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알 방도는 없다. 고작 말과 몸짓, 표정에 의지하지만, 아무리 보고 듣고 만져 본다 한들 진짜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설사 이제 알았다 한들 다음은 달라지기가 일쑤다.


마음은 감시한다고 될 일은 아니니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권위다. 그런데, 그 권위를 따르게 하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 권력이 없는 권위는 허무하다. 따라 줄 때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향을 주지 못하는 권위를 일러 나르시시즘이라 부른다.


한 때, 그 권력을 무력으로 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최후는 대부분 처참했다. 금권에 휘둘릴 때도 있었다. 칼보다 돈은 훨씬 더 교활하고, 심지어 달콤하기까지 해서 그 음험한 행사를 깨닫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그 끝 역시 참혹하다. 자기 곳간이 차고 넘치면 남의 곳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돈의 악마성 때문이다. 그 무엇이든 다스림을 받는 자들로부터 받은 권력이 아니면 그 권력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다. 심지어 '가졌다', '이루었다' 착각하는 소수 권력자에게까지도 그렇다.


드높은 일산(日)이 백성의 마음(心)을 얻으니, 憲은 드디어 법 중의 법, 법 위에 법, 헌법(憲法)이 되었다. 백성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헌법(憲法)을 팔고 왜곡하는 자들에게 일산을 씌워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憲의 간체자는 宪이다. 눈(目)과 마음(心)이 사라졌다. 중국 공산당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민중의 마음(心)보다 그 앞에 세운 엘리트주의(先)가 간체자에 숨어있다. 그러고 그것은 결코 남의 나라 서정만이 아니다. 哈哈。


주) 1. 한자에서 눈(目)은 보통 얼굴(面)을 표시한다. 보통 첫 눈길을 끄는 것이 그 사람의 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面의 중심을 目이 차지한다.

2. 인류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그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최초에 소규모 집단은 몸짓과 말 그리고 눈으로 소통하고 집단을 통제하는데 충분했다. 하지만, 마침내 거대해진 인간집단은, 국가, 법, 종교, 화폐, 제국이라는 조작된 상상들이 부여하는 질서 속에 살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생각이다. 憲 자에도 그런 생각의 기미가 있다.

3. 마차는 다른 마차들이 남긴 바퀴 자국을 따라서 다니게 된다. 마차바퀴 자국이 궤도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폭이 서로 다르니 문제가 생긴다. 좁은 자국을 넓은 바퀴로 다니면 미끄러져 마차가 요동한다. 거꾸로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마차바퀴 폭을 통일하는 것은 교통정책의 혁신이다. 한편, 진의 통지체계가 얼마나 세밀하고 강력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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