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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Dec 26. 2023

적당히 살고 싶어요.

80% 인생

타다다다닥

서걱서걱

교실 안에는 볼펜 소리만 들렸다. 수험생들이 얼굴을 책상에 바짝 붙이고 전완근을 쥐어짜며 답안지를 채우는 소리였다. 나는 쫓아오는 볼펜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손해사정사 시험장. 나는 4과목 중에 3과목을 답안 대신 해바라기 그림으로 채웠다. 시험 점수는 400점 만점에 44점이었다. 나는 왜 치열하지 않았을까?

나는 자주 좌절했었다. 운동회에 율동을 잘해서 맨 앞줄에 나가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윤하였을 때, 일본어 히라가나는 100점을 받고 가타카나부터 42점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나태했었다. 나는 그저 그런 어중간한 사람이니까. 시험 기간엔 엠씨스나이퍼의 신곡 가사를 적는 게 덜 좌절스러웠다. 읽기는 쉬우면서 뇌리에 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는 자기 계발서는 휴지 조각 취급했다.

2019년 총점 44점을 받은 시험장에 앉기 전까진 치열에 발가락 하나 담그지 않았다. 적당히 타올랐다가 열을 내지 못하고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시험장에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교실 안에 있던 5번 이상 낙방한 팀장님과 1달의 휴가 동안 공부한 후배에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열기에 내가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랄까. 나는 장수생이 되기 무서웠거나, 끝까지 해낼 용기가 없어서 대충 했을거다. 그러고 난 공부 안 했으니 떨어져도 괜찮다고 쿨한 척했을거다. 좌절을 걱정해 시작도 않는 겁쟁이 같았다.

용기를 내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끝을 봤다. 공부하다가 멍청이 같은 뇌를 탓하며 흘린 눈물과, 새벽 5시에 불 꺼진 회사에 앉아 공부한 시간과, 중지 손가락이 굵어지도록 쓴 수십 자루의 볼펜이 모여 손해사정사가 되었다. 우물 안에서 적응하며 살던 내가 우물 밖으로 한발 내딛는 시간이었다.

시험 합격 이후 나는 더 나태하다. 이 정도면 10년 동안 아무 일 안 해도 만족이다. 내가 시험을 합격하고 얻은 거라면 명함에 새기는 손해사정사라는 다섯 글자가 다이다. 그래도 '나는 마음먹으면 다 한다'를 알게 되었으니 당분간 잠재력을 잠재울 예정이다. 좌절의 페이지는 덮고 치열한 페이지도 넘기고 80% 정도만 하는 인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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