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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Jan 17. 2024

아무튼 칼퇴

퇴사방지위원회

후배가 또 퇴사를 한단다. 농담까지 더하면 셀 수없이 많았고, 진지하게는 세 번째 퇴사 선언이다. 스타벅스 기프티콘 보내주면 잡히려나, 모른 체 지나치면 퇴사욕이 사그라지려나. 고비를 넘기다가 이번엔 진짜로 퇴사를 한다. 나는 아무튼 동료를 보내주기로 했다. 보험일을 8년 하면서 보낸 이들이 45인승 버스를 가득 채운다. 그들이 탄 버스가 저승길 같길 바랬건만 소풍길처럼 즐겁게 보인다. 좋겠다. 배가 아파오지만 나는 회사를 끝까지 지킨다. 내가 하는 일은 왜 다 같이 행복하지 못하나? 밤 11시까지 사무실 불이 켜져 있고, 주말에도 나오고, 밥도 못 먹고 일하고, 불어난 일에 숨이 막힌단다. 왜 그들은 행복하지 못하나?


일이 야속하다. 나에겐 친절한 일이 동료들에겐 지옥불 같다. 나는 왜 행복하나? 공황직전에 빠진 후배를 두고 6시 땡 소리와 함께 퇴근해서, 손가락 가득 꼽는 취미가 있어서, 잘한다 잘한다는 칭찬이 들려서, 퇴근 후엔 일생각은 일도 안 해서 숨통이 트인다. 아무튼 나는 칼퇴의 아이콘이다. 칼퇴가 답이다. 당연한 걸 손해사정사 업계에선 왜 1%의 극소수만 누리는지 모르겠다. 일이 제발 상식적으로 굴러갈 날이 오긴 할까. 아무튼 모르겠다. 일 잘하려면 칼퇴를 하라고 한다. 행복하려면 칼퇴를 하라고 한다. 그게 정상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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