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르만혜서 Jan 25. 2024

택 퀴즈 온 더 블록

택시는 낭만을 싣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좋다. 요즘은 도파민이 과잉공급되는 시대이다. 재미 인플레이션 때문에 늘 재생할 것을 탐색하고 있고 선택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뭘 해도 심심하다. 그럴 땐 운전대에 손이 묶이고 전방 주시에 눈이 메이는 멍타임이 필요하다. 나는 멍한 시간이 좋아서 택시 기사가 되고 싶다.

나는 택시 기사가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지만 문득 택시 기사의 사연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나는 끼고 있던 에어팟을 빼고 기사님께 본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사님은 34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퇴직 후 법인 택시 회사에 들어갔다. 올해로 택시 기사 3년 차. 은퇴 후 집에만 있다 보니 안사람과 자꾸 다투게 되어서 도망친 곳이 택시 안이라고 했다. 사납금으로 매일 19만원을 내고 하루 14시간씩 일해야 예전만큼 번단다. 중앙선 침범사고로 아내와 아들이 다친 중년 손님을 태워다 준 이후로는 매일 아침 차 타고 나서는 게 무섭다고 하였다. 회사 후배가 택시에 타서 "요즘 가세가 많이 기우셨습니까?"라는 말을 듣고 당황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기사님은 34년을 일하고도 쉬지 않는다. 더 무서운 안사람을 피해 한적한 곳에 택시를 대고 쉬는 게 낙인듯 보였다.

한바탕 택퀴즈타임을 하고 나니 택시 기사에 대한 낭만이 더 뚜렷해졌다. 내가 하고 있는 손해사정사 일이 천직인 것도 운전이 좋아서이니까. 내가 택시 기사라면? 짙은 초록색 차에 카카오택시 기사 사진은 MZ 사진으로 하고 뒷유리에 레이스 커튼도 달면 완벽하다. 재지팩트의 always awake를 왕창 듣다가 30킬로 구간단속도로에선 봄꽃 날리는 바깥세상을 응시한다. 타인의 발길을 인도하고 돌아가는 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게에 차를 세우는 모습, 뉴에이지를 틀어놓은 고요한 택시 안을 상상한다. 상상만으로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튼 칼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