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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Jan 31. 2024

인생노잼시기


민은 허무와 공허 사이를 배회했다. 민은 삶의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겠다고 그렁그렁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민의 허무함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아침마다 눈을 뜨기 싫었다는 그녀에게 취미를 가져보는 게 어때? 글을 써보는 게 어때? 답 없는 질문만 할 뿐이었다. 나의 배부른 조언들은 소용이 없었다. 민의 밤은 늘 파랬고 아침은 쉬이 밝아지지 못했다.


민은 나에게 ”너라도 행복해, 난 네가 행복하면 돼 “라고 거듭 말했다. 내 행복 속에서 이유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행복했다. 집은 개그 무대요, 산은 천연 헬스장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나의 가득 찬 삶 속에서 허무한 시간은 찰나였다. 나는 삶의 의미를 몰라도 괜찮았다.


서른 중반의 초입에 선 나에게 푸른 어둠이 찾아왔다. 집엔 가기 싫고, 산은 춥고,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한다. 나는 허무했다. 요즘따라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이 말라비틀어진 생선 같다. 좋을 거라 생각했던 여행은 지루했다. 주변에서 들리는 좋은 소식에 조바심이 난다. 3년에 한 번 온다는 그 시기가 왔다. 인생 노잼 시기.


인생 노잼 시기에는 아무 노력도 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에게 애쓰는 정성도 놓아버린다. 취미를 가져도 안돼. 글을 써도 안돼. 답을 정할 뿐이었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전한 쉼과 에너지를 모아둘 시간. 푸른 어둠이 드리운 밤에 나는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내일 아침에는 암막 커튼을 걷고 해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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