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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May 22. 2024

달리 되었더라면

나는 소풍날 새로 산 푸마 후드를 입었다. 신입 고교생에게 쥐색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는다는 것은 결혼식에서 드레스를 입는 신부보다 설레는 일이었다. 분홍색 푸마 로고가 박힌 크림색 후드는 아주 반짝였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듯한 나였다. 실제로 나는 황매산 중턱에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별안간 2학년 오빠들이 나를 중심으로 빙둘러 섰다. 그 가운데 서서 내가 버스정류장 마주칠 때마다 힐끔 훔쳐보았던 2학년 선배가 나에게 사귀자고 고백하였다. 나는 신기했다. 내가 귀엽다고 생각했던 오빠가 고백을 하다니! 그것도 이런 부끄러운 방식으로 공개 고백이라니(지금 나의 흑역사가 된 사건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된 그때의 나는 부끄럼은 뒷전이고 그 오빠가 우선이었다. 수줍게 고백을 받아준 나는 나와 키가 똑같았던 그와 손을 잡고 황매산을 내려왔다. 그렇게 나의 첫 공식 연애가 시작되었다. 사랑하지 않았던 첫 연애지만 그가 불러준 노래는 그때의 목소리로 지금까지 귀에 맴돈다. 달리 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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