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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Jun 15. 2024

터키기행(Türkiye奇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난 그런 여행은 안 가고 싶어요 “

나의 터키 해외연수 소식을 들은 누군가가 그랬다. 그는 진짜 가고 싶지 않아 보였다. ‘그래 낯선 회사사람들에다가 후배면 불편하지. 게다가 대표님 앞에선 행동도 조심해야 하고... 건배사는 또 어떡하냐 ‘ 나는 납득이 되어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앞으로 다가올 터키에서의 여정이 아득하여 고개를 휘저었다. 나는 연수를 앞두고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병까지 진단받았다. 항호르몬제를 먹기 시작할 무렵 옆구리 피부의 감각도 없어졌다. 인천공항으로 떠나야 하는 당일아침, 나는 대상포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마취통증의학과를 갔다. 10일간의 해외 일정이 있으니 대상포진이 아니더라도 약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인천공항의 집합장소에는 인사말고는 아무리 쥐어짜도 할 말이 없는 선배들이 모여 있었다. 어색한 기류에 나는 긴 비행시간도 긴 이동시간도 긴 여행기간도 아닌 사람 때문에 힘들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여행초반의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옆구리의 피부병은 점점 커지고 번지고 있었다.


터키에 가면 열기구는 꼭 타봐야 한다고 했다. 검색해 보니 열기구만 선택관광비용이 310유로(한화로 약 46만원)였다. 나는 회사에서 가는 연수인데 열기구를 꼭 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인생에 단 한 번이라는 최면을 하면서 선택관광 비용과 여비로 100만원의 돈을 준비해 갔다. 내 생각과 다르게 우리 회사는 참 좋은 회사였다. 모든 선택관광이 포함된 최고급 패키지이기 때문에 열기구는 당연히 공짜로 탄다고 하였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터키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터키 영토 특성상 버스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버스 안에서 지나치는 창 밖 풍경은 그 어떤 유튜브 쇼츠보다도 흥미로웠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안과장님과 2시간 대화를 하다 보니 ‘아 또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라는 생각에 엔도르핀이 돌았다. 차곡차곡 도파민 빌드업을 한 나는 용기를 얻었다. 술과 도파민의 합작으로 나는 거창한 건배사를 했다. “저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1:1 대화는 강한 편이에요. 앞으로 버스에서 대화신청을 하겠습니다!!”


아침이 되어 나는 전날 밤의 건배사를 후회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던 찰나, 중간이었던 버스자리를 옮겨 대표님 뒷자리에 앉았다. 건너편 옆에는 대구 박선배에게 메신저로 나의 성격을 물었던 김파트장이 앉아 있었다. 2시간의 긴 공백을 깨고 나는 간신히 말을 걸었다. “박선배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이었다. 김파트장은 대표님 뒷자리인지라 말을 조심하는 눈치였다. 어색한 기류에 대표님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 대화신청하려고 온 거야? 내 옆으로 오게 “. 나는 넙죽 대표님 옆자리에 앉았다. 1시간 40분 동안 나와 대표님은 목이 아프도록 대화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대학 자퇴하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부터 내가 시험관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까지 말했다. 이 위험하고도 생소한 대화로 인해 대표님과의 내적친밀감이 생겼다. 30년 치 사회생활을 이 대화로 다 이룬 것 같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이날부터 나는 밤에도 버스 안에서도 불면에 시달리게 된다. 논문을 찾아보니 과도한 도파민은 수면을 방해한다고 한다. 약국에서 파는 약한 수면 유도제를 챙겨 와 먹어봤더니 눈을 감아도 영화 같은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각에 놀란 나는 잠을 포기하고 브이로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터키 하이라이트는 안탈리아라는 도시이다. 계곡물 같이 맑고 싱거운 지중해 바다 앞에서 나의 조증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펍에 앉아 세상에서 제일 멋진 회식을 하게 되었다. 대표님이 가이드가 버스에서 말한 박상민의 지중해를 들어보자고 하길래 나는 총알처럼 튀어나가 종업원의 휴대폰으로 노래를 검색했다. 이국땅 스피커로 박상민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로도 우리의 신청곡들로 지중해를 울렸다. 취기가 잔뜩 오른 나에게 대표님이 묻는다. “강주임은 주량이 어떻게 되나?”, 나는 꼬불꼬불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3리타 마셔요.” 다들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제가 과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사실은 2리타예요.”라고 다급히 부연설명을 하였지만 나의 주량은 어느새 3리타로 소문이 났다. 대표님은 진짜 3리타인지 봐야겠다며 파도타기와 쓰나미 폭격을 하였고 나는 지중해 앞바다에서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주량 자랑과 객기는 안 부리는 게 맞지만 나는 2차 자리도 따라갔다. 옆에 있는 대표님은 자꾸 소주를 주고 앞에 있는 장선배는 나에게 자꾸 컴다운하라는 손동작을 한다. 선배들이 공공칠빵으로 나를 자꾸 죽이려고 한다. 박센터장은 마취총을 가지고 오라며 날 좀 마취시켜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당연하게도 나는 이불킥을 했다.


3시간 정도 잤을까? 새벽 5시에 눈이 떠진 나는 그대로 바다로 나갔다. ‘내가 오늘 이불을 차다가 죽나 러닝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나 그게 그거지...’ 나는 지중해 해변가를 뛰었다. 뛰다가 심장이 진짜 멈출까 봐 발을 멈추고 몽돌해변에 누웠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나는 어떡해야 하나 앞날이 아득했다. 그렇지만 아침은 계속 떠올랐다. 항생제와 숙취와 멀미로 버스 안에서 오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오열하다가, 취소될 뻔한 공짜 열기구도 타고, 에페소에서 아이돌 놀이도 하면서 어영부영 2일이 지났다. 나는 매듭짓지 못한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이스탄불로 넘어가는 공항에서 대표님 옆자리에 또 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엊그제 술 마시고 실수한 건 없었을까요?” 다행히 없다고 하였다. “대표님 제가 고민이 있어요. 술 마시고 실수할까 봐 너무너무 무서워요.” 대표님은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며 1년 정도 단주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내가 볼 때 강주임은 술 마시고 실수할 확률이 99.99%야. 그러면 술을 아예 끊는 게 나아” 나는 아쉬운 마음에 “맥주 한잔도 안 되나요?”라고 했다. 돌아오는 대표님의 답변은 단호했다. “안돼. 한 모금도 마시지 말게. 앞으로 나는 강주임 옆자리에도 못 오게 할 거고, 술도 권하지 않을 걸세.” 나는 매듭지어진 실수도 좋고 대표님의 단주선언에 얻은 뜻밖의 횡재도 좋았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귀국날 만나기로 한 민이에게 연락했다. 다들 어떻게 집에 돌아가는지, 공항버스는 예약했는지 묻길래 나는 자랑스럽게 친구가 데리러 올 거라며 으스댔다. “아 근데 이 친구가 당일 약속 취소를 잘하는 친구라 지금 물어봐야겠어요.”라는 멘트도 덧붙이며... 민이는 아니나 다를까 나와 약속한 날에 업무일정이 있다고 하였다. 나는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화를 냈다. ‘나랑 먼저 약속했잖아’ 화의 크기와 다르게 점잖은 카톡을 날리고 나는 또 울었다. 선배들이 그런 사람이랑 왜 친구 하냐는 질문을 한다. 나는 코를 훌쩍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민이는 웨딩카도 해주고 내 글도 읽어주고 아낌없이 주는 친구다. 나는 민이가 아무리 당일약속취소를 해도 계속 친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때마침 민이에게 답장이 왔다. ‘아니야 나 일정 바꿨어. 너랑 약속했는데 보는 게 맞다. 그날 보자’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민이는 나의 점잖은 카톡을 보고 내가 화났다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하나뿐인 친구를 잃으면 안 된다고 업무일정을 바꾸려고 거래처에 사정사정했단다. 나의 귀국날 늦으면 안 되니까 새벽 6시에 일어났다고 했다. 안 내던 화를 냈더니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남은 여정 동안에도 안 하던 짓을 했다. “100만원에 행복을 사면 싼 거지”라며 이상한 물건들을 샀고, 항상 꾸역꾸역 하던 건배사를 두 번이나 자진해서 했다. 시원한 맥주 앞에서 생수를 마시고, 낯선 이국땅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이스탄불의 공원에서 조심조심을 구호로 외치며 미친 사람처럼 조깅을 하였고, 쓰레기를 주워 공원 청소부에게 가져다주면서 “아임 프롬 코리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터키기행(벼리紀 다닐行)에서 나는 기행(기이할奇 행할行)을 일삼았다. 나는 글쟁이답게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어갔다고 생각한다. 터키에는 나의 개그에 웃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도파민은 충분했으며 불면으로 시간도 두배로 살았으니 동기는 충분했다. 요즘 로또는 5천원을 훔쳐가는 불운 덩어리인데, 나의 기행 뒤에는 로또 못지않은 행운이 따랐다. 대표님의 단주선언도 행운, 기념품샵에서 깨트린 비싼 접시도 행운, 공항에서 마신 190리라짜리 레모네이드도 행운이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외면했던 자기 계발서 속 성공가가 내가 될 것 같다는 생각말이다. 나는 기행(奇行) 후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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