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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Oct 17. 2024

결혼금지령

나는 동생의 인생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한 날은 8촌 친척이 민석이가 결혼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나는 민석이라는 사람과 결혼이라는 단어의 조합에 뜨거운 난로 위에 발을 댄 듯 펄쩍 뛰었다. 민석이는 나의 4동생 중 첫째이자 나에게 투명인간 같은 동생이다. 그 이유는 장애가 있는 엄마가 한동안 투명 인간이었던 것과 같다. 동생이 스스로 앞날을 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여러 번 그의 인생을 가로막았다.

먼저 민석이를 소개하겠다. 민석이는 12년의 학교생활 내내 특수반에 있었다. 장애 진단을 받진 않았기에 미미한 가정교육 탓에 그저 학습이 좀 모지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민석이의 졸업을 앞두고 특수반 선생님과 장애인들이 모여 일하는 공장에 갔다. 간단한 나사 조립만 하면 월급도 주고 숙식도 제공하는 곳이었다. 민석이는 나사 조립을 곧잘 했지만 공장이 아닌 시골에서 8촌 친척의 농사를 도우며 지내기로 했다.

민석이는 10년 동안 농사일을 하며 온몸이 석탄같이 까매지고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농사를 시작할 무렵, 병음료를 들고 찾아간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지적장애 진단도 받았다. 농사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부탁이었고, 장애진단은 친척들의 합심이었다. 나는 매 순간 친척들이 신경 써준다는 핑계로 민석이에게 무관심했다. 나에게는 그저 버겁고 성가신 일이었다. 나는 나 살기에만 급급했다.

친척의 논에서 일하는 민석이가 가끔 노예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엄마도 민석이도 적은 돈을 받는다고 느꼈다. 민석이가 친척과 부딪히는 날이 많아지고, 얼굴이 햇빛에 타 죽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때쯤 나는 농사를 그만두라고 하였다. 너 정도면 동네에서 더 비싼 돈을 주고 쓸 거라며, 차라리 공공 근로라도 해보는 게 낫겠다고 그랬다. 갈등이 피어나기 시작하니 8촌 친척과 5촌 친척은 민석이를 두고 불같이 싸웠다. 5촌 아지매는 민석이가 불쌍하다며, 그간 민석이가 번 돈으로 집을 살 거라고, 8촌 친척은 우린 헌신했다고, 그 집은 비싸니 안 사는 게 낫다고 난리가 났다. 우리 집 일로 난 싸움에 동생들과 나에게는 두 친척들의 전화 폭탄이 이어졌다. 결국 집은 샀고, 민석이는 가여운 농사일을 그만두었다.

그동안 농사를 그만두고 민석이는 어떻게 지냈을까? 나의 공공 근로 계획은 검색창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고, 늘 그랬듯 나는 그에게 무관심했다. 일거리가 없어진 동생은 집안에 박혀 히키코모리가 되어갔다. 10년간 일해 산 6200만 원 촌집은 수리를 미룬 채 잡초가 무성한 폐가로 변했다. 나의 무관심은 민석이를 망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지는 않았다. 엄마도 간신히 정이 들었는데 동생은 정말 남 같아서. 남에 가까운 친척들만이 민석이를 살폈다. 참으로 고맙게도.

민석이는 뽀얀 얼굴색이 보이려 할 때쯤 다시 친척의 논으로 갔다. 다시 친척과 가까워지니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 친척들이 민석이를 베트남 여자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동네에 50대 노총각이 32살인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잘 살더라면서 나를 설득했다. 나는 맹장이 터질 때까지 병원도 못 가는 애가 무슨 결혼이냐며 반대했다. 장애가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나와 동생들이 불쌍해 눈물까지 흘렀다. 그 가정을 또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자 친척은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한다. 민석이의 행복도 중요하다는 친척의 열변에도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무관심을 위해 민석이의 행복을 가로막았다. 나는 민석이에게 유독 비관적이다. 친척은 민석이에게 낙관적이다. 나는 친척들의 친절하고도 불쾌한 개입이 무섭다. 그리고 나의 개입들도 무섭다. 나는 결혼 금지령을 내리고 무서움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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