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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노운즈 Feb 21. 2022

[사춘기 아들 공부] 엄마는 다 계획이 있단다!

공부 이야기는 규칙과 계획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큰아이의 공부는 초등 입학 전 해. 그러니까 7살 가을에 시작되었어요. 한글을 빠르게 가르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여서 유치원 받아쓰기에 0점을 받아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연습도 시키기 않았어요. 하지만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니 적어도 받침 없는 글자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기적의 한글 학습법'을 주문했지요. 아침에 등원하기 전 한 주에 한 챕터씩, 예를 들어 첫 주에는 '아~이'까지, 둘째 주에는 '가~기'까지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했지요. 약 10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 있게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어서 처음에는 아이를 집중시키려고 소리도 쳐보고, 보상도 걸어보고 갖은 노력을 다 했어요. 여러 번 반복해도 또다시 기억해내지 못하는 모습에 단전 깊숙한 곳에서 열불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1권과 2권까지를 목표로 하고 당분간 한글 공부는 쉬어야겠다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처음 1권은 너무 어렵게 배우더니 2권 후반부에는 속도가 좀 붙더군요. 마지막 '카~하'까지는 주말 사이 다 읽어내는 쾌거를 보였어요. 오예! 그리고 한글 공부를 쉬게 됩니다. 제 성질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렇게 10주의 한글 공부 시간이 지나고 연말이 되었을 즈음 어느 날 아이가 집에 있는 동화책을 제목을 읽기 시작합니다. 신기하더라고요. 그동안 한글 연습을 안 했는데도 아는 글자를 찾아서 더듬더듬 읽더라고요. 그렇게 아둔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글자를 읽게 되는 모습에 얼마나 기특하던지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켜나가는 모습에 감탄, 또 감탄을 했지요. 다른 아이들은 영어도 배우고, 수학 학원도 다닌다지만 사실 아이의 공부에 그렇게 조바심이 나지 않았어요. 남들만큼은 할 수 있는 아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청소년 아이들의 학습상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진리 '공부 시간이 늘어나면 성적은 오른다(feat, 중위권)'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1학년 때엔 한글을 알고,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랐고, 교과 수학 정도만 잘 따라가도록 지도하자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아이가 아직 한글을 완벽하게 몰라요.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받아쓰기만 100점 받게 준비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셨고(그 당시 아직 1학년에 받아쓰기가 있었음. 현재는 미실시.), 선생님 말씀이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모범생적인 이 엄마는 아이의 첫 받아쓰기 시험 전에 열성을 다합니다. 불러주고 쓰게 해 보고, 따라서 쓰게 해 보고 여러 방법으로 훈련을 했지요. 저희 때완 달리 받아쓰기 문제 표를 주시더라고요. 사실 10 문장만 외우면 되는 거니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어요. 아이의 받아쓰기 시험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는 그날 원주에 있는 대학에 강의를 가는 날이었고, 남편이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왔어요. 아이 하교시간에 맞춰 급하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받아쓰기 몇 점 이래?' 남편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70점'..... '뭐? 걔 **거 아냐? 며칠 동안 연습을 그렇게 했는데, 70점이 뭐야?!'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는 저에게 남편이 느긋한 목소리로 한마디 합니다. '받아쓰기 점수로 대학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화를 내.'.... '아... 맞지... 그렇지?!'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부모교육을 하며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늘 당부하던 말이 있습니다. '성적표 받아보시고 절대 화내지 마세요. 표정 관리를 똑바로 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이 시간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을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막상 이게 제 일이 되니 황당한 마음에 쉽게 이성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여하튼 아이를 기르면서 제 부모교육의 방향이 상당히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생각하긴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이 부모 노릇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지요. 

  아이 입학 후 4월 정도가 되자 발 빠른 엄마들이 모범적인 아이들을 골라 다양한 모임을 만듭니다. 논술과외팀이나 수학공부방팀이 만들어지더군요. 모범생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에 가까운 저희 아이에게 팀에서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왠지 아싸가 된 것 같고, 아이와 저 모두 무능한 것 같아서 살짝 위축되더군요. 5월이 되자 많은 아이들이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합니다(2013년만 해도 영어를 지금처럼 일찍 시작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놀이터에서 놀 친구들도 몇몇 남지 않게 되었죠. 그 당시 천재교육에서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중이었는데요, 아이의 입학 선물이라며 '우등생**'시리즈의 문제집을 선물로 받습니다. '아! 수학 공부를 시작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문제집은 다 처박아두고 수학 문제집만 고이 꺼내 펼쳐봅니다.

  그날부터 아이와 하루 3장 수학 문제집을 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하루에 독서 40분, 수학 문제집 3장이 학습의 목표입니다. 한글에 어느 정도 숙달된 아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매일 빌려와 읽고 반납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그 당시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쿠키런이라는 만화책과 내일은 실험왕(초등 고학년까지 사모으며 읽었답니다)은 아이의 최애 도서목록이었지요. 독서는 크게 힘들지 않았는데(지적인 호기심이 많은 기질), 막상 수학을 풀리려니 처음 한글을 가르칠 때처럼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지문에 제시된 수학 문제를 소리 내어 읽게 했는데, 소리 내어 읽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지요. 예를 들면 '보기를 보고 가장 작은 숫자를 구하시오'란 지문의 형식이 아이에게는 마치 암호문처럼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읽기는 '이해하기' 영역의 읽기였고, 드문드문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도 책 내용 전체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요. 수학 문제의 지문은 문장을 이해하고, 그 안에 주어진 조건을 파악하여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지 전략까지 세워야 하니 아이에겐 정말 낯선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하면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고(소리 내어 읽기는 아이들이 눈으로 글을 읽을 때보다 읽기 속도를 늦추어 주므로 천천히 문제를 곱씹어볼 기회를 줍니다), 어떻게 풀면 좋을지 떠오르는 생각을 말로 표현해보라고도 하고요. 아이가 문제를 직접 다루도록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려 노력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고른 첫 책이 아이에겐 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문제집을 다 풀리고 뒤를 보니 뒤편에 이 문제집의 난이도가 중상+상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사실 첫 문제집이라면 '하'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는데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초등 1학년 2학기에는 개념서+응용서+응용서의 좀 더 안정적인 세팅으로 수학 공부를 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학습 상담을 진행하며 확신하고 또 확신했던, '스스로 하는 공부만이 나의 것으로 남는다.'는 진리를 믿고 또 믿기 때문에 수학은 아이가 스스로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시점이 되면 학원에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늘 학습 시간을 여유롭게 잡았고, 그 덕에 아이는 개념 부분을 충분히 읽어보고 문제를 천천히 풀어 조급하게 공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 학기에 3권 정도의 문제집을 꾸준히 풀어나가니 수학 학습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엔 속도를 높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학기 선행을 목표로 하루에 5장씩 문제를 풀며 한 권의 문제집을 끝내는 시간을 줄여보았습니다. 아이가 잘 따라가더라고요. 초등 5학년 여름이 되자 1년 정도 선행이 가능했습니다. 선행 속도가 올라가면서 현행으로는 심화 문제집을 풀고, 선행으로 개념과 응용문제집을 푸는 식의 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중학교 1학년까지 1년 정도 선행이 가능했는데요. 아무래도 코로나로 등교를 덜 하고 훈련을 못 가는 날도 생기면서 가능했던 일이었나 봅니다. 정상 등교(학생수가 적어서 일반 학교와는 다르게 거의 전일 등교를 합니다)를 시작하고 다른 과목의 학습도 중요해지면서 수학의 학습량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제는 한 학기 정도 선행을 겨우 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하는 운동선수로 치면 학습의 양이나 난이도가 부족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와 뒤돌아보니 제가 '엄마표 수학'을 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1학년 첫 번째 문제집 이후로는 같이 문제를 풀어준 적도 없고, 개념을 설명해준 적도 없으며, 초등 고학년 이후로는 채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엄마표 수학'이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제 역할은 교재를 선정하고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정도였지요. 아이와 오랜 시간 공부를 해오며 물론 화가 나고 속상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사건도 분명히 있었지만 거의 다섯 손가락에 꼽힐만한 숫자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글을 쓰며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아이의 학습에서 저만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1. 초등 3학년까지는 선행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라면 4학년부터는 속도를 올려보자. 2. 초3부터는 심화 문제집도 학습계획에 넣는다. 3. 아이가 답지를 베끼거나 눈속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학습에 대해 절대 화를 내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4. 학습량은 아이와 함께 정하고 분명하게 명시한다(보통은 학습량과 공부 절차 등을 책의 겉 페이지에 매직으로 적어둡니다. 그 책을 마무리하게 될 날짜까지요). 5. 밀린 계획은 다음 주로 넘기지 않으며, 오랜 기간 동안 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 1.5배의 분량으로 학습량을 늘려 부족했던 부분을 메운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작년 아이의 학습을 위해 만들었던 주간 계획표입니다. 수학과 비문학은 여전히 꾸준히 하지만 다른 과목들은 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바쁜 아이의 일정과 워킹맘으로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는 저에게 이 플래너마저 없었다면 공부는 여전히 했겠지만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하는 믿음을 갖지는 못했을 거예요. 아이가 계획대로 공부를 잘 진행했던 시기도 있고, 뺀질거리며 농땡이를 친 적도 있지만 저는 공부를 계속 스스로 하도록 돕고, 아이는 스스로 해왔다는 그 시간과 기록들(플래너나 책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들에겐 자부심의 근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시라고 의욕만 넘치고 실행엔 실패했던 작년 봄의 스케쥴러를 공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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