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노운즈 Mar 17. 2022

[사춘기공부대화] 고집센 아이

성장을 중심으로 대화해보세요.

  수연이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중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몸의 건강을 위해서 탄산음료를 먹지 않겠다고 한 이후로 지금까지 물이나 우유 이외의 음료수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6학년이 되어 수학 학원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수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부모님의 ‘할 거 다 했니’라는 잔소리 한마디 없이 숙제를 늘 스스로 합니다. 항상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친구였지요.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힘이 있었어요. 왜 이런 친구가 상담을 오나 궁금해지죠? 

  수연이는 수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현행과 선행을 동시에 진행하는 수학 학원을 등록했어요. 초등 고학년이 되어 처음 학원에 다니며 한 번에 많은 양의 진도를 나가다 보니 학원 숙제량에 치여 수학 이외의 다른 공부할 틈이 생기지 않았어요. 막상 열심히 해간 숙제도 연산이 숙달되지 않은 탓에 풀이를 정확히 해놓고 계산에서 실수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게다가 학원에서 모의시험을 보면 늘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해 실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도 부모님의 걱정이었지요. 부모님이 보기엔 공부가 한참 부족한 수연이가 자신의 꿈이 의사라고 이야기를 하자 옆에서 어머니는 민망해하시며 ‘저희가 하라고 한 거 아니에요~.’하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수연이는 큰 병에 고생하신 할머니를 살렸던 의사처럼 본인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공부를 잘하면서 의대에 가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지만, 공부나 실력에 상관없이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어요. 보통 후자의 아이들은 성품 자체가 남을 돕기 좋아하고 의사소통 능력이 높은 아이들인 경우가 많아요. 누군가를 돌보고 상대가 성장하고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는 아이들이지요. 수연이의 진로 검사 결과 사교성과 대인관계 능력이 뛰어나며 동시에 새로운 지식이나 이론,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업무를 좋아하는 ‘사회적 탐구형’이 나왔어요. 의료 보건 관련 업종도 이 진로 유형에 적합한 추천 직업입니다.

  보통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의 수학과 과학 과목을 선행하며 고등 입학과 동시에 최고의 성적을 내려고 준비를 합니다. 의대는 최상위권 학생들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일찌감치 초등 저학년부터 학습 속도를 올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수연이는 한 학기 정도 예습하는 수준으로 수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영어와 사회 교과의 능력이 우수한 학생이었어요. 자신의 진로 성향상 의사라는 직업은 잘 맞지만, 지금까지 해온 학업성취의 결과물을 보면 사회과학영역의 연구자나 교육자가 더 잘 어울려 보였지요.

  지능검사에서도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거나 상대방의 언어적 표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고, 사회적 상황에 대한 지식의 양과 이러한 맥락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했어요. 반면에 수학과 과학을 학습하는데 필요한 논리적 추론 능력과 수를 다루는 속도와 정확도가 평이했어요.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좋은 성과가 분명히 있었지만, 의대를 갈 수 있는 수준은 현재로선 아니었지요.

  자율성과 주도성이 높은 수연이는 자신이 선택한 일엔 최선을 다하지만, 부모님의 지시나 제안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의대에 가려면 주말에도 공부하고 배운 것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수연이는 주말엔 자기 시간을 갖고 휴식을 취하겠다고 강하게 거부했어요. 수연이가 항상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일은 끝까지 해내니 부모님도 수연이에게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라고 강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지요. 하지만 수연이의 공부 방식이나 학습량엔 늘 부족함을 느끼고 걱정하고 계신 상태였어요.

  자기주장이 강한 고집 센 성향의 아이들은 부모 주도적으로 지시하는 것보다 자녀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도록 대화를 통해 도와주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그리고 자녀의 선택이 실패나 실수로 마무리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자녀의 시도와 도전의 중요성을 지지해주고, 돌아가더라도 자녀가 선택한 그 경험 자체가 자녀에게 소중한 경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발적인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해 봐야 직성이 풀리지요.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기다려주고, 실패이든 실수이든 그것을 통해 배운 것들을 부모도 같이 소중히 여겨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수연이에게 정말로 의대에 가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의대를 못 가면 약을 개발하는 분야도 좋다고 대답했어요. 의대나 약대는 말할 것도 없고 생명공학이나 바이오 메디컬 관련 학과는 요즘 매우 인기가 좋고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한데 공부 열심히 할 자신이 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수연이에게 지금 자신의 실력과 앞으로 해나가야 할 목표를 알려주고, 노력하면 가능하지만 꿈이 현실이 되려면 주말에도 공부를 해야하고, 자는 시간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연인 키가 크고 싶다며 매일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주말엔 자기 시간이 있어야 하니 하루 정도는 공부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해왔거든요. 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니 지금 여유를 부릴 수가 없음을 스스로 깨달았지요. 계획을 세울 때 자신의 주장이 분명한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보다 목표를 달성한 시점부터 거슬러 내려오며 시기별로 해야 할 것을 정하는 것이 오히려 수월합니다.

  수연이는 원하는 대학 합격을 위해 고등학교 내신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했고, 현재 수학과 과학 과목의 학습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수학과 과학에서 최상위 성적을 받으려면 적어도 시험까지 6번 이상 반복해서 볼 필요가 있으므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고등 수학을 적어도 3번은 반복해서 학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요. 물론 다른 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우선 수학에 집중해보기로 했어요. 학교에서 현재 배우는 부분은 이전에 예습한 내용이므로 기출문제를 주말마다 풀며 시험에 대비하고,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을 완벽히 숙지하기 위해 오답 복습과 틀린 문제 유형화하기, 문제풀이를 시도도 하지 못한 문제는 문제와 연결된 개념을 찾아 정리하기 등의 계획을 세웠어요.

  수연이는 숙제는 열심히 하지만 모르는 문제를 오랫동안 잡고 있어 학습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숙제도 시험처럼 해보기로 했어요. 시험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문제가 잘 안 풀리면 얼른 다음 문제로 넘어가잖아요. 평상시에도 시험처럼 시간을 재며 정한 시간 내에 문제를 풀기 위해 긴장감을 가지고 숙제를 하기로 했어요. 숙제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 모르는 건 별표 치고 넘어가라고 부모님이 이야기하면 ‘모르는 걸 그냥 넘어가면 마음이 불편해서 공부가 더 안 된다’고 신경질적으로 이야기를 했던 수연이가 숙제 방법을 바꾼다고 하자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했어요. 사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숙제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빠르게 하라는 부모님의 이야기가 수연이에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말로 들렸던 것 같아요. 정해진 시간에 문제 풀이를 도전해보자는 말은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는 말로 들려 기분이 덜 상했던 거지요.

  의사가 되고 싶다면서 막상 학습 시간과 분량은 초등학교 시절 수준에 만족하는 수연이가 답답했던 부모님은 상담을 통해 자녀의 부족한 부분을 들추는 것보다, 지금 어떻게 해야 성공에 가까워질지 이야기하는 것이 수연이 타입의 아이에겐 효과적이라는 점을 이해하시게 되었어요. 자존심이 세고,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길 원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이 방법은 크게 도움이 되는데요. ‘또 실수했어?’라는 말보다 ‘다음에 이런 실수를 줄이려면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말이, ‘이 정도로는 공부가 좀 부족하지 않니?’라는 말보다 ‘이 부분을 완벽하게 알았다고 확신하려면 뭐가 더 필요해?’라는 표현으로 자녀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고집이 센 아이들, 자존심이 센 아이들은 부모의 별것 아닌 질문과 조언에도 쉽게 상처받고 기분 상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힘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에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애쓰고 있는데,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속이 상하겠어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자기주장만 한다고 타박하지 마시고, 물 위에 우아하게 떠다니는 오리의 숨겨진 발차기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 있는 자녀의 마음속에 실패와 실수를 통해 새겨진 좌절감과 무력감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