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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08. 2022

이해할 수 없다면 악마인가요?

광기의 바이올리니스트


▲ 젊은 시절의 초상화, 니콜로 파가니니


영재의 탄생 


1782년 10월의 어느 날,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어요. 그의 이름은 니콜로 파가니니. 우연한 계기로 바이올린을 만지게 된 이 아이는 다섯 살 무렵부터 바이올린과 만돌린*을 연주하기 시작하죠. 이런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본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문적인 음악 교습을 통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바이올린 연습을 시켰다고 해요. 


선천적인 천재성과 노력이 합쳐진 결과일까요? 파가니니는 이후 어떤 스승을 만나든 반년만 지나면 스승의 실력을 따라잡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였어요. 그런데 사실 그는 유전병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유연한 손가락을 소유하고 있었대요. 이는 비정상적인 신체 구조에 해당했지만, 파가니니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어린 나이부터 성인용 바이올린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죠. 이렇듯 엄청난 영재였던 파가니니는 아홉 살 때부터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첫 바이올린 연주회를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만돌린: ‘작은 만돌라’라는 뜻으로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옛 악기를 본떠 만든 현악기이다. 생김새와 연주 방법은 오늘날의 기타와 비슷하다. 


▲ 니콜로 파가니니의 또 다른 초상화


파가니니가 본격적으로 연주자로서 커리어를 쌓으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건 그가 이십 대 후반이 되던 1810년대부터였어요. 당시 그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독주회를 열었고,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졌죠. 파가니니의 놀라운 연주를 들은 관객들은 감동한 나머지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도 했어요.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그의 연주만 들으면 까무러치며 실신했을 정도라고! 이렇듯 엄청난 연주 실력을 지녔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하나만으로 엄청난 명성과 부를 쌓아 나갔죠. 


연주만 들었을 뿐인데 까무러칠 정도라니 도대체 그의 연주가 얼마나 특별했길래 그러는 거예요? 

▲  파가니니 공연의 광고물, 1831


바이올린 기교의 극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는 한 마디로 ‘기교의 극치’ 였어요. 그가 당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바이올린 주법을 여럿 탄생시켰거든요. 앞서 언급했듯 손가락이 유달리 유연했던 그는, 풍성한 화성을 쌓기 힘든 바이올린을 가지고도 4옥타브에 걸쳐 여러 음을 동시에 연주했어요. 또한, 바이올린 현을 오른손 검지 끝으로 뜯으며 연주하는 ‘피치카토 주법’을 그만의 방법으로 변주한 것으로도 유명하죠. 이런 파가니니만의 변주 법은 일명 ‘왼손 피치카토’라고 불려요. 이는 원래 오른손으로 연주하던 피치카토 기법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는 활을 이용해 현을 튕기는 스타카토를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이 주법은 당시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현대 바이올리니스트들조차 연주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주법이래요.


이렇게 새로운 주법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만을 가지고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모방하는가 하면, 갖가지 동물의 울음소리를 재현하고 활이 아닌 나뭇가지로 연주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죠. 심지어 어느 날은 그가 현 두 개로만 연주하는 것을 보고 까무러친 나폴레옹의 여동생이 “혹시 현 하나만으로도 연주가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바이올린 G현 하나만을 이용한 독주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이렇듯 뛰어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기교는 그가 작곡한 24개의 ‘카프리스’에 잘 담겨 있어요. 카프리스란 ‘짧고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역동성이 넘치는 소품’이란 뜻을 가진 음악 용어로, 보통 빠르고 생동감 넘치는 테마들로 시작하는 곡들을 의미해요. 파가니니는 24개의 카프리스를 작곡하며 곡마다 각기 다른 기교를 넣었고, 그중 24번 카프리스는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바이올린 솔로곡으로 남아있죠. 특히 이 카프리스에는 그 유명한 ‘왼손 피치카토’를 포함한 다양한 기교들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어, 악보를 본 당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입 모아 “이건 연주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우와~ 정말 대단해요! 당시 유럽의 음악인과 대중들 사이에서 파가니니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겠어요!

▲  파가니니의 소문에 대한 삽화, 1810년 경


죽어서도 그를 따라다닌 괴소문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파가니니에게는 항상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거든요. 심지어 일각에선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줄은 죽은 전 애인의 창자를 꼬아 만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충격적인 것은 실제로 당시 교회를 포함한 많은 대중들이 이 소문을 굳게 믿었다는 거예요. 깡마른 몸매에 산발 머리, 매부리코를 한 파가니니가 무대 위에서 기괴한 모습으로 말도 안 되는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든 그렇게 믿기에 충분했죠. 하지만 파가니니는 이에 대해 크게 부정하거나 해명하려 하진 않았어요. 그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생각한 것일까요? 이러한 소문을 효과적인 마케팅이라 생각하며 즐기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소문은 죽어서까지 그를 고생하게 만들었어요. 파가니니의 삶은 50대 이후로 급격히 하락세를 겪었죠. 문란한 생활과 도박으로 돈을 탕진했고, 설상가상 유전병으로 인해 건강까지 급격히 악화되며 활발히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어요. 간간이 연주회와 작곡 활동을 이어 가던 그는, 1835년 이후로는 결국 어떠한 연주도 할 수 없게 돼요. 그러던 1840년 5월, 58세가 되던 해, 사경을 헤매던 파가니니에게 한 사제가 찾아와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을 억지로 시인하게 만들죠. 이 때문에 파가니니의 시체는 고향인 제노바에 묻어 달라는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교회 측의 반대로 인해 36년간 이곳저곳을 떠돌게 돼요. 이후 아들의 수없는 청원과 뇌물 공세 끝에 1876년이 되어서야 제노바 교회 묘지에 정식으로 안장될 수 있었다고.


죽은 사람의 시체조차 제대로 묻지 못하게 했다니. 조금 너무한 것 같네요… 그래도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과 음악이 남은 것을 보니, 음악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것 아닌가요?

▲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과르네리 캐논


최초의 비르투오소 


맞아요! 파가니니는 신기의 기교를 가진 연주자를 뜻하는 ‘비르투오소’란 칭호를 받은 최초의 연주자거든요. 이전까지의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교회, 귀족들에게 고용돼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지만, 파가니니는 처음으로 솔로이스트로서 그만의 연주회를 열며 생계를 이어갔어요.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여기저기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19세기의 ‘프리랜서’였던 거죠. 그랬던 그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의 등장을 예고한 연주자로 일컬어져요. 파가니니가 생전 사용했던 바이올린인 과르네리 캐논의 경우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서 정기적으로 연주되기도 한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일각에선 파가니니의 음악사적 업적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해요. 그는 악보를 출판하는 작곡가라기보다는 즉흥 연주를 중시하는 연주가로서 더 뛰어난 평을 들었고, 제자를 거의 두지 않아 특유의 바이올린 연주 기법들 중 상당수가 유실되었거든요. 그래서 그가 활동했던 시대에 진지한 음악가로서의 파가니니의 진면목을 알아본 이도 적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가니니가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열고 낭만주의를 예고한 음악가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낭만주의 음악: 빈 고전파와 현대 음악의 중간에 있었던 19세기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 주로 개인의 개성을 중심으로 서정적인 선율이 펼쳐지는 양상을 띰.


플롯 TMI


파가니니의 24번 카프리스와 라 캄파넬라

앞서 언급했듯 파가니니의 24번 카프리스와 라 캄파넬라는 지금까지도 여러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연주되는 곡이에요. 특히, 24번 카프리스의 경우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로부터 변주되기도 했기에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익숙하게 들릴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이 곡이 궁금할 여러분들을 위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신지아의 연주 영상을 가져와봤어요!


집에서도 이런 고퀄리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어서 확인하러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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