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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May 22. 2022

복수? 너나 잘하세요

웰컴 투 박찬욱 유니버스

▲ 영화 <올드보이>, 출처 : 네이버 영화

5475일 동안 군만두만 먹어야 했던 남자


영문도 모른 채 퀴퀴한 방 한 칸에 감금된 남자. 그는 무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방으로 내던져지는 군만두 8조각 만으로 삶을 연명해야 했어요. 지옥같은 15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 얼떨결에 갇힌 방에서 탈출하게 된 남자는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콰득 씹어먹으며 자신을 가둔 이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을 불태우죠. 앗, 어쩐지 익숙한 장면이 그려지지 않나요? 맞아요! 이 장면은 플로터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한국 영화의 전설,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이에요. 영화 <올드보이>는 박찬욱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만든 작품이기도 한데요, 복수를 위해 떠나는 주인공의 치밀하고도 섬세한 감정 묘사와 화려한 미장센*으로 전 세계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죠. 이와 같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은 영화 <올드보이>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두 작품에서도 그려져요. 그 두 작품은 바로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 그리고 이 두 작품과 더불어 <올드보이>까지, 총 세 작품이 바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라고! 오늘은 박찬욱 감독과 그의 복수 3부작에 담긴 특별한 복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미장센 : 등장인물의 배치부터 역할, 촬영 장비와 조명까지 영화와 관련된 모든 기획을 뜻함.


▲ 영화 <친절한 금자씨>, 출처 : 네이버 영화

복수 3부작, 근데 이제 잔인함을 곁들인


1. 영화 <올드보이>

영화 <올드보이>의 복수는 고등학생이었던 오대수(최민식 배우)의 말 한마디로 인해 이우진(유지태 배우)이 사랑했던 친누나가 자살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돼요. 이에 대한 복수로 우진은 퇴근길을 걷던 오대수를 납치해 낡은 모텔방 한 칸에 가둬두고, 오대수는 자신을 가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15년의 세월을 보내죠. 탈출하겠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15년 동안 젓가락으로 벽을 파내 마침내 탈출할 구멍을 만든 오대수는 기쁨을 만끽하지만, 바로 그 순간 누군가에 의해 최면에 걸려요. 최면에서 깨 눈을 뜬 오대수는 자신이 푸른 초원 위, 상자 안에 덩그러니 놓여있음을 깨닫죠. 그는 상자 안에서 다시금 분노를 불태우며 곧바로 자신을 감금한 복수의 대상을 찾아 나서고, 이우진 또한 누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시작한다고.


2.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이 영화는 주인공 (신하균 배우)가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동진(송강호 배우)의 어린 딸을 납치하면서 비롯되는 복수들을 그려요. 류는 누나의 생명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신장을 팔아 마련하려 했던 돈도 사기를 당해 잃고 말죠. 결국, 류는 동진의 딸까지 유괴해 마침내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해오지만, 이를 알게 된 누나는 오히려 죄책감에 자살하고 만다고. 류는 자신의 신장을 팔아버린 사기단에, 동진은 사랑하는 딸을 납치한 류에게 타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피 튀기는 복수가 시작돼요.


3. 영화 <친절한 금자씨>

유아를 납치했다는 혐의로 억울하게 13년의 수감 생활을 한 금자(이영애 배우). 감옥에서는 친절한 금자씨로 불리며 살아 있는 천사로 통했지만, 출소 직후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로 전도사가 주는 두부를 엎어버리며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죠. 이후 감옥에서 금자가 친절을 베풀었던 재소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던 이를 짓밟고자 치밀하고도 처절한 복수를 준비한다고.

상상만해도 끔찍해요. 너무나도 잔인한 복수들이잖아요? 모두 분노에서 시작된 복수인 것 같은데, 박찬욱 감독이 표현하는 복수는 어떤 점이 특별하다는 건가요?

▲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틀을 깨는 박찬욱만의 복수


앞서 소개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에서는 붉은 피가 낭자하는 건 물론, 등장인물 사이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복수심이 스크린을 가득 채워요. 여기까지만 보면, 액션이 난무하고 인물들 간 팽팽한 심리전이 오고가는 여타 복수극들과는 다를 바가 없어 보이죠. 하지만 박 감독이 그리는 복수는 다른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일방향적인 복수와는 형태가 조금 달라요. 일반적인 영화라면 누구에게나 미움을 살 법한 악인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자신을 짓밟은 악인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며 관객들에게 후련한 결말을 안겨줄테지만, 박 감독의 영화는 이러한 일반적인 권선징악의 틀을 완전히 깨버리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박찬욱 감독이 그려내는 복수는 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어요.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주인공 류가 자신의 신장을 빼돌린 장기 밀매 사기 단장에게 복수하고자 사기단 3명의 신장 꺼내 씹어 먹기까지 하거든요. 또, <올드 보이>에서는 주인공 오대수가 본인을 감금했던 감옥 사장의 생니를 하나씩 뽑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를 직접 잘라버리기도 해요.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납치한 백선생에게 복수하고자 모인 부모들이 온갖 흉기로 백선생을 난도질하는 등 잔인한 장면이 다수 등장하죠. 이처럼 영화 속의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더욱 악랄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가해자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선인과 악인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기존의 복수극과는 달리, 박찬욱 감독의 복수극은 보다 보면 도대체 누가 가해자였고, 누가 피해자였는지조차 잊게 만들어버린다고. 

어쩐지...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구별할 수가 없더라구요. 이렇게 끊이지 않는 복수를 통해 박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무엇인가요? 

▲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출처 : 네이버 영화

끊어낼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이처럼 서로를 끊임없이 물어뜯고 상대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복수라는 원래의 목적을 잃은 채 괴물이 되어 가는 인간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평가받아요. 그렇다면 이런 연출을 통해 박찬욱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복수라는 끝없는 악순환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동시에 박찬욱 감독은 ‘인간은 복수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을 던지죠. 결국, 복수는 결코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없으며 또 다른 복수를 낳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요.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아이러니에 대한 메시지를 함께 던지기도 해요. 그가 말하는 아이러니란,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의지를 갖고 스스로를 통제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결과는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거죠.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온전한 복수란 존재하지 않으며 복수는 결국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메시지나,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의 감금 끝에 복수를 행하지만 그 끝에선 무너지고 마는 오대수의 모습에서는 박 감독의 이러한 철학이 잘 드러나요. 이처럼 박찬욱 감독의 작품엔 운명은 통제 불가능한 대상이라 인식하는 비관적 세계관이 담겨있다고.

복수는 후련함보다는 오히려 또 다른 분노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주인공들의 행동 속에도 복수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니 색다른데요?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어쩌다 영화 감독이 된 건가요? 

▲ 박찬욱 감독, 출처 : 네이버 영화

칸이 사랑한 남자


박찬욱 감독은 1963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는데요, 어릴 때부터 건축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분야의 전시회를 다니는가 하면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미술사학자를 꿈꾸기도 했어요. 또, 예술과 인문학을 더 깊게 배워보고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 편의 영화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의 세계에 발을 디뎌요. 그 영화는 바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 그는 충격적이고도 사실적인 히치콕의 묘사와 전개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어 영화감독이 되리라고 결심하죠. 이후 그는 근친상간이나 가톨릭 신부의 사랑 등 그동안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던 소재에 줄곧 도전하기 시작해요. 여기에 정교한 스토리텔링과 독특한 연출 기법을 더해, 그만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죠. 그렇게 화려하고 파격적인 소재로 무장한 박찬욱의 작품은 전 세계의 평론가들에게 극찬받으며, 2004년 영화 <올드보이>로 칸영화제*에서 대상까지 수상한다고!


*칸영화제 :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최고의 위상과 인지도를 가진 국제 영화계의 메카.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요! 엇,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팬인 누군가가 만든 연극이 있다구요?

▲ 천만 관객 프로젝트, 연극 <아싸> 무대

"아싸!"가 절로 나오는 연극 <아싸>


다가오는 10일,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을 가볍게 패러디한 연극이 대학로에 찾아와요. 바로 극단 그림일기의 연극 <아싸>! 이 연극에서는 앞서 언급한 영화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의 명장면을 패러디하며 주인공을 소개하는데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명대사를 인용해 웃음을 자아냄과 동시에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하죠. 이렇게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패러디한 데에는 모든 영화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대요. 바로 이러한 의도에서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똥찬 포부를 갖고 있는 연극 <아싸>의 주인공, 기동찬이 탄생했다고! 


또, 5년 동안 스스로를 집 안에 가둔 인물 오대룡은 명동의 한 극장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 <올드보이>를 보다가 우연히 기동찬을 만나요. 대룡은 자신에게 학교 폭력의 아픔을 안겨주었던 이에게 복수를 꿈꾸다, 기동찬의 제의를 받고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 결심하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연예인은, 가수의 꿈을 갖고 오디션에 지원했다 번번히 떨어지고 말아요. 예인이 쓰라린 실패로 한숨을 푹 내쉬던 도중, 기동찬이 나타나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 배우가 되는 것은 어떻겠냐 제안하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예인은 연기 연습에 열정을 불태우고,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인 “너나 잘 하세요"를 툭툭 던지며 이영애같은 배우가 되리라 다짐해요. 이렇게 기동찬을 중심으로 모인 세 명의 아웃사이더. 과연 천만 관객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여정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요?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 명대사를 연극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니, 연극을 보며 영화 대사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겠어요!

▲ 극단 그림일기

극단 그림일기의 열정, 열정, 열정!


연극 <아싸>는 어려운 시기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는 극단 그림일기의 프로젝트 중 한 작품이에요. 제목 ‘아싸’에는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라는 에너지 넘치는 구호의 분위기와, 아웃사이더*인 등장인물들이 모여 성장한다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고 있죠. 이번에도 역시 에디터들이 직접 연습실 참관을 다녀왔는데요, 그 생생한 후기를 들려드릴게요!


*아웃사이더 :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지내는 사람. '아싸 라고도 불림.


에디터 A의 참관 후기


연습 중에도 땀이 날 정도로 뛰는 배우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관객들에게 배우의 열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죠. 게다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패러디한 부분들이 중간중간 등장해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요.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에게 밝고 힘찬 에너지와 웃음을 선사할 연극 <아싸>플로터를 위해 무료 초대권을 준비했으니, 이번 주에는 배꼽 빠지는 연극 한 편 보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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