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핵전쟁이 벌어진 지구. 세계는 3개의 강대국으로 재편되고, 그중 하나인 오세아니아에는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의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섰어요. TV와 같은 텔레스크린으로 우민화* 콘텐츠를 송출하고, 동시에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죠. 심지어 생산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성적 쾌락을 위한 관계를 금지하고 일기를 쓰는 것까지 처벌하는데요. 주인공 윈스턴은 당이 시키는 대로 신문 등의 과거 기록물을 수정하고 왜곡시키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그러나 업무 도중 당의 말과 모순되는 자료를 접하며 당에 의심을 품게 되고, 당에 반감을 품은 또 다른 사람 줄리아와 몰래 연애를 시작하죠. 이후 빅 브라더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단체인 형제단을 알게 된 둘은 함께 단체에 가입해요. 그러나 사실 형제단은 당에 반하는 세력을 꾀어내려는 미끼였고, 윈스턴은 모진 고문을 받죠. 결국 당을 찬양하도록 세뇌당한 후 풀려난 윈스턴은 “나는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고.
*전체주의: 개인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념으로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사상.
*우민화: 국민을 어리석게 만듦.
여기까지가 소설 <1984>의 줄거리예요. <1984>는 <우리들>, <멋진 신세계>와 함께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는데요. 조지 오웰은 이 소설을 통해서 사상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특히 심했던 스탈린*과 전체주의를 비판하고자 했어요. 언론 탄압과 역사 왜곡 행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독재와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거라고.
*스탈린: 본명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강철의 인간이라는 별명 스탈린으로 불린 제2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저런 곳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대체 이런 소설은 누가 쓴 건가요?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예요. 그는 1903년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두 살에 영국으로 돌아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튼 칼리지에 입학했어요. 당시 이튼 칼리지는 식민지에서 일할 공무원과 군인을 양성하는 곳이었는데, 에릭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공무원이 되기를 택하죠. 이후 영국의 식민지이던 미얀마로 떠나 경찰 생활을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제국주의*의 실상을 경험하고 무척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데요. 그가 이 시기에 느낀 제국주의의 문제와 제국 경찰인 스스로에 대한 혐오는 훗날 소설 <버마* 시절>의 바탕이 된다고.
*제국주의: 우월한 힘으로 타국과 민족을 정벌하여 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침략주의적 경향.
*버마: 미얀마.
결국 회의감을 느끼며 5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온 에릭은 경찰을 관두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해요. 하지만 글쓰기만으로는 충분한 벌이를 벌기 어려웠고, 접시를 닦아 생활을 유지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죠. 이때 보고 겪은 밑바닥 생활이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한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배경이 되었어요. 이처럼 그의 작품에는 본인의 경험이 많이 녹아있는데요.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파시즘*과 맞서 싸우겠다며 자진해서 참전하기까지 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에 담겨있죠. 또, 국제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살아간 그는 글에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곤 했는데요. 또 다른 대표작 <동물농장>도 러시아의 혁명과 스탈린을 풍자하기 위함이었다고.
*파시즘: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사상이었던 전체주의적 이념.
이 소설처럼 중요한 자유를 무시하고, 나라를 위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내용의 연극이 있다는데요?
퓨즈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전례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현대 사회. 타인과의 접촉이 크게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데요.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만을 꿈꾸게 되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꿈을 좇으려 직장을 그만두는 집단 퇴사 현상으로까지 이어지는데요.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취미 찾기 프로젝트를 시행하죠. 주인공 유영은 그저 요구받는 대로, 남들이 하는 것만큼 적당히 행동하며 세상과 사회가 말하는 기준에 맞춰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런 그녀가 다니는 대기업에서도 취미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유영의 직장에서도 취미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과 상담이 이루어져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선생의 수업은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진행되고, 상담사와의 1:1 상담은 밀폐된 방음실에서만 이루어지죠. 이런 이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진행되자 집단 퇴사 현상은 잠잠해져요. 이는 취미 찾기 프로젝트가 집단 퇴사 현상을 막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정부의 가스라이팅이었기 때문이었다고! (가스라이팅에 관련된 레터가 궁금하다면 클릭! ) 과연 친절을 가장한 가스라이팅 속에서 유영과 직원들은 ‘자아’를 지킬 수 있을까요?
취미 찾기 프로젝트의 목적은 사람들이 직장에 남아 계속 일하면서, ‘내가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어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가스라이팅도 서슴지 않으며 정해진 답으로 이끌어 가죠. 이런 모습을 통해 <유-영>은 성공과 좋은 삶에 대해 일률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사회를 비판해요. 아이를 다루듯 친절했던 수업에서는 사회의 겉모습을, 밀폐된 공간에서의 상담은 사회가 드러내는 속내를 표현한 거라고.
또, 창작무용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유-영>에서는 연극에 녹아든 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등장인물의 추상적인 자아와 동시다발적인 감정을 추상적인 춤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추상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그려내기에, 관객들은 인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죠. 또, 무용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무용으로 표현되는 인물의 대사나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들려주기도 한다고.
이런 반전 요소에 무용까지 곁들였다니, 너무 기대돼요! 이런 작품을 만든 분들은 도대체 누군가요?
창작무용극 <유-영>은 창작집단 파동기의 작품이에요. 파동기는 기승전결과 같은 공연의 흐름이 마치 두근거리는 심장박동과 물결치는 파도와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파동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했죠. 무용수와 단둘이서 시작한 파동기는 무용과 연극의 합을 쉽게 풀어냄으로써 ‘무용은 어렵지 않다’라는 가치를 직접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공연을 보고 난 뒤에 관객들의 삶에 계기와 동기가 될 수 있는 공연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멋진 목표네요! 이번에도 플롯이 직접 창작집단 파동기를 방문해, 차지현 연출가님의 한마디를 들어봤어요. :)
이번 연극을 통해서 관객분들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어때?”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게 그 사람들의 최선일 수 있으니, 좋은 삶과 나쁜 삶을 구분 짓지 않으려고 항상 경계하면서 작업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만약 불편하고 기계 같다고 느껴진다면, 유영은 이렇게 했는데 여러분은 어떤지 묻고 싶은 마음이에요.
또, 무용이 어렵지 않다는 걸 알리기 위한 마음도 정말 컸던 만큼, 무용이었기에 표현할 수 있었구나, 무용일 수밖에 없었구나라고 느끼실 수 있게 준비했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4k5rPlAy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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