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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문 Apr 17. 2022

지혜원

-자유와 시선-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 손 등위를 걸어다니는 무당 벌레, 푸드덕 대는 참새의 날개짓. 온 세상을 채우고 있지만, 사실은 그 누구의 시선도 머무르지 않는 것들.     


그라나 초라한 것들은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온갖 빌딩이 올라가고 백화점이 세워지는 와중에도 어떤 것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 오를때에도. 거대한 빌딩 숲 사이의 초라한 것들은 도리어 초연했기에, 강인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지혜원이 좋았다.


좁은 흙길을 차로 달려 지혜원에 도착했다. 집 주인은 차가 도착하자 빗질을 멈추고 우리를 맞이했다, 현관문은 오래동안 딱딱히 굳어 있었으므로 문을 열 때 마다 주먹으로 세게 쳐야만 했다. 펑 하는 주먹 소리가 들리면 문은 곧 끼익 거리며 자리를 내주었다.


 앞으로 작은 시냇물이 흘렀다. 시냇물 주변으로는 강아지 풀이며, 민들레 꽃이며 이름모를 풀들이 빗지 않은 머리카락 마냥 두서없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렇게 초록빛들을 여지없이 흔들어대며, 바람은 내 머리칼마저도 헝클어 놓았다.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서있었다.

시냇물 소리에 따라 나비들 스타카토처럼 날아오른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지도 모른다.


건너편으로 흐른 시선 작은 논두렁이 보였다. 그 위 강아지 가족이 무언가를 열심히 좇고 있었다. 그렇게 뭔가를 좇던 강아지은 낯선 사람을 보자마자 곧 우렁차게 짖었는데 그게 두려움의 소리인지, 반가움의 소리인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논두렁 건너편에 있는 고양이를 향한 경계의 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툇마루 한가운데에서 고양이가 크게 기지개를 펴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받은 첫 인상은 그랬다. 지혜원의 주인가히 자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툇마루를 지키는 고양이와, 온종일 집 앞 논두렁만을 돌아다는 7마리의 강아지들이 지혜원의 모든 풍경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소리가 가득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하루가 시작되고, 한 낮의 따스한 바람이 참새와 나비를 안고 윙윙거렸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기에 이내 심심해진 고양이는 책 위로 뛰어올랐다. 발자국 소리가 잉크처럼 찍혔다.

종종 건너편 집에서의 풍경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럴 때 마다 고양이는 종종 몸을 웅크리고 나비를 좇으려 뛰어올랐고, 강아지들은 놀라 짖었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몸을 흔들어댔다. 온갖 소리들이 책 속 낱말 사이사이에 스며들었다.     


눈을 감으면 소리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화려하지 않는 모든 것들은 가장 소박한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므로, 소리도 그랬다. 눈을 감으면 논두렁 너머에 있는 산에서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잠이 들었다. 나무들을 스친 바람이 모험을 떠나는 강아지들과, 문지방 앞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와 내 얼굴에 까지 닿았기에, 꿈속에서 마저 아득히 먼 어느 숲속의 이야기들이 들리는 듯 했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런 이야기. 머나먼 숲속에서 작은 난쟁이들이 공주님을 지키고 있었대. 공주님은 계모의 괴롭힘을 피해 숲속으로 건너왔어.     


동화속 계모는 언제나 질투심에 가득 차 있었다. 거울을 보며 끊임없이 물어봤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계모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계모의 눈동자는 거울 너머의 눈동자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거울은 말했다. “사람들은 백설공주라고 말해요”           


해가 졌을까, 일어나니 세상은 온통 까만 먹물로 칠해져 있었다. 창 밖에는 달만이 하얗게 떠있었다.


오두한켠에 피워 놓은 모닥불에서는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마르지 않은 나뭇가지들은 불씨를 태우며 지글지글 거렸다. 고통스러워 하는 걸까? 내가 묻자 남자친구는 작게 웃었다.   


나뭇가지는 곧 거뭇해졌다. 바람에 불씨가 날렸다. 타닥 거리는 나뭇가지들이 밤공기에 온기를 채워주었다. 고양이는 어느새 불길 옆으로 달려와 가만히 모닥불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빨간 온기가 고양이의 얼굴을 비췄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일 계모에게 거울이 없었다면 어땟을까. 거울은 미인을 보여주었지만 계모는 언제나 비참해 졌으므로, 어쩌면 아름다움은 초라함과 맞닿아 있을 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반사판처럼 내 안의 가장 나약한 곳을 비추기 때문에. 그리하여 초라함은 감출수록 커지게 된다. 계모의 독사과처럼.   


고양이는 쥐를 좇고 있었다. 나도 몰래 쥐를 눈으로 좇았다. 차마 손이 닿을 수는 없었으니까. 아마 모두가 쥐를 싫어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미움받는 것은 추한것이므로. 추한것은 초라한 것이었으므로. 모두들 쥐를 피하고 쫒아냈다. 그랬기에 고양이는 사랑 받았다.


고양이는 폭짝 뛰어오르거나 손으로 쥐 꼬리를 잡으려 애썻다.  오히려 어둠이 편안한 듯 했다. 모든 것이 소멸된 곳에서는 고양이와 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쥐의 발걸음 소리는 더욱 커졌다. 고양이의 뜀박질 소리도 재촉하듯 커졌다. 기둥위에 고양이 발톱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쥐가 잡혔다. 찌직 거리는 비명소리, 내장이 터지는 소리,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가 모닥불 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날아다녔다, 고양이는 곧 내 앞에 쥐를 가져다 놓았다. 주인은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쥐의 피는 채 굳지 않았다. 터져버린 배 속에서는 끊임없이 핏물이 쏟아지며 돌을 적셨다. 모닥불아래에서 핏물은 벚꽃마냥 흐드러지게 번져갔다.      


 

 작은 공간을 채워준 소리들은 온전히 날것이었다.  그래서 자유로워졌는지 모른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 처럼 아무것도 감출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 깜깜한 어둠속에서 모든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오히려 눈을 감으면 쥐들이 보였다. 담장 아래서 바스락대는 작은 쥐들이었다. 시선이 사라진 곳에는 오직 소리만이 존재했다. 어둠은 더러움도 추악함도 덮어버렸다. 나는 쥐를 손으로 잡아 들었다. 핏물이 모닥불에 세차게 타올랐다. 모닥불 연기에서 쥐의 냄새가 났다. 내 손도 같이 붉게 타올랐다.       


아마 모든 초라한 것은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는 지도 모른다. 빌딩 숲 속 작은 오두막집에서는 밤이면 바람에 날리는 흙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리듯이. 그 누구의 시선에도 닿지 않기에 오두막집은 자리를 지킨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오두막집은 자유롭다.      


어쩌면 마음도 그런게 아닐까. 초라한 마음은 감출수록 부풀어 오른다. 부푼 감정들은 빨갛게 터져버린다. 날것의 마음들은 그대로 초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쁨, 질투, 행복, 외로움, 슬픔, 모든것들은 요란스레 포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날의 모닥불과, 고양이와, 쥐와 그 모든 소리들은 날 것 그대로 자유로웠으므로.

문득 계모가 가여워졌다. 포장된 마음과, 자유롭지 못한 시선에 얽메인 중년의 여인은 결국 독사과를 먹었다고 했다. 


다음날, 남자친구는 아침밥으로 고양이에게 사과를 잘라줬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툇마루를 건너 경쾌하게 넘어왔다. 남자친구는 고마워 라고 이야기했다.

고양이는 야옹하고 인사했다. 사실 더 달라고 보채는지도 모른다. 쥐와 사과는 그렇게 교환됐다.


고마워


여전히 눈을 감으면 지혜원이 건넨 선물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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