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주 전쯤엔가 큰아들이 모바일 카트라이더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15년 전이었을까. 큰아들을 낳기 전에 카트라이더 게임을 했던 때가 생각났고 5년 전 한창 즐겨했던 애니팡만큼이나 15년 전 무렵에는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알고 또 즐겨했던 게임이기에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큰아들은 내 폰에 카트라이더를 깔아 주었고 아마 나는 그날 바로 두 아들과 그 게임을 시작했었다. 신랑이 퇴근하고 들어 온 그 순간에도 신랑이 밤늦은 저녁을 알아서 차려 먹고 난 이후 시간까지도, 손에 익지 않아서 답답하지만 다양한 맵과 드리프트 스킬을 익히느라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내가 게임에 중독성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날도 어렴풋이 가까운 미래에 내가 게임에 빠져 있을 거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곧 주말이 되었고 토요일 수업이 끝나자마자 카트라이더에 몰입한 나는 둘째 아들 친구가 놀러 왔는데도 열나게 신나게 게임을 했다. 둘째 아들 친구는 내 괴성에 “어~ 너네 엄마도 게임하냐~?”하며 신기해했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쒸아쒸 거리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둘째 아들 친구는 그날 나를 친구로 추가했다.
다음 날, 주일 11시 예배를 갈까 1시 예배를 갈까 어차피 코로나 사태로 최대한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지라 1시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서도 아침밥을 먹고 남는 시간에 그 와중에 식탁에 앉아서 다시 카트라이더에 접속했다. 스킬은 조금씩 익어가고 1등도 많이 하고 맵도 외워지고 한 시가 다르게 실력이 느는 기분이었다. 예배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내 차로 돌아와서 그 짬에 또 게이지와 랩을 올렸다. 아~ 이렇게 랩이 올라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 짬이 즐거웠다.
작은 아들에게 전화가 오고 서너 판을 더 한 다음에 집에 돌아와서 그날은 온종일 게임만 했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경고 문자가 떴다. 6시간이 경과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종용하는 메시지였다. 와~ 게임 회사에서 이렇게 친절한 문자까지 보내 주면서 스스로 자책감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은 좀 괜찮은데 싶으면서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수술한 손목도 아파오고 눈도 뻐근하고 등도 아프고 삭신은 쑤시고 저리지만 뇌세포만큼은 상당히 활발하고 건강한 듯 바쁘게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주고 있었다. 결국 나에게 온 최종 메시지는 10시간 경과 알림이었다. 와~ 대단. 하루에 10시간을 게임하느라 썼다는 것은 기록에 남길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있었다. 한 가지는 내가 죽도록 10시간을 썼지만 그 시간에 비해 효율은 높지 않았다는 것, 즉 내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내가 하는 드리프트, 숏 드리프트는 그닥 맘에 들지 않고 계속 허점이 많았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우리 아들들은 게임을 무지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나보다는 덜 하더라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그다음 날, 월요일 둘째 아들이 문호준이 게임하는 유튜브 영상을 티비로 볼 때 옆에서 같이 지켜보다가 해결되었다. 비로소 드리프트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게임에서나 인생에서나 진전 없는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무지 어리석은 일이다. 후자의 경우는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만약 아들들이 몹시 그 게임에 중독이 되었더라면 '그래~ 이 게임은 중독될 수밖에 없는 게임이야!!' 하면서 내가 먼저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아들들과 날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났을 것이다. 허나 내가 아들들과의 시합에서 터무니없이 큰 격차로 지기만 하면서 온갖 짜증과 불만을 얼굴 표면으로 팍팍 표출해서인지 우리 아들들은 엄마와의 대전을 "감히" 간절히 원하지 않았다. 큰아들은 애써 30분 정도만 엄마와 대전해 주기로 했고, 작은아들은 게임 유튜브 영상을 보며 기술을 먼저 익힐 것을 권유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게임 중독성에 대한 나의 지나친 우려는 별 거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난 확실히 아들들보다는 중독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아들들은 다양한 콘텐츠로 놀고 있기 때문에 그게 분산되는 효과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도 진정이 되었고 가능한 한 주중에는 접속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절해서 내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깨뜨리지 않기로 했다. 그저께 화요일에도 모두가 잠든 시간에 2시 반부터 4시 반까지 게임을 하고 잤으니, 칭찬받을 상황은 아니지만.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우리 인간은 맑은 영혼을 가지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게임을 하면 순간적인 흥분의 도가니에서 지나치게 허우적대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그게 장기화되면 몸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육체피로에 시달리고 감각이 없어지며 일의 우선순위도 뒤죽박죽이 된다. 결국 시간을 망각하게 되고 자아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심할 경우에 말이다. 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하는 사람은 이 모든 증상과는 반대편에 서게 된다. 경건하거나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기도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던 지인들을 궁금해하고 전화통화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다. 시간에 쫓기고 시계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신경 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실제로는 시간에 무감각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게임에 과몰입한 사람의 경우이다.
영어를 10시 반에 끝내고 단어도 외웠다면 같이 카트라이더 게임을 해 주겠다고 선포했던 어젯밤에는 또 11시 반부터 1시까지 고공행진을 감행했지만 오늘은 두 가지 조건 다 충족할 수 없었기에 게임의 ‘게’ 자를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밤에 게임을 하지 않으니까 너무 좋았다. 거북이들을 관찰할 시간이 있었고 얼굴을 바위에 얹어 엎드린 자세로 네 개의 발들을 축 늘어뜨린 포포가 혹시나 죽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치치에게 먼저 사료를 주고 치치가 먹는 소리에 깬 포포에게도 밥을 주고는 물까지도 깨끗하고 따뜻하게 갈아 준 착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까지도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사는 것은 누구나 마음먹기 나름이다. 또한 믿기 마련이다. 내가 중독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중독될 것이라고 믿으면 그리 되는 것이요, 나는 이미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으면 또한 그리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부터 생각했던 내 지론인데 이 게임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했던 추측이 오히려 내 지론을 강화하는 결론이 되었다. 지금 나는 살짝 고민 중이다. 주말이 되면 게임을 할까 말까. 그건 그때 가서 보자.
노트북 한글 파일을 정리하다가, 4년 전에 썼던 이 글을 발견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시기부터 간간이 일기를 노트북에 썼는데 이것도 그중의 일부이지요.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저는 예나 지금이나 늘 바쁘게 지내고 있네요. 휴식할 줄 모르는 설치류들처럼 그렇게 바삐 몸을 놀리면서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늘 각성된 상태로 지내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말이에요~^^
내일이면 처서랍니다. 곧 가을이 온다는 말인데 올해의 폭염은 성질 한 번 사나운 것 같습니다. 모두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올 가을엔 짬 내서 휴식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