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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Jul 20. 2023

오늘 아침, 초등 교사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아침에 모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각기 다른 두 건의 기사를 접했다. 하나는 교실에서 학생에게 무방비로 폭행을 당한 선생님과 관련된 기사였고, 다른 하나는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부임 3개월 만에 교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나 역시 10년의 교직 생활을 접고 사직을 결정했던 결정적 한방은 한 학부모님 때문이었다. 입학을 하기 전부터 본인의 부와 배경을 내세우며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협박을 일삼고, 너는 특수교사이니 내 아이에게 사생활마저 다 맞추고 희생하는 건 당연해라는 뉘앙스의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으시던 분이었다. (심지어 후에 사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하셔서

월급 얼마 받고 있냐며 훨씬 더 줄 테니 개인 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게다가 그런 일이 생기면  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도, 교육청도 그 누구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걱정하며 학부모 달래기에 급급 할 뿐이다.


그런 상황을 겪으며 10년 차였던 나도  단 몇 주만에 정신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는데  초임 선생님이 몇 달을 그런 일에 시달렸으니 그 고통이 어땠을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고 싶었다.

사명감을 펼칠 순 없을지라도
보람은 찾고 싶었다.

나의 청춘을 바쳤던,
한때 꿈이었던 이 일이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이 되는 것이 슬펐다.


아마도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모두의 공통된 욕구가 아닐까.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에서 그 어느 곳보다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며 견디고 있을 선생님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왜 모를까.


특별한 대접을 하라는 게 아니다. 내가 소중하고 내 아이가 소중하듯 너무도 당연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가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하다.


누구도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믿음도 존중도 배려도 양보도 없는 미래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바뀌어야만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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