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두는 모든 것에 고작 '나'라는 무기로 맞서기
삶이 단 한 줄의 문장 안에 갇힌다는 건 얼마나 처절한 일인가.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 역시도 종종 고작 몇 줄의 평가에 갇히는 때가 있다. 내가 이루어낸 성과와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프레임이 나를 담는 방식에 따라 개인은 한정되고 억압당한다. 성과를 주목받는 직책과 위치일수록 정도는 더하다. TV에서 빛나는 수많은 엔터테이너 혹은 정치인들이 몇 줄의 루머와 자극적인 프레임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꼴을 본다. 그럴 때는 이 모든 게 비좁은 방처럼 느껴진다.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방.
비좁은 방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서사가 있다.
나의 우울과 고통의 서사는 그런 식으로 나의 공간에 침투하여 나를 옭아맨다. 비단 '평범한'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특별하다 칭송하는 왕가의 일원조차도 이런 우울의 덫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으니, 이런 상황에 처한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다면 접어두길. 영화 <스펜서>의 다이애나 스펜서 역시도 그런 과정을 거쳐 영국 왕실과 결별을 이룩한 것일 테니.
다이애나 스펜서,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전 왕세자비이자 세계의 연인, 영국의 장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여성. 역사에 기록된 그녀의 죽음은 가히 비극적이다. 이혼 이후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파파라치들에 의해 방해 당하고, 결국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렌즈와 프레임의 포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왕세자비를 구하러 밀려 들어온 구급대원들을 무시하고 기자들은 계속 죽어가는 왕세자비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토록 비극적인 인재人災, 프레임 속에 그녀를 가두려는 시도들 사이에서 그녀는 평생을 고군분투해야 했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그리고 그녀가 받았을 고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모인 별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영화 안에서 다이애나가 갇히는 건 비단 별장 뿐만이 아니다.
빼곡한 일정, 흐트러짐 없는 식단, 지긋지긋하게 기록되는 개인의 몸무게와 스케줄 별로 마련된 옷에서 그녀는 갑갑함을 느낀다. 그녀를 안에 담는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녀를 표현하는 일종의 방식이 된다. 누군가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입는 옷을 보고 관찰한다. 파파라치는 그것을 찍고 한 줄의 기사로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한다. 그녀를 옭아매던 '공간'으로서의 억압은 이제 '편견'이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전이된다. 커튼을 열어놓고 옷을 입거나 밤중에 멋대로 밖에 나가 서성거리는 일, 자유를 찾기 위해 헤매이는 일 역시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공간 안에 갇힌다. 어디로든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 그런 와중에 찰스 왕세자와의 면담에서 다이애나는 한번 더 자신의 목을 조르는 권고를 듣는다. '특별한 왕실의 일원에 걸맞는 행동'을 하라고.
다른 여자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두 여자에게 똑같은 진주 목걸이를 동시에 선물한 걸 알면서도 사회와 시선은 다이애나를 하나의 공간 안에 얌전히 머물 것을 강요한다. '왕세자의 상냥한 아내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 그리고 영국의 왕세자비.' 모든 게 망가지고 잘못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온건히 서서 자신의 일을 해낼 것을 요구하고, 개인의 고통은 들여다 보지 않는다. 때문에 홀로 고통스러운 그녀의 공간 안에서 그녀는 썩어간다.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책을 읽는다. 바람을 핀 찰스 8세에 의해 마녀로 몰려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영국의 왕비에 대한 이야기는 꼭 다이애나 스펜서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왕실과 대중은 그녀를 그녀만의 공간에서 썩어 미쳐가게 두었을 테다. 그녀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다면. 그러나 그녀는 외친다. "아니야,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죽기 위해 찾았던 자신의 생가에서 다이애나 스펜서는 앤 불린의 망령을 본다. 이것이 단순히 그녀의 환상이라고 하기에 두 개의 서사가 맞물리는 부분은 명확하다. 이미 비극을 맞이하여 역사서 속 몇 줄의 문장 안에 갇힌 여자. 왕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여자가 있다. 마녀 사냥으로 죽었던 여자가, 그 시기에 마녀라는 이유로, 타인과 다르거나 미쳤다는 이유로, 그들의 눈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던 수많은 여자가.
다이애나 스펜서는 규범이라는 공간에서 도망치기로 한다.
어쩌면 편견과 억압이라는 공간에서, 그 모든 것으로 대변되는 '크리스마스 별장'에서, 더불어 '왕실'에서 도망치기로 한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뛰쳐나오며 다이애나는 환하게 웃는다. 신나는 음악을 듣고 되는 대로 운전하며 멀리 나가 패스트푸드를 먹고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으며 거리를 본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영화는 이혼 이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공개하는 대신 그녀의 '탈출'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결국 비극으로 끝났을 삶이라도 앤 불린과 다른 점이 있다.
켜켜이 쌓여가며 바뀌는 역사가 있다. 몇 줄 안에 갇혔더라도 끝내 뻔한 레퍼토리와 클리셰에서 멀어지려고, 누구나 알 법한 비극에서 발을 떼어내려고 싸웠던 사람들. 우리는 비극이라는 방 안에 갇혀 있다. 세상이 변하려는 국면에 서서 때때로 슬픔과 절망이라는 방이, 변할 수 없다는 편견이 우리를 공간 안에 가둔다. 결국 그곳에 갇혀 스스로 죽어가기 전에 발을 옮기는 것, 총구 앞에 팔을 벌리고 서서 '나는 여기서 벗어날 거야'라고 외치며 맞서는 건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버겁더라도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하자. 끝끝내 우리가 향할 곳이 뻔한 비극이라고 해도, 책이라는 또 다른 공간 안에 갇히게 된다고 해도. 결국 우리의 무기는 우리 자신밖에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