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방학을 마치며
나의 '작(作)밍아웃'을 기다려!
기이일고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났다. '길고'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 브런치에서 자꾸만 나를 불렀지만 마음을 다잡고 앉아서 글을 쓸만한 여력이 없었다. 나를 가장 찌르던 문장은 "꾸준함도 재능"이라는 것이었는데, 방학인 아이 둘을 데리고 그 재능을 발휘하기엔 그 외의 재능을 발휘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긴 겨울방학의 끝 무렵, 신랑은 회사에서 진급을 했다. 겨울이 시작될 쯤부터 회사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하던 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떨떨해 보였다. 집으로는 축하 와인과 과일바구니, 커다란 화분 등이 배달되었다. 그리고 그는 어젯밤 축하 회식으로 말 그대로 '떡'이 되어 들어왔다. 이런 시기에 회식을 하고 싶냐, 대학생인 줄 아느냐 등등 버튼만 누르면 여러 잔소리를 시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를 위한 자리였을 것이기에 잔소리 버튼은 묻어두고, 조용히 뒷정리를 도왔다.
그의 승진, 혹은 승격으로 나도 축하를 받았다. 물론 진심으로 기쁘다. 그의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 인생에서는 승격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에서 아쉬움이 피어난다. 언젠가부터 나의 직업을 써야 할 때 '주부'라고 쓰는 것이 익숙해졌다. 카드를 만들 때도 남편의 직장과 소득,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것을 알고 씁쓸했던 기억. 사회에서 구분 지을 때 나는 경제적 무독립자임을 되새겼었다.
어릴 적 아빠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늘 선생님이었지만, 가끔 작가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알고 보면 어릴 때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걸 꿈꾼 적이 있었다.) 그러면 아빠는 "얘 또 배고픈 소리 하네."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셨었다. 삶이 녹록지 않았던 아빠에게 딸의 미래가 안정적이길 바랐던 건 당연한 말씀. 그래도 막상 내가 지금 작가라고 이야기하면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계시지 않아 가정으로밖에 생각해볼 수 없어 아쉽다.
브런치는 그래서 내게 특별하다. 내게 '작가'라는 직함을 주었기에 함부로 글을 쓸 수가 없다. 고민하고 벼르고 갈아서 제대로 쓰고 싶다. 언젠가 나의 글들이 쌓였을 때, 그때는 "내가 '작가'로 글을 쓰고 있어요." 하며 작(作)밍아웃(?)하고 싶다. 언젠가는 작가라는 직함이 진짜 내 것이 맞다고 말할 수 있도록, 올봄부터는 꾸준함의 재능을 좀 더 발휘해야겠다. 아직은 남편과 단 한 명의 친구만 알고 있기에, 그 언젠가의 고백이 너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