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버텨낸 시간

by 지니페이지

내가 고3때, 추석 연휴는 그야말로 황금연휴였다. 거의 10일 정도 쉬었던 것 같은데, 추석 연휴에는 정말 공부만 했다. 동생 학교 시험이 추석 연휴 끝나고 있었기에 정말 어디 나가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연휴를 끝내고 그 다음주 화요일에 모의고사가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10월 모의고사라 재수생이 없는 덕에, 영어가 9모보다는 쉽게 나온 덕분에 수학포함 2합 5라는 최저를 맞췄다. 한국사도 당연히 4등급 이내에 들었다. 그런데 화요일에 모의고사를 치니까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고, 너무 지치고 그 주가 피곤하고 힘들었다.


모의고사를 치는 전 주부터 전날까지 나의 컨디션이 안 좋은 편인데, 좋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특히 모의고사를 끝낸 당일은 유난히 생각이 많아진다. 괜히 우울해지고 지치고 공부가 손에 안 잡히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것도 보며 리프레시를 하고 싶은데 기숙사에 갇혀서 그럴 수도 없고, 방에 혼자 있자니 심심하고, 내려가자니 너무 기빨릴 것 같았다. 결국 기분전환할 겸 내려가서 애들이랑 웃으며 얘기를 좀 하다가 나의 소울메이트를 만나 방에 올라가기로 했다. 다운로드 받아 온 드라마를 보며 힐링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던 C의 방 문을 열었는데, 자는 듯이 불이 꺼져있었다. 알고 보니 불을 꺼두고 드라마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1층 침대에 누워 휴식을 좀 취하다가, 너무 기분이 우울하고 생각만 많아지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 미음을 털어놓았다.


‘최저를 분명 맞췄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안좋지?’


무기력하고 공부를 하기가 싫다고 했더니 C는 나의 마음을 포근히 어루만져주었다. 왜 그렇냐며, 원래 공부는 하기 싫은 게 정상이라며 유쾌함을 더했다. 글을 써보는 게 좋지 않겠냐며.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고 하며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나에게 맞춤형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몇 마디 주고받고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야기의 물결이 잔잔하게 어른거리는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너의 힐링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아니라며, 나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힐링이라며. 말도 예쁘게 해주었다. 계속 서서 2층에 있는 C를 보려니 젖혀진 목이 너무 아파서 결국 2층 침대로 올라갔다. 불은 끝까지 켜지 않았다. 불을 끄고 서로의 옆에 앉아 이불을 덮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어찌나 따듯하고 좋던지, 그야말로 힐링시간이었다.


C와는 취미생활이나 삶의 가치관이 참 많이 비슷하다. 물론 생각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긴 해도 그런 포인트들이 있기에 더욱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9모 때는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고통을 겪다가 C의 방에서 그녀의 룸메와 함께 유튜브 쇼츠와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때도 기분이 바닥이었다. 슬픈 영상을 많이 봐서 좀 슬펐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다. 그치만 그들과 함께 있으니 점점 나의 기분도 한결 나아지고 편안해졌다. 정말 소중한 인연이라 감사하다.

모의고사 디음날인 수요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할까,라는 물음에 모두를 다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해야 된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C의 룸메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한국 사회와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고. 나는 덴마크나 스위스 이쪽으로 가야될 것 같다고. 나는 그런 마음가짐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하기 전부터 지치고 건드리고 싶지 않다. 나에게 맞춤형인 마음가짐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건강 챙기면서.’ 그치만 이것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가장 편안한 것 같아 이 생각을 되뇌인다.


나의 앞번호이자 지각을 종종 하는 친구를 아침자습에서 나오며 마주쳤다. 요즘 좀 일찍, 아니 제 시간에 등교하는 것 같이 내심 기특하기도 했다. 말을 걸어보려 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에너지가 나지 않아 가만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건네고, S가 어제 모의고사 매기고 어땠냐고 물었다. 모의고사 치는 날 쉬는시간에도 뒤를 돌아보더니 국어 어땠냐고 물어봐주고 정말 감동이었다. 정말 볼수록 자상하고 따듯한 사람임을 느낀다. 당장의 시험 결과나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해야할 일을 꿋꿋이 해나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안 아픈 날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장마철에는 무릎이 못 걸을 정도로 아팠다, 중3 여름에 왼쪽 발목 수술을 하고 무릎이 종종 아팠었는데 이렇게 심한 적은 없었다. 염증이 있는 것 같았다. 가족 톡방에 나의 상황을 알렸더니 이렇게 문자가 왔다.


‘두달 남았다. 조금만 버티자^^’ _아빠

‘에고 우리 공주~~~

날이 흐려서 그런가보다~~

내일까지 흐리고 괜찮아지는 것 같던데~~’ _엄마


두 달 남았다고 조금만 버티라고 했던 말이 이제는 한 달만 버티면 되는 시점이 왔다. 진짜 조금만 더 버티면 되니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무릎 통증은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회복되었다.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은 날, 수시 발표가 하나씩 나는 시즌이다. 수능 전에 고려대 지균(지역균형전형)이 발표나고 면접까지 예정되어 있고. 같은 날 카이스트도 최종 발표가 난다.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바랐고, 왠지 다 붙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경우에는 모두 수능 끝나고 예정되어 있어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고, 수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기에 조금만 더 버티면 됐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글을 쓰라고 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고 이래도 저래도 잡생각이 많을 때는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게 도움이 된다. 어질어질하던 복잡한 생각들이 가라앉고 한결 편안해진다. 수능이 18일 남은 일요일인 오늘, 도대체 나는 어떤 마음이길래 마음이 복잡하고 축 쳐져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보낼 나날들이 생각만으로도 힘들고 벅차서 기숙사에 들어오는 길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일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만 저번주부터 느꼈지만 참 어렵다. 주변에 털어놓을 법도 했지만 다들 힘든 걸 알기에 괜히 기운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아 괜찮은 척 지냈고, 그렇게 행동했다. 혹여나 털어놓더라도 결국 돌아오는 말은 돌고돌아 힘내라는 것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고,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눈물만 났던 1학년 1학기의 첫달을 지나 이제 몇 년도 아닌, 몇 달도 아닌, 며칠 만을 남겨놓고 있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다들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은 빠르다라고 하는데, 나는 앞 말에만 공감하는 바이다. 나에게는 하루도 길고 일주일은 더욱 더 길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5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같은 루틴을 반복하고 있기에 점점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1학년 때처럼 파이팅이 넘치는 열정적인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고,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있으면 에너지를 쓸 일은 정말 많지만 에너지를 채워줄 시간과 공간이 없다. 나만의 시간도 없고, 공부하느라 잠을 참아내느라, 다른 사람들을 대하느라 에너지를 쏟는다.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조금이라도 나를 돌보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음의 여유도 없고, 인간관계도 벅차다.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해야할 일을 하면서 차분하고 단단하게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평화로운 에너지를 가득 안고.


우리 반 선생님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 에너제틱하고 유쾌한 마인드로 말이다. 한번은 복도에서 야자시간이 끝나고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퇴근하시면서 우리쪽을 보고 “파이팅 파이팅!!”을 외쳐주고 가셨다. 그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문득 예전에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이것은 다시 나에게 필요한 말이 되었다. 그때 “선생님이 한번 안아줄게.”라고 하시며 꼬옥, 진짜 꼬옥 안아주셨다. 그리고 “잘 헤쳐나가라. 너답게.” 라고 덧붙였다. 무심하게 던져주신 말씀인데 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정말 선생님만의 방식으로 위로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덕분에 지금까지 이겨내고 버텨온 것 같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