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100

by 지니페이지

3학년 4월달쯤 요가에 입문했다. 근처에 아름다운 요가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썩 끌려하지는 않았고,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갔는데, 요가가 주는 온도와 분위기가 좋았다. 두 번째 할 때는 그 느낌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때는 너무 힘들어서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두 번째 되니 몸이 적응한 덕분에 요가가 주는 에너지를 더 잘 받았다. 수업 중에 요가 선생님께서는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마음에 담아두고 기록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흘려듣기 아까웠지만 그 감정만은 담아뒀다. 요가 선생님이 해주신 말에 따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끊어내려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라고 했다. 생각에 대해 판단은 하지 말고, 어떤 소리, 어떤 생각. 이렇게 인식하기만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절기에 맞춰 책 속 문장들을 읽어주시는 등 내면을 정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70분동안 몸을 움직이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수능을 몇일 앞둔 날 까지도 요가원을 다니며 마이솔을 수련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수험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기숙사에 있어서 금요일만 다녔는데, 금요일을 기다린 또 하나의 큰 이유였다.


3학년 때는 반에서의 사소한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다. 8교시까지 자습하던 중 D가 내 앞자리 애한테 가서 봉지를 내밀었다. 곧바로 그 뒤 나에게로 와 꼬북칩 과자봉지를 수줍게 내밀었다. 미소를 지으며 하나를 먹었다. 점심을 안먹은 터라 배고팠는데 소소한 행복이었다. 날마다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 같았다. 간식을 나눠먹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반가운 친구를 만나고, 모의고사가 되면 서로 응원을 하며 일상을 즐기곤 했다.

입시 상담을 했다. 실감이 안 난다기 보다는 이제 진짜 원서를 쓰는구나 싶었다. 세특을 고치러 뛰어다니고 하루에도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뵙고 하느라 특히나 지치고 진이 빠졌다. 모든 반이 학생 한명씩 불러 상담을 진행중이었고, 상담이 끝나고 나면 쉬는시간이나 밥을 먹을 때 그런 이야기들이 화젯거리가 된다. 야자 1교시 직후 쉬는시간에 나와 진로 분야가 비슷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나를 아주 반갑게 불렀다. 어딘가가 한편 애잔한 목소리로 들리기도 했는데, 알고보니 배가 아파서 나한테 약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내가 약국인 줄 알았다. 마침 사랑니를 뽑고 아파서 진통제를 아침에 2개 챙겨왔는데 먹지 않은 1개가 있었다. 오늘 저녁 먹고 먹으려 했는데 먹을 정도로 아픈 것 같지는 않아서 고민하다 결국 먹지 않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기쁘고 행복했다. 나한테 줘도 되는거냐고, 하는데 마음도 어쩜 이리 예쁠까. 이게 센 진통제는 아니었는데 좀 나았으면 좋겠었다.


같은 날 밤, 너무 잠이 쏟아져서 조금 일찍 들어와 누웠다. 얕은 점에 들었는지 문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G가 혹시 탁센 있냐고 물었다. 잠을 깨운 거 아니냐고, 배가 이상하다고 하며 다정하게 진통제를 받고 나갔다. 산부인과에서 타놓은 아주 잘 듣는 진통제가 있었어서 G에게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그 약은 J에게도 효과가 좋았다. 다 나아서 다음날에는 체육 끝나고 아이스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심 뿌듯했다. 기숙사에는 이제 3년간 같이 살다 보니 담당이 있는 것 같다. 내 친구는 손톱깎이 담당이었다. 손톱이 부러지면 그녀에게로 찾아가면 됐다.


나의 에너지는 월화수목금 순서대로 x축에 놓으면 최고치항의 계수기 양수인 이차함수 꼴로 그려진다. 수요일인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이동수업을 마치고 오자마자 책상에 바로 엎드려 잤다. 10분동안 푹 자고 일어나니 좀 개운했는데 온 사방이 시끄러웠다. 잠결에 얼핏 그런 소리들을 듣긴 했지만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었다. 우리반 S가 흥분해서 남자애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자기가 가장 아껴뒀던 쿠키 1개가 사라져서 그 범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먹고 다시 끈을 잘 묶어뒀냐고, 정수리 탈모 만들어버릴 거라고 하며 유력한 후보자 이름을 거론하며 흥분해있는데 주변 애들이 넘어가며 웃었다. 먹고 다시 처음처럼 묶어놓은 게 좀 웃기긴 했는데, 안에 부스러기가 있긴 했다. 이 사건의 전말을 들어보니 사실 누가 떨어뜨렸던 것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털어넣으면 똑같을 거라고. 아무도 그걸 열어서 빼먹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S는 바삭함을 느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심정이 너무나도 이해가 가지만 지금 이 상황이 더 웃겼다. S를 둘러싼 모두가 웃고 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진짜 오랜만에 배꼽 잡고 웃었던 날이었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노래를 들었다. 가사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너무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냥 이대로 좋아. 어디 안가도 괜찮아. 네 옆에 있는 지금이 제일 소중해. 조금더 오래도록 있어줘. 그게 내 최고의 하루야. 흘러가는 대로. 햇살따라 걷는 길. 아무것도 더 필요 없어. 카페에 앉아 네가 웃는 모습을 봐. 시계보다 더 느리게 흘러가. 세상이 분주할수록 우리는 더 천천히 가. 평화로운 온기. 이 감정은 계속 될거야.’


수능이 50일 남고, 2025년도 99일 남은 시점에 떠오르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초5때 담임선생님(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인연을 이어가는 게 나도 신기하다)과 중학교 서서 선생님(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며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자습을 하고 있던 야자 1교시, 얼핏 봐도 다정함이 가득가득 묻어나는 카톡이 도착했다. 하던 공부를 마저 하고 열어봤다. 역시나 따듯한 문장들. 내 마음을 녹이고, 지쳤던 하루에 힐링을 안겨주는 것 같은 소중한 메시지를 받았다. 사서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늘 응원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이다. 이런 메시지는 보고 또 봐도, 언제 읽어도 기분 좋아지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수능이 100일 남았을 때부터 하루에 하나의 키워드를 적으며 작은 달력에 칸을 채워나갔다. 이제 그만큼을 더 채우면 수능이니 막판 스퍼트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만 하고, 에너지를 가득 채우며 온전히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무엇보다도 남은 50일동안은 덜 아팠으면 좋겠었다.


시험기간 같지 않은 마지막 시험기간이 시작되었다. 이제 시험을 치고 기숙사생들끼리 자습을 하고, 저녁에 맛있는 게 나오길 기다리며 급식을 먹고, 평소보다 일찍 기숙사에 들어오고, 이런 것들도 마지막이다. 자습 감독 선생님이 없는 줄 알고 저녁시간 되기 5분 전에 나갔다가 선생님이 복도에 서 계시길래 일단 한 보 후퇴했다가 눈치보던 중 누군가가 나갔다. 선생님이 아래층에 감독하고 계신다고 해서 다시 반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이 너무 맛있는 메뉴였는데, 선생님이 교무실에 들어가셨다는 말을 듣고 몰래 신속하게 내려갔다. 이런 사소한 재미라도 있어야지 싶었다. 이번 시험기간은 다시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어서 기숙사에 못 들어온 애들도 많았다. 오히려 더 소박하긴 했지만, 유난히 길고 힘들어 집으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집에 가는 순간 길고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에 더욱 기다려지고 마음은 집에 가 있었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 하니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피부도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추석 때 아프면 안된다는 생각에 계속 쓰고 있어서 더욱 지쳤던 것 같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