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무엇을 써 볼까. 높은 천장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린 지 5분도 안 되어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나는 침대에서 폴짝 튀어나와 의자로 점프한다. 의자 바퀴가 데구르르 굴러가 책상 앞에서 멈춘다. 책상에서는 몽땅 연필이 나를 항상 기다린다. 몽땅아 안녕, 또 보네. 공책을 후다닥 펼친다. 몽땅이는 내 손을 친구 삼아 까만 곡선을 그려나간다.
20분쯤 지났을까. 몽땅이는 지쳐 책상에 누웠다. 몽땅 친구가 눕는다는 것은 글 하나가 완성되었다는 것! 참 쉽다, 쉬워. 오늘도 걸작 하나를 써버렸다. 나는 몽땅이의 작품을 노트에서 찢어 가족에게 달려가 자랑한다.
내 꿈은 작가였을까? 누군가에게 '꿈'은 이루기 어려운 인생 최대의 목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금처럼만 하면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는 쉬운 과제일 수도 있다. 또는 아직 검은 안개로 뒤덮인 미지의 무언가일 수 있다. 나에게 꿈은 '반짝이는 안개로 덮인 무언가'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쨌든 안개로 덮인 것은 확실하고, 그 안개가 뿌옇지도, 탁하지도 않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때 누구나 한 번쯤 꿈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7살 때 유치원에서 꿈에 대해 말하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내 꿈은 아홉 가지였다. 피아니스트, 우주비행사, 양궁 선수, 과학자... 지금은 이렇게 네 가지만 기억난다.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온다. 피아노는 7살 때 친구 따라 처음 치기 시작했고,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만화책 속 그림밖에 없다. 양궁은 올림픽 때만 보았고, 과학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것 같다. 멋지니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꿈'이라는 단어는 '장래희망'으로 바뀐다. 새 학년에 올라가면 어김없이 장래희망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친구들은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운동선수 등을 말했다. 그 친구들은 왜 그런 장래희망을 갖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조리 있게 잘 말했다. 나는 친구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장래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없다고 하면 '꿈이 없는 슬픈 아이'라고 보이려나?
아니다. 내게 장래희망은 아주 어려운 개념이었다. 장래희망을 꼭 직업으로 말해야 하는 걸까? 나는 고작 10살 넘은 어린아이인데, 미래의 나에 대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나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장래희망이라는 큰 목표를 세워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수업마다 내 차례가 오면 무언가를 말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마음에 없는 말을 했을 테니까.
그럼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열정 0%'인 아이였나? 그건 아니다. 아주 어릴 때는 무엇이든지 "No!" 하며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점점 크면서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그래도 장래희망은 없었다. 꾸며내서 대충 말할 수도 있었는데 결국 쉽게 지어내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확신이 없는 것. 어느 정도 확신이 들지 않으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내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도 음악가가 되겠다고 말하기에는 그럴 만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엇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기까지의 기준이 너무 높고 신중할 뿐.
결론은 나의 '너무나도 신중한 성격'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잘 아는 길이라도 주의하며 건너라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돌다리가 부서질 때까지 망치로 두들겨 쉽게 건너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럴 때는 수영을 해서 건너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강을 건넌 후 뒤를 돌아보며 내가 힘들게 건너온 강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사용할 망치를 줄여나가며 전진했다.
하지만 고쳐야 할 점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돌다리를 두드릴 망치는 쉽게 작아지지 않았고, 작아졌다고 생각한 순간 힘 조절에 실패할 때도 많았다. 보기도 싫을 만큼 미운 망치를 강에 버리지도 못하는 겁쟁이인 나는, 물에 빠지고 젖은 옷을 말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밖에 못했다.
어릴 때 꿈과 장래희망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어른이 되어 확립된 나의 성격을 알고 나서야 풀렸다. 나는 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까, 왜 별 일도 아닌 것들을 세 번씩 생각하고 나서야 행동할까, 왜 눈을 감을 때마다 생각이란 파도가 끊임없이 닥쳐올까. 그렇게 좌절하며 멈춰있을 때마다 다시 발을 떼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자 방패인 망치를 들고 다리를 건너갔다.
나의 하루하루는 태평양 같은 강 위의 끝없는 돌다리를 건너가는 것이다. 저 멀리 있는 수평선에 도달하는 그날, 나는 마침내 나를 지켜주던 망치를 내려놓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여기저기 부서진 돌다리가 불규칙한 형태의 파도를 받아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를 올려다보면 찬란한 눈물의 달빛이 그동안 고생한 나를 데려가겠지.
그 빛나는 마지막 순간으로 빠지기 위해 나를 수없이 강에 빠뜨리는 망치를 미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