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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Jan 25. 2023

9화. 신과 함께 성주풀이

제2부. 떠나가는 배 꿈꾸는 다락

  어우렁더우렁 술비 소리에 노 저어 오던 혼령들은 저마다의 길로 들어서 갔다. 해남이든 목포든 진도든 저마다 부르는 곳, 황감하게도 잊혀진 이름을 기억해 준 곳으로 달려들 갔다. 승룡이네 굿판에도 소희의 부르는 소리에 천문이 일가 굿쟁이들이 비비고 뜯는 아쟁의 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마당으로 들어서 가고, 회초리 후려치는 소리로 신명을 일으키는 천문이놈 장구 후리는 마당으로 들어서 갔다. 술비 푸진 뱃놀이 마당의 대냉기는 방어소리는 아직 감추어 두고, 신조상들 놀던 마당에서 새로 차려진 잔칫상 옆으로 떡 벌어지게 차려진 구조상들의 휘어진 상다리 앞으로 가 앉는다. 승룡이네 일가들이 몰려서 온다.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올리고는 술을 따른다. 술이라는 것이 매양 공수마당에서 마시던 뜩 뜨르릅 펑 따지던 소주일 리는 없다. 석 달을 옹기에 담아 물을 내고 가는 채에 걸러 다시 석 달 하고도 열흘을 그늘에서 익힌 술일 것이다. 소희는 그것을 두고 맛 좋은 사마주 빛 좋은 강화주라 했다.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인 술을 받고 입 안으로 털어 넣는 구조상들의 얼굴빛이 감동으로 물든다. 어찌 아니랄 좋을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흥물결 이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오기를 잘했지. 아암, 잘했다마다~ 스스로를 잘했다 다독이며 기쁨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흥청거린다.  

  신을 실었는가 보다. 소희가 두 손에 받쳐 들고 소리를 하던 지전다발을 양손에 들고는 빙글빙글 돈다. 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으으음~ 나나나나~ 넋이야 넋이로구나 넋이여~ 낙양성 십리허에 영웅호걸이 몇몇이더냐 아아아 아아아~~어어허~~ 한 마디씩 올렸다 내리고 펼쳤다 모으는 구음을 넣으며 장구를 두드리는 천문이의 바라지 소리에 신을 실어 빙글빙글 돈다. 하얀 빛깔의 저고리 고름이 바람을 타고 난다. 버선 신은 발목이 살짝살짝 보일 만큼 하얀 치마의 폭이 한껏 부풀어 난다. 풍성한 지전이 새하얀 바람을 일으키며 소희와 함께 돌아간다. 그것은 소희 것이 아니고 신의 것일진대, 멈추어서 머리 위로 올리고는 동서남북 네 방향을 잡아 절을 하고, 중앙을 잡아 절을 한다. 오방신장을 다스리며 흥청거리는 굿마당이 한껏 고조되는 밤하늘에 팔월의 달은 떠서 밝고, 손 뻗어 닿을 만한 자리쯤에서 밝게 빛나는 별들이 저희들끼리 무리 지어 굿마당을 굽어본다. 


  “어이, 정읍네야, 자네 허는 그 성주풀이 나도 함께 하세나. 우리 자손들 살피느라 고생 많은 성주들을 오늘은 우리도 함께 위로함세.”


  우금 명당을 둘러보고

  우금 지신을 살펴보세

  우금 명당을 둘러보고 

  우금 지신을 살펴보니

  명당 일색도 확실허고 ~ 그렇지

  선영 일색도 확실허고 ~ 아암, 확실허고 말고~

  제왕 일색이 분명하구나 ~ 얼쑤 좋다~

  모씨 가문 모씨 자손

  천년 성주 만년 성주 

  초가 성주 기와 성주 

  앞에 안산 높은 봉에 팔만장 옥당을 지을 성주니

  어찌 아니랄 좋을 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버리덕이 정읍네야, 오늘 들어 자네가 오구시황님 딸이더냐 제석님네 딸이더냐? 너의 근본이 무엇이냐?” 


  성주풀이를 하며 굿마당에 흥이 오른 조상신들이 신·구 할 것 없이 두리둥실 모여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소희의 사설과 추는 듯 마는 듯 애간장을 녹이는 몸짓을 둘러싸고 손뼉을 쳐가며 밤이슬이 녹아들게 춤을 춘다. 


  그때만 해도 지금 사는 세상과는 댈 수도 없이 궁색했다고, 낮으로 무섭던 날들이 밤으로도 무서웠다고 말들을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천지가 개벽헌 것 맹이다고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곁눈질한다. 아예 눈을 떨군 채로 고개만 끄덕이기도 한다. 취하라고 마신 술이 삭지 않은 채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지 상을 찌푸린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듣고도 흘리고 들으면서도 못 듣는 혼령들은 조상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성주풀이의 집 짓는 대목으로 넘어간다. 태산에 올라 대목을 베어내고 소산에 올라가 소목을 베어내어 다듬고 올리느라고 분주하다.      

 “춤 잘 추고  소리 잘하는 정읍네야, 은동우 들고 수양산 큰 바우 밑에서 너를 버린 아버지를 위해 물을 긷던 버리덕이 정읍네야, 오늘 자네도 우리와 함께 옥도끼를 갈아다가 팔만장관 옥당을 지어볼까나.”   

   

  천산 초목의 역군들~ 예에

  옥도치를 갈아쥐고

  태산에 올라서 대목을 비고

  소산에 올라서 소목 비어

  원근 산에 짚을 떠서 

  둥글둥실 들쳐 메고

  어리둥실 실었구나

  여봐라 모목수야 여봐라 모대부야~ 예에

  오방신장을 단속허고 

  옳은 명당에 터를 잡아

  지추를 뜯어보세

  좋은 낭구는 내가 치고

  자손도 발복허고

  영세망 위로 올라가 

  두 칸으로 가려다가

  굽은 나무는 잘 다듬고

  짧은 나무는 옥다듬어

  첫째 기둥을 잘라다가 상기둥을 세워놓고

  둘째 기둥을 잘라다가 중기둥을 세워놓고

  셋째 기둥을 잘라다가 대들보를 올려놓고

  대들보 위에 춘세 세끌을 올려놓고

  세끌 위에다 왕대 올려

  왕대 위에다 황토 올려

  황토 위에다 기와 올려

  속기와도 일만장 

  겉기와도 일만장

  억만장을 올렸으니

  어찌 아니랄 좋을 소냐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톱질 소리가 요란하다. 우루루 올라가서 잘 자란 나무들 굽어보고 밑둥치 훤칠한 곳에 톱을 넣어 자르는 소리가 흥부네 마당에서처럼 흥이 오른다. 둥글둥글 큼지막한 박을 골라다가 슬근슬근 자르는 모양새다. 불려 온 혼령들, 죽기 살기로 찾아든 고향 마을, 정든 집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낯선 집들이 서 있지만 그것도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라 한 번 죽은 것이 서러울 뿐이로다. 그래도 한 번은 다들 모여 핏줄 같은 인연으로 흠향을 하고, 춤을 추고, 집을 지어주는 모양도 흉내 내어가며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은 소망을 한 가지쯤은 들어주려 힘을 쏟는 것이리라. 

  “노릇이라는 것이 힘든 것잉께…….”

  누구에게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이 상기둥에 새겨지고 중기둥에 새겨진다. 왕대 위에 올라가고, 황토 위에 올라가고, 속기와 겉기와에도 올라서니 일만 장 기와 불사(佛事)의 선업(善業)이 자손만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깊은 샘물 맑은 골에 태어나서 약값 삼 년, 산값 삼 년, 물값 삼 년 치러내고, 은동우에 만병회춘약물 가득 채운 버리덕이 정읍네야, 죽지 않는 기암초, 살아나라는 환생초, 늙지 마라는 백년초, 눈 뜨라는 독양초, 노랑도화, 홍도화로 우리 혼백 깨끗이 씻어 왕생극락하게 하여 다오. 너의 고운 얼굴, 너의 심성 깊은 곳에도 버리덕이의 고매한 정신이 서려 있으려니……. 사람아 사람아, 어여쁜 사람아, 외손발복 크다시며 상을 내리시겠다 소원을 물으시던 오구시황 전에 군군마다 면면촌촌마다 가문 들어 큰 굿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구시루나 하나 전장해 달라던 버리덕이 일곱째 공주의 심성으로 너의 손과 발에 신을 실어 환생의 춤을 추어다오.” 

    

  “천왕제석, 일월제석, 삼정제석님이 오신 자리, 산신제석, 용신제석, 당산제석, 가사제석님 오시고, 석가제석님이 오셨으니, 이 모든 것이 버림받은 너의 몸뚱이 추슬러서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자리에 앉은 공덕, 너의 영혼 들이붓는 보시의 나날이 너를 찾은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죽은 넋에게까지 고르게 퍼진 덕이니, 꽃각시 정읍네야, 천추만대 너의 덕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소중한 모든 생명에게 한줄기 빛이 될 것이니, 일곱째 공주 버리덕이의 심성으로 너의 손과 발에 신을 실어 환생의 춤을 추어다오.” 

    

  “어찌할꼬. 어찌할꼬. 너를 낳아 애지중지 기르던 너희 부모 너를 보면 찢어지는 가슴 안고 쓴 물 올라오는 목구멍에 피가 맺히도록 울어대다가, 끝내는 한 마리 접동새나 되고 말 터인데……아서라, 아서라. 너 사는 울타리 찾아들어 밤으로 낮으로 접동 접동 울다가 긴 장대 끝에 매달린 솟대 되고 말면 어이 하리야. 아서라, 말어라. 환생의 춤 추지 않았다 하여 서운타 하지 않으리니, 사람아, 사람아, 가엾은 사람아, 춤추지 말고 노래 부르지 말고, 그냥…그냥 살아가는 범부 아낙이나 되어 살아라.”     


  “저기 섰는 저 사람, 정읍네, 하얀 저고리 치마도 모자라서 쾌자를 걸쳐 입었네. 허어, 거참, 제석님이 오시고 석가님이 오셨는데, 예복을 입어야지. 머리에 쓴 저것은 무엇인가. 연꽃 아닌가. 연꽃을 머리에 썼으니 제석님의 본을 받고 안철 받을 모양일세. 손에 든 저 종은 또 무엇인가? 은종인가, 금종인가. 쟁그랑 쟁쟁 한 손에는 종을 받쳐 들고, 한 손에는 물고기 지느러미 형상을 한 채를 들어 두들기네. 상아로 만든 채가 긴 줄에 이어져 결국 정종과 한 몸이 되는구만. 청룡 한 쌍이 새겨진 것을 보니, 저 작은 종이 오늘의 용소(龍沼)가 될 모양이구만.”

     

  왕아천아 제석이야~~ 제석이야 제석이야

  제석님의 본을 받고 제석님의 안철받세~~

  제석님의 근본은 어디메가 근본인가~~

  해 섞고 달 섞고 제석님의 본이로구나~~

  제석님의 아버지는 해수가람이 아니신가

  제석님의 어머니는 낯선가람이 아니신가

  제석님의 아들은 글문장이 아니신가~~

  제석님의 딸애기는 인물이 곱다해서 행실이 근본이라~~   

  

  솟았드라 솟았드라 

  나랏님도 솟았드라 석가여래도 솟았드라

  아홉 골 아홉 선비 열두 골 열두 선비들이 석삼년이 지났어도

  제석님 딸애기 인물구경 못했구나     


  중 나려온다 중 나려온다 중 하나가 나려오네

  검고도 얼근중 얼거도 검은중 중 하나가 나려오네

  어디 가는 중이요~~

  제석님네 딸애기가 인물이 곱다해서 

  인물구경 왔나이다    

 

  제석님네 산문 앞에 무슨 낭기 섰느냐

  은송도 섰더라 반송도 섰더라

  은송나무 가시나무 대래층층 엮어졌네

  맨드라미 봉숭아야 취 같은 반초 잎은

  바람이 부는 데로 물결이 치는 데로

  두덕두덕 놀고 있네~~

  물 아래 금붕어는 산수 따라 놀고 있네

  네 귀의 핑겡이는 바람불면 요란하네     


*대문사진: 산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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