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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Jan 19. 2023

8화. 바디장이 방가 태식이

제2부. 떠나가는 배 꿈꾸는 다락

  “질부, 자네도 친정에서야 물레를 돌려보았겠는가, 베틀에 안저를 보았겠는가. 그러니 모든 것이 눈에 설고 손에서도 터덕거리지.”

  시어머니 최 씨의 눈을 피해 가며 가끔씩 찾아와 위안 삼을만한 이야기들로 말벗이 되어주곤 하던 시고모 복흥댁이 숨을 눌러가며 말을 건넨다. 

  “예. 고모님. 행랑어멈들이 하던 것들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손수 해보지를 않았던 일이라 서툴러 일이 자꾸 꼬이나 봅니다.”

  “뭐, 그리 꼬인달 것까지는 없는디, 오고 가는 동안 그렇게 멍하고 섰는 모양이 여엉 맘에 걸려서 그렇제.”

  “괜찮습니다.”

  웃음을 지어 마음을 보인다. 

  “사실, 나도 혼인을 하기 전에는 이런 일 특별하게 해 본 일이 있당가? 늘 한다는 것이 방에 들어앉아 수나 놓고, 옷감 마름질이나 푸새하는 것들이나 조금씩 배우고, 어른들 옷 만드는 바느질이나 찬찬히 배웠지, 물레 돌리고 베틀 밀고 당기는 것은 아예 하들 안 했어. 근디, 내 신세에 주름이 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구만.”

  “송구스럽습니다. 고모님.” 

  “아니네. 자네 하는 모양을 보다 보니까 지난날 내 모습이 떠올라 그냥 해본 소릴세.”

  “…….”

  “내가 무얼 특별하게 잘못 헌 것도 없는디, 언지나 뒤가 돌아봐지고, 뭔 일을 해놓고도 꼭 틀린 것 같고오……. 차암, 한번 마음에 그늘이 들어놓으니까 맥을 추기가 어렵등만. 그나저나 인제는 바딧살에 실을 끼워야 되는디……. 시간 잡아먹는 디는 이것만한 것이 또 없네.”

  “…….”

  “바딧살이 꽤나 촘촘한 것이 꼭 참빗만이등마요.”

  저희 아씨 할 말이 궁색한 것을 메꾸려는 것처럼 서운이가 끼어들어 말참견을 한다. 

  “뭐라고오? 참빗 같다고오?”

  “예에. 대나무 등을 가운데다 놓고 양 끝에 대 기둥을 세운 것이, 양쪽으로 빗살을 두었는디 얼매나 촘촘헌가요? 고걸로 머리를 빗으면 서캐고 이고 다 쏟아지는디……. 으윽, 징그럽잖요오. 챙피시럽기도 하고요오” 

  “허어, 그래. 그런 것도 같다아.”

  소희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받는 복흥댁의 웃음소리가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친정마을로 돌아와 홀로 어린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꼭 말로만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바딧살은 저어기 옹동 근방에 살고 있는 목수 아들 방가 태식이란 사람이 만들었는디. 가늘고 촘촘하기가 귀신같다고 말들을 해쌌드만. 긍께 칠보고 태인이고 장날이면 만들어갖고 나와서 파는디, 값을 배짱 있게 받는다데. 성깔이 좀 있능가벼어. 그 집안에서 예전에는 동학도가 나서 화를 많이 당하기도 했등가빈디, 어쨌든 그 아비고 자식이고 솜씨가 좋아서 많이들 찾는다데.”

  “저도 본 것 같구만요. 왜에, 시장통에 가면 고기 파는 집 있고, 그 옆에 떡집이며 빈대떡 파는 집 있고, 그 옆에 들기름 참기름 짜는 집이 있는디, 그 옆에서 안쪽으로 쑥 들어가면 나무로 만든 것들 갖고 앉아서 파는 사람 말이지요? 사람들이 좀 둘러서서 사가기는 허등마는, 펑퍼짐한 얼굴에 광대뼈는 툭 불거져갖고 성질은 쫌 있겄든디요? 눈알이 쫌 빤짝이기는 헌디. 이, 동태눈깔은 아닌 거 같드만요.”

  서운이가 눈을 빛내며 말을 받는다. 

  “으잉? 야가 야무지게도 봤네에. 너, 언지 그렇게 살뜰허게도 쳐다봤냐? 허어 차암. 이런 사람은 봐도 모르겄드만, 너, 그 사람한테 시집 보내주랴?”

  “예에? 그런 것까지는 아닌디라우…….”

  “얘가 점점…….”

  오랜만에 말들이 많아지다 보니 적적한 마당에 웃음이 일고 화색이 돈다. 

  참으로 더디게 가는 시간 속에서 촘촘하게 뽑아 올려지는 두 가닥의 실이 바딧살에 켜켜이 잡혀 늘어진 모양이 잘 씻어놓은 파뿌리 같기도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빗어 내린 어느 여인의 백발 같기도 해 보인다.


  방가 태식이는 명주바디를 만들기 위해 마을 뒤편 대밭에서 삼사 년을 너끈히 자란 대를 잘라온다. 그 두께가 어른의 손아귀에 넘칠락 말락 뿌듯이 잡히는 것이라야 한다. 쉰 자 길이가 다 되게 자란 대통이면서 그 마디도 한 자가 다 되어야 제격인데, 이만한 대통을 얻기 위해서는 대밭 가운데까지 들어가야 한다. 저희들끼리 모여서 이웃을 이루고, 자신의 소리를 넘겨준 만큼 이웃의 소리도 들어서 넘치지 않게 어루만지며 연대를 이루는 숲, 그곳에서 방가 태식이는 푸른 잎 성성한 대나무를 잘라온다. 뿌리는 땅 밑으로 숨어 이웃한 벗들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토담 아래 몸을 숨기고 제 아비어미가 일 년 내내 잡아다 바친 고기의 값을 달라는 말에 돈 대신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며 주먹을 꼭 쥐고 떠나는 백정 놈 아들의 거친 숨소리처럼 제 이웃의 몸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피에 젖은 손을 맞잡고 묵묵히 잘려나간 상처를 쓰다듬는다.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발걸음이 지치지 않고 헤집는 곳, 두텁게 쌓인 댓잎들이 누렇게 떠서 스스로 거름이 된 눅진한 그늘 속에서 굼실굼실 기어 다니는 지네들의 분주한 발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뱉는다. 뭉툭한 대가리에 뾰족뾰족 붉은 벼슬을 달고 늘어진 붉은 주름 속에 날카로운 부리를 뽐내는 수탉이 암컷을 이끌고 나와 병아리들을 살피는 사이에도, 목에서 가슴께로 흘러내린 깃털의 갈색이 댓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위엄으로 꽁지깃을 한껏 세워 날리는 동안에도 댓잎은 쭉쭉 솟은 가지의 끝에서 속을 비운다. 그러다가 암컷을 호리려 음흉한 눈알을 뛰룩거리는 변방의 수컷이 거들먹거리며 들어오는 영역 안에서 며느리발톱을 세우며 독기를 뿜는 오후면 대나무 숲은 연대의 함성을 지른다. 솨아아 솨아아 댓잎은 서로 쓸리며 물 흐르는 소리를 내고, 비 쏟아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또 빽빽하게 들어찬 대들은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돌 구르는 소리를 내고, 탁탁 튀며 피어오르는 불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것이 수십 수백 개로 내는 소리다 보니, 염탐에 노략질을 하러 온 변방의 수탉은 제풀에 놀라 달아나게 된다. 

  이토록 의로운 삶을 살아온 나무들이지만 대는 하루아침에 칼을 맞고 쓰러진다. 방가 태식이놈의 투박한 손이 한 자나 되는 길이쯤에서 굵직한 마디를 앗아놓고 대여섯 개의 마디를 하나로 하여 톱으로 자른다. 놈의 손은 맵차고 눈썰미는 매처럼 예리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른다. 촘촘하게 어긋난 톱니들이 대의 몸을 파고들며 내는 소리는 마른 지푸라기를 작두로 썰어 무쇠 솥에 끓인 쇠죽 여물을 씹는 누렁소의 입소리처럼 싹싹에 쓱쓱이 섞여 들어 매우 경쾌하게 들려온다. 푸른 대의 속은 잣가루마냥 뽀얗다. 푸른빛이 도는 흰 빛깔의 댓밥은 어쩌면 의로운 생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칼을 맞고 쓰러진 목숨의 뼛가루인지도 모른다. 방가 놈은 도대체 무엇에 이끌려 바딧살을 만들어 팔아 연명을 하며 대의 소리를 듣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펑퍼짐한 얼굴에 광대가 솟았어도 눈빛은 맑아 서운이년의 마음을 잡아버린 방가 놈은 대껍질만 취하고 속대는 바닥에 버려둔다. 톱으로 앗아놓은 자리를 툭 잡아떼어 껍질을 벗기고, 그것들을 다시 잘게 쪼개서는 석칼로 훌쳐낸다. 등잔처럼 생긴 대 위에 등은 무디어도 뱃살은 제법 날카로운 칼을 뉘어 놓고 살짝 뜬 뱃살 밑으로 잘게 쪼갠 대를 쭉 잡아 빼며 살짝 붙어 있는 군살까지 덜어낸다. 그리고는 둥근 나무통 위에 날카로운 칼을 양쪽으로 세운 조름대 사이에 댓살을 넣어 훌치며 옆구리까지도 비뚤어진 곳 없이 반듯하게 조름질 해낸다. 그리고도 성에 차지 않아 다시 고등어 등이 내는 광채 같은 빛깔의 서슬 퍼런 석칼에 여러 번 훌쳐서 빤빤하게 만들어낸다. 

  열 자의 길을 걸어 네 바퀴를 돌아 팔십 올로 감기는 실, 그것이 열다섯 번을 돌아 묶이고, 나란히 서서 바늘기둥에 걸려 일렬횡대로 꽂히는 시간들, 한 개의 살도 빠져서는 안 된다. 방가 놈의 치열한 열중이 합사(合絲)의 밤과 낮과 아침을 빼곡하게 채우려 든다. 인정을 두지 않는 놈의 정성은 석칼의 훌침을 받고 조름대의 눌림을 거쳐 다시 석칼에 훌쳐진 대껍질 살을 펄펄 끓는 무쇠 솥에 국수를 삶는 양으로 넣는다. 종대로 횡대로 켜켜이 넣는 모양은 얼핏 떡을 찌는 모양과도 같아 보인다. 그렇게 삶아진 댓살을 서늘한 곳에 볏단처럼 세워 놓고는 마르는 동안 기둥살을 만들기 시작한다. 

  바딧살의 양쪽 가장자리에 세워지는 기둥살은 생대 두 자가 약간 덜 미치는 길이로 잘라 만든다. 두 쪽 두 쪽씩 배를 맞대게 하여 자른 대는 배가 맞닿는 쪽은 납작하게 만들고 등이 맞닿는 쪽은 약간 반원형으로 도도록하게 만든다. 배가 맞닿는 사이로 바딧살이 들어가 물려서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턱을 괴고 앉아 넋 놓고 바라보던 서운이년이 바딧살 매는 모양을 보며 그것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시오, 그 정도는 나도 헐 수 있을 것 같은디, 좀 거들어줄까라우?”

  방가 놈이 고개는 바짝 들지도 않고 곁눈질로 살짝 보고는 대꾸도 없이 피식 웃고 만다. 

  “아니, 내가 그것도 못할까 봐서 그렇게 웃는다요?”

  흥 소리가 나게 코에 바람을 넣으며 입술을 앙다물어 삐지는 모양이 귀여워 보이기도 한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대껍질들을 전지미대에 대고 툭툭 분질러 꺾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싶지만 기실 툭툭 소리는 나지 않는다. 단번에 꺾이지도 않는다. 팔팔 끓는 무쇠 솥에서 삶아져 나온 것들이 바람을 맞으며 말랐지만 눅눅하게 끈적거리는 이물감이 있고, 가늘게 심 박힌 대의 섬유들이 질긴 목숨을 쉽게 내어놓지 않는 때문이다. 

  “음마,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아니, 긍께에, 그렇게 대답 한 마디 없이……. 그렇게 그런다요?”

  방가 놈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한 번 올려다보더니 말은 하지 않고 만들어 놓은 바디 하나를 내어준다. 

  “싫으요. 지금까지 기다렸는디……. 싫으요. 나 보는 앞에서 만들어진 놈으로 주시오.”

  “거그 턱 받치고 앉아서 기다린다고 요것이 빨리 되는 것도 아니요. 긍께 인자, 이놈으로 갖고 가시오. 바쁠 틴디.”

  “남이사. 바쁘든지 말든지, 넘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허면 못쓰요이. 죄로 가요이.”

  “죄는 누가 받등가 말등가 냅두고오……. 긍께, 거그를 무시헐라고 히서 그런 것이 아니고오, 고오 참새 혓바닥만한 손으로 이런 일 허믄 손 버링께에 가만히 앉어 있등가아……. 아니믄 장바닥이나 한 바꾸 삥 둘러보고 오등가아……. 허시오.”

  말을 하다가는 저도 우스운지 설핏 웃고는 침을 튀기며 말을 한다. 

  “참말로오, 왜 침은 뱉고 그러시오?”

  “나는 뱉은 적이 없소.” 

  “그럼 시방 이것이 침이 아니고 뭣이란 말이요?”

  손바닥으로 손등으로 통통한 볼을 닦아내며 말을 뱉는다.

  “지가 튕겨 나갔으면 몰라도…….”

  얼굴을 닦아내는 손가락을 슬쩍 보고는 

  “그렇게 애기 같은 손꾸락으로는 이런 일 허믄 못씅게, 쥔네 부르기 전에 가서 밥이나 챙겨 먹고 헐 일 다 히놓고……. 그러고 가만히 있다가 생각이 나거든, 그때 오시오.”

  “그렇게 늦어진단 말이요?”

  “참새 혓바닥 같은 손꾸락이 오고갈 것인디, 살 하나라도 꺼지거나 튀어 올라 있으면 다치요. 긍께 절기도 잘 절어야 허고, 스피질도 깨끗이 히야 허고, 글고 얼잡기도 해야 됭께에……. 시간이 좀 걸릴 거요. 다른 놈들보다 공이 쫌 더 들어가겄소.”

  “으읍. 알겠소. 잘 좀 다듬어서 해 놓으시오.”   

  

  배시시 웃는다. 잘 생기지는 않았어도 나름으로는 사내답게 생긴 얼굴에 정 가게 생긴 구석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자기의 손을 돌려가며 바닥을 보고 등을 보면서 피식 웃는다. 어쩐지 참새 혓바닥 같다는 말도 우습고, 애기 손가락 같다는 말도 싫지는 않다. 피이~, 혼자 웃고 혼자 종알거리며 피향정 모퉁이를 돌아 언덕바지 높은 곳 서낭당 높이 솟은 나무 앞에 선다. 누구의 소원이 이토록 많이 높이도 쌓였을까 생각을 하며 돌을 하나 주워 올린다. 자기의 돌이 무심하게 떨어지지 않게 자리가 넓은 곳에 나름으로 넓적한 돌을 올린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는 저만이 아는 소원을 종알종알 아뢴다. 살짝 감은 눈이 떠지면서 방가 태식이의 슬쩍 보고 웃는 얼굴이 지나간다. 아이구머니나! 저도 모르게 벌어진 일에 민망함을 느끼고는 저희 아씨 있는 마당을 향해 달음질쳐 간다. 

  방가 태식이의 손이 오늘은 어쩐지 느려진다. 습관으로 익은 손이 특별히 마음을 먹지 않아도 저 알아서 고부려지고 펴지고 말리면서 별스럽지 않게 만들어지곤 하던 바디가 오늘은 어쩐지 조금씩 느려지고 세심해진다. 게다가 무슨 병통인지 가슴이 부지불식간에 퉁퉁거리면서 뛰곤 한다. 얼굴은 여름날의 햇살이라 뜨겁기도 하지만 챙을 달아 앞으로 쑥 빼놓은 추녀 덕으로 그나마 시원한데, 훅훅 달아오르고 불그레해지는 것이 어디서 모주라도 한 잔 하고 온 모양새가 되어 있다. 어쩐지 잘 만들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깊어진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명문가의 새아씨에게 매인 씨종인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가는 것은, 웃을 때마다 도드라지게 입술 밖으로 튀어나와 하얗게 빛나는 뻐드렁니 때문이라고 탓을 한다. 맹랑하게도 자꾸 귀엽다. 

  방가 놈은 어느새 쐐기를 박는다. 고무대 구멍 속으로 들어가 한 올씩 풀리는 날실을 품고 돌아가는 날틀처럼 생긴 바디틀에 기둥살을 끼운다. 배가 맞게 양쪽으로 눕혀 바디틀에 꽂는다. 기둥살이 움직이지 않도록 줄이 달린 쐐기를 입을 벌려 넣는다. 그리고는 일정한 간격으로 바딧살을 맨하던 전지미대로 탁탁 쳐서 쑤셔 박는다. 실실 웃음을 웃는다. 응큼한 놈이다. 

  어디서 주워들은풍월인가. 옥난간에 베틀을 놓고 베를 짜는 아가씨 사랑노래 베틀에 수심만 진다고 읊어댄다. 양덕 맹산 중세포요 길주명천 세북포라고 중얼거리며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누나 흥을 실어 부른다. 건들거린다. 언제고 노래라는 것을 멋들어지게 불러보지 않았으랴마는 더디게 돌아가는 일을 앞에 두고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 이빨 사이에 물고 입술을 달싹이며 피우는 담배에서 떨어지는 재처럼 뚝뚝 끊기기도 하지만, 오늘 서운이년 삐죽이는 모양이 새록새록 솟아올라 흥에 겨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씨, 등이 아프고 눈이 빠질라고 하는디요.”

  “그러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저 간짓대 굴리면서 실 가닥을 끌어올리는 것도 엉키지 않아야 되고……. 바딧살 좁은 틈새로 끼워 넣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 좀 쉬었다 하자.”

  마루에 앉아 실을 뽑아주고받은 실을 한 쇠 중앙에 꽂아놓은 바늘 기둥에 올올이 감아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를 잡아도 이틀을 넘겨야 하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뽑아서 신을 삼는다 해도 이보다는 더디지 않으리 싶다.      


  도대체 몇 번을 얽어매어야 하는가. 얼마나 질긴 인연으로 칭칭 감기려는가. 

  날실이 베틀에 올라앉고 씨실이 북에 실려 오고 가는 사이 명주베 고운 올이 속적삼 되고 저고리에 바지가 되고, 홍화물 먹인 도포가 되면 잠자리 날개 같은 소맷자락 나비춤 될 것인데, 거기에 테 넓은 갓을 얹어 태사혜를 갖추면 소희는 직녀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여운을 두지 말고 떠나가야 한다. 만나거든 물어야 한다. 왜 나에게 이토록 가혹해야 했느냐고,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느냐고 물어야 한다. 

  하루가 더디게 흘러만 간다. 바디장이 방가 태식이 놈 따위가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다만 타고난 손재주로 심혈을 기울여 좋은 물건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 놈이 무슨 연고로 세심함에 세심함을 더하는 것인가. 모를 일이다. 

  쐐기를 박아 넣은 곳에 마구리를 끼운다. 쐐기 대가리를 가슴으로 막아 세워놓고는 가운데에 버팀 기둥을 세운다. 그리고는 맨 밑에 있는 태기줄을 당겨 전체 바딧살이 단단하게 조여지도록 맨다. 두꺼운 명주실꾸리를 양쪽에서 돌려 감아가며 바딧살을 한 칸씩 절어간다. 반나절이 싸목싸목 지나간다. 밖에서 들어온 실이 안으로 감기며 엮인다. 빤빤하게 훌쳐진 바딧살 하나가 두 개의 실꾸리에 착착 감기며 가시가 되고 버시가 되어간다. 짱짱하게 엮은 바딧살의 면을 칼로 긁어낸다. 스피질을 하는 것인데, 댓살의 각질이 벗겨진다. 기둥대의 배가 맞닿은 마디 부분을 대패로 밀어낼 때 도르르 말려 꽃처럼 피어나던 것과는 다르게 하얗게 일어나 마구 헝클어진 것을 칼로 도려내고 손바닥으로 탁탁 쳐서 털어내 버린다. 가시가 되고 버시가 되는 초야(初夜)에는 몸에 있던 때도 씻어내고 닦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얼 잡기는 마무리다. 대나무 을대로 살과 살 사이를 들고나며 쓱쓱 문지르면 바탕이 고른 하나의 바디가 되는 것이다. 화룡점정이라던가. 八을 새기든 六을 새기든 붉은 인주를 찍으면 초례청의 수줍던 신부는 화사(花絲)가 된다. 



*대문사진: 명주짜기(함창명주박물관)

*성주 두리실마을 명주베짜기 명주짜기와 바디장 1992년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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