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정 Feb 09. 2023

압록강 흐르는 물에 발목 적시던 그 밤에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두둥실 떠오른 달은 보름달이었습니다. 어찌나 명확하게 둥글던지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2018년 7월 26일~29일……. 그때가 아마도 음력으로 보름이었든가 봅니다. 해외독립유적지를 찾는 사람들 틈에 끼어 북간도에 가고 압록강에 가고 백두산 천지에 올라 그 푸른 물을 보았던 그날의 벅찬 감동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을 멀리서 바라보며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널 수 없는 아픔에 마음을 적시던 때였습니다. 양말을 벗고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물에 들어가 뛰었던 오후, 그 물살은 거셌습니다. 어쩌면 나를 이끌고 어디로든 흘러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와 한기를 느끼던 그 밤에 뜬 달은 휘영청 밝았습니다. 높이 치솟은 나무들 사이로 떠오른 달은 그 밤 내내 저의 마음을 묶어두고 새벽이 오기까지 저를 동동거리게 만들었습니다. 


  2023년 정월대보름날에 떠오른 달은 입춘 날 밤에 떠오른 달이었습니다. 저는 입춘에 들떠 그 달을 태양으로 보았을까요? 저에게는 지난 며칠 밤이 없었습니다. 제 마음은 어느새 하지(夏至)에 도달해 있었나 봅니다. 낮이 길어 밤은 도대체 올 것 같지 않은 하루……. 그날의 밤을 저는 ‘백야’로 정해두고 싶습니다. 


  2021년 입춘을 맞던 날 밤, 그 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며칠을 두고 2부의 10화 11화 12화를 써놓고 지쳐 잠에 들었습니다. 몇 시간을 잤는지 모르겠는 밤이었습니다. 사흘 나흘을 2층 글방에서 홀로 앉아 동영상을 무한 반복 무한 재생해 가면서 무엇엔가 홀려 써 내려간 뒤 그냥 지쳐서 잠을 잤습니다. 꿈도 꾸지 않았던 그 밤 잠자리에서 놀라 깨어났을 때 입 안이 텁텁했습니다. 시계는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몸은 찌뿌둥했고, 머릿속은 텅 비어 ‘공’인 것 같은데 어쩐지 무거운 상태, 그  상태의 몸을 이끌고 책상 앞으로 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훅 일어나는 성에가 창문을 뒤덮어 밖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한 빛을 내뿜는 가로등이 둑방길 저만치서 푸르게 떨고 있던 그 밤에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열었습니다. 순식간에 훅 밀려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사이로 보였습니다. 하얀 눈…….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일어서서 감탄의 소리를 내뱉으며 뻗은 손안에 송이송이 눈꽃이 날아와 앉았습니다.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는 감동을 안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박새 겨울사랑 동백 숲에서 봄으로 지는 장면을 연상시켜 주던 감나무가 떨고 있는 자리에서 난간에 쌓인 눈을 한 움큼 집어 낯을 씻었습니다. 차갑게 와닿는 순백의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뱉은 말은 하늘이 나를 위해 밤새 눈을 내려주었구나! 였습니다. 

  사람들 입춘첩을 붙이기도 전에 눈을 내려 봄을 맞이하던 그 밤의 이야기를 두고 저는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원』 2부의 이야기들은 제가 혼자 쓴 것이 아니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또다시 읽어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썼지?’ 싶은 마음을 가지면서 신들의 목소리와 몸짓을 춤에 실어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열망을, 쌓인 원망과 분노로 응어리진 한(恨)을 실어내는 구절들을 문장들을 보면서 ‘이건 내가 쓴 것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세 가지 빛깔의 ‘굿’이 담겨 있습니다. 석구네 박꽃분이(강신무 박영자 님) 주도의 ‘굿’ 이 있고, 박선애 씻김 지무 주도의 ‘굿’이 있고, 화정 장인우 주도의 ‘굿’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굿’을 해보지 않고는 ‘굿’을 쓸 수 없었던 지난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하나의 기록으로서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신(神)들은 소설을 쓰는 머리에 가슴에 손에 실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쓸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도영과 소희의 사랑꽃을 피우기 위해 부채를 들고서 굼뜬 동작으로 백경우 선생님의 춤 동작들을 따라 하며 웃음을 터뜨리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어설펐던 시간들, 웃음으로 터지던 시간들, 슬픔으로 저리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결국 명주실강 건너가야 할 소희 할머니를 배웅하는 시간으로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소희 할머니는 ‘굿’이 끝났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저의 소설 쓰기가 덜 여물었는가 봅니다. 


  겨울을 죽인 경이로운 봄의 입춘과 함께 펼쳐지는 도영과 소희의 춤이 펼쳐지고, 소포걸군농악꾼들의 정월대보름 판굿과 샘굿, 지신밟기가 펼쳐질 예정이고, 진도군 진도읍 지산리 소포마을 사람들의 한 해 안녕을 비는 소희의 액막이굿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소희 할머니 가시는 길 배웅하는 이들의 길닦음이 영돋말이 너머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소희 할머니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제1부 첫 장부터 몰아보기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한국인들의 유전자 깊은 곳곳에 새겨진 전통문화와 민속을 보존하고 계승발전 시켜온 사람들의 의지와 인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맥(脈)을 잇기 위해 노력해 온 숭고한 가치,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을 지켜오고 이어가는 사람들의 오늘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것들이 내일의 한류문화 콘텐츠입니다. 

  『해원』 제3부는 다음 주 2월 15일 수요일부터 오후 다섯 시에 열립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2023년 2월 9일 화정 장인우 올림 



*대문사진: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39호 진도 소포걸군농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