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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Mar 02. 2023

6화. 가희야 가희야 울지 마라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희수야, 우덜이 너를 업고 뛰었어야. 세 살이나 먹었을까? 아니여. 네 살이 다 먹어갈 땐디, 우덜이 너를 업고 뛰었어야. 실지로 너를 업은 등짝은 장만상이 등짝인디, 그것이 우리가 모두 너를 업은 폭이였어야. 그날 우리 마을 사람들 다들 울었다. 그려, 울지 않은 사램이 없었이야. 원 없이 울어버렸다.”

  “그게 무신 말씀이시당가요? 왜 저를 업고 뛰어롸우? 제가 무동었어롸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처음 듣는 말에 놀랍기도 하려니와 자신이 걸군농악의 무동으로 올라서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감님, 게다가 만상이 아재는 창부 아닌가롸우? 옛날부터 지금까지 창부는 줄곧 그 아재였던 것으로 아는디요.”

  “그랬제. 만상이 그놈, 평상시는 그렇게 멀쩡허다가도 농악만 시작했다 허면 창부는 내가 해야겄지롸우? 나 말고 헐 사람 또 누가 있겄소? 그리도 내가 창부를 히야 딴 놈 못들어오제. 험서나 뒷짐은 지고 무릎팍 굽혀갖고 허리는 구부정거림성 걸음도 넘들 한 걸음으로 갈 것을 반으로 나눠갖고나 신발 끄심성 가잖냐? 참말로 빌어먹게 생긴 꼬라지를 만들어내는디, 이런 사람 돈주고 허래도 그렇게는 못헐 것이다. 근디도 그놈은 능청맞기가 참말로 오뉴월 엿가락 돌라먹고 입 씻어분 놈 같이 천연덕스럽당께. 그리도오 그놈이 그 날은 너를 업고 뛰었어야. 천문이 형님이 살어서 왔다고 왜장치면서나 울면서나 웃어가면서나 너를 업고 뛰었지야. 마을 사람들 풍물 크게 침서나 다들 그렇게 받고 그렇게 뛰었지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잔상 하나 짤막짤막하게, 조각조각 잘린 형태로 구겨진 사진이 찢어진 것처럼 떠오른다.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붙여놓은 것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왜 우리 아부지가 저로 살어서 오셔롸우?”

  “다들 그렇게 생각허고 그렇게 믿고 싶어 했이야. 그럼성 방 안으로 숨어버린, 불도 빛도 들오지 않는 구석탱이 골방으로 숨어버린 것맹이로 싸리울 밖으로 나오지 않는 너그 엄니를 밖으로 나오게 할라고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합심을 혀갖고 풍물을 잡은 것이제. 굴속에 틀어박혀 도사리고 앉은 오소리를 굴 밖으로 나오게 할라고 덜 마른 솔가지 쑤셔 넣는 것마냥 풍물을 잡음서나 도둑질 하듯이 너를 데꼬 나와 한판 뛰고 논 것이제. 그럼성 마을 사람들 천문이 잃은 설움을 털어내고 절대로 살어서 더는 굿 안 헌다고 문 닫고 들어가 옴짝달싹도 않는 너그 엄니를 흔들어 밖으로 빼올라는 것이었제. 오목조목 꼭 빼닮은 것이 씨도둑은 못허더라고, 너는 너그 아부지 도싱허다. 도장으로 팍 눌러 찍어놓은 것 마냥 꼭 닮은 것이 내가 누구라고 안 히도 누구나 한 번 보믄 어, 니가 천문이 아들놈이로구나. 헐 만치 너그 아부지를 똑 빼닮었다. 느그 아부지 가고 일고여덟 달이나 돼서 나온 너를 너그 아버지 현신으로 본 것이제. 말허자믄 천문이가 환생이라도 해온 것마냥 생각했더란 말이여.” 

  “우리 아부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사람이었어롸우?”

  “그랬제. 너그 아부지는 소금농사도 안 허고, 물질도 안 하고, 허는 것이라고는 맨날 느그 어무니 넘으 집 빌어주는 디 따러가서 장구 치고 북 치고 허는 것인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디가 좀만 아퍼도 느그 집을 찾어가서 말허고, 섬이다 봉께 멜치 잡고 새비 잡을래도 너그 집한티 부탁을 했다. 조구 잡으로 갈라면 그것이 어디 하루이틀이냐? 그렁께 곡우께나 돼서 조구울음 소리 들린다고 술렁이면 나가갖고 망종 때까지는 바다 우에 떠 있어야 헝께 느그 어무니 아부지는 우리 곁이 붙어사는 하눌님이고 부처님이고 조상님이였어야. 허다못해 에미 소가 새끼만 낳는 디도 터덕거리믄 너그 집을 찾어가서 하소했어야. 다급허닝께. 그랬는디, 느그 아버지가 그렇게 변을 당헝께……”

  퉤, 퉤 침을 뱉어 담배를 짓이겨 끄고는 다시 새 담배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그리고는 풍물 치고 노는 사이사이로 들어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에게 산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고개를 수그린다. 그러더니 이마에 힘을 주어 주름살을 모아 잡으며 말을 꺼낸다.

  “그려. 그렇게 일을 치르고는 어느 날 하루 너그 어무니가 벽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제기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마당으로 내팽개치지 않았겄냐. 스뎅으로 된 것들도 있고, 놋그릇들도 있었는디, 자꾸자꾸 내버리더라.”

  “이깟놈의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겄나? 이깟놈의 것들로 죽겄다고 귀신 달래고 뭣 달래고 해 봐야 무슨 소용 있겄나? 도대체 무얼 그리 잘못했다고 이리도 가혹하게 사람을 죽일라고 달라드느냐고? 아무리 팔자 사난 년이라고 이리도 가혹하게 사람을 잡아가냐고? 도대체 얼마를 더 해야 되느냐고? 어……?”

  “악다구니를 써감성 그릇이고 뭐고 다 내다 버리는디, 무섭더라. 순하디 순한 사람 어디서 그렇게도 모진 악다구니가 쏟아져 나오는지…… 마을 사람들도 몰려와서는 그러믄 쓰냐고, 왜 이러시냐고 함성 참으라고 참으시라고 말렸쌌는디도 무슨 분에 휩싸였는지 기양 물레고 뭣이고 다 갖다 내버리고 안 살란다고 악을 악을 썼쌌드라. 더러워서 못살겄다고. 다 불싸질러 버리고 죽어버리겄다고 악을 악을 썼쌌드라. 긍께 방에서는 너그 누이 가희가 놀래갖고 아앙 아앙 울어대고,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던 기수가 놀래갖고는 멍청히 서서 바라만 보고…… 참말로 말잉게 그렇제, 가슴이 많이 아펐다. 그리도 너그 큰성 기수가 마당에 내동댕이쳐진 그릇들을 하나씩 주워 담응께 너그 어무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장구를 들고 나와서는 마당으로 내던져버리더라. 사램이 얼마나 성이 나면 저렇게 불이 일까, 다들 기가 막혀서 옴싹도 못허는디, 그 가희 쬐끄만헌 것이 마당으로 뛰어 내려가더니만 장구를 주워들고는 꽉 끌어안고는 울어쌌는다. 어찌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열채고 궁채고 줏어 들고는 너그 아부지 평생 두들기던 장구를 끌어안고는 그렇게 울어싸야. ‘아빠야 아빠야……’ 쬐끄만 그 얼굴에 눈물이고 콧물이고 범벅이 되어갖고나 꽉 붙들고는 울어쌌는다. 긍게 너그 큰성 기수도 설움에 받쳐서 울어대고 앙앙 울어대고 다른 것은 다 냅두고는 장구만 붙들고 그렇게 울어싼다. 그것들이 어린 것들이라도 장구가 저그 아버지 몸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가비더라.”

  ……장구, 아버지, 손때 절은, 세워진 채로 한쪽 벽에 놓여져 있던, 그 물건, 한 번씩 그냥 두들겨보면 퉁퉁 튕겨나며 소리를 내던, 한 번도 제대로 잡고 소리 내어보지 않았던 그 물건, 내 아버지 손때 묻은 그 물건. 나는 버꾸로만 살았지, 그 장구 소리 한 번만 들어본다면…….

  “그러고는 느그 누이 가희가 앓아누워버렸어야. 그 쬐끄만 것이 얼마나 상심이 컸던지. 느그 어무니 배는 이런 사람들 눈에도 비치게 불러오는디, 가희 갸는 어린 것이 얼매나 놀래고 상심이 컸던지 끙끙 앓아 누웠는디, 열은 펄펄 나고, 참말로 그러다가는 멀쩡한 가이내 하나 잡겄다 싶었다. 긍께로 너그 작은 할아버지들이 나서고 그 식솔들이 나서서 약을 지어오고 야단이었지야. 그리도 다행히 그때 깨났응께 저리 커서 시집도 가고 자식도 낳고 넘 살디끼 사는 것 아니겄냐? 가끔씩 오감성 인사라도 헐 때믄 참 다행이제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먹먹해온다. 눈으로 보지 않은 광경이 귓전을 울리며 눈앞에 그려진다. 또 하나의 어머니처럼 언제나 다정했던 사람, 밖에 나가서 놀다가도 놀림받고 손가락질당하고 들어와 씩씩대며 분해할 때도, 쌈박질을 하고 흙범벅이 되어 들어와도 얼굴을 씻겨주며 옷을 갈아입혀 주던 그 자그마한 손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눈앞이 뿌옇게 아른거린다. 멈출지 모르는 상쇠영감의 매캐한 담배 연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아리게 올라온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눈 가장자리 안에서 맴돌던 눈물이 어쩔 수 없이 흘러내린다. 맥없는 콧물 찍찍거리는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울린다. 어지간히 흐른 시간이 아직도 밤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괜스레 귀 기울여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문사진: 장구(Daum 이미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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