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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Mar 08. 2023

7화. 아버지와 노란 손수건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아가……아가, 눈을 좀 떠보아라. 으응?”

  며칠째 앓아누운 아이가 눈을 뜨지 않는다. 자그마한 몸은 자꾸 밑으로 까라지는 모양으로 처지고 열은 펄펄 끓어 온몸이 불덩이다. 수건을 적셔 이마에 올려놓고 몸을 감싸놓아도 수건은 금세 뜨뜻해진다. 마음이 타들어간다. 며칠째 밥술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딸아이 곁에 앉아 지켜보지만 마음만 밭을 뿐 이렇다 하게 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 답답하고 초조해질 뿐,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도 멈추어버린 것 같은 적막감만이 가슴의 벽을 타고 흐른다.

  댕 째깍 댕 째깍 대앵 째깍

  쪽마루 허름한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제 할 일을 잊지 않고 때맞추어 종을 울린다. 대앵~ 한 번씩 울 때마다 긴 여운 속에서 초침의 움직임과 동시에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백동빛 추를 유난히도 신기해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그란 추를 잡아보고 싶어 발돋움하며 재잘거리던 날들의 영상이 떠오른다. 제 아빠의 팔에 안기어 뚜껑을 열고 바쁘게 움직이는 추를 덥석 잡고는 깜짝 놀라 가슴에 안기던 날들의 웃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깡통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건져 올린 황도의 덩어리처럼 미끈둥하게 빠져나가던 날들의 놀란 울음에 터지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봄날의 아지랑이 되어 들판 저 너머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헛구역질처럼 슬픔이 밀려온다. 뱃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어린 생명이 움찔움찔 몸을 뒤튼다. 발길질을 한다. 불룩 솟았다 쭈르륵 미끄러지고 불룩 솟아오르는 곳에서 발뒤꿈치가 잡힌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인다. 생명이다. 눈앞에서 깨어날 줄 모르는 아이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아이가 아버지 잃은 슬픈 계절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갔던 사람이다. 여느 날과 같이 해는 말갛게 떴고, 부스럭거리는 이불속에서 몸뚱이는 조금만 더 누워 있자고 졸라대는 평온한 아침이었다. 밤새 끌어안고 잠든 두 사람은 꿈마저도 그렇게 같은 그림으로 같은 빛깔일 것처럼 평온하였다. 대문 앞 커다란 나무에 푸른 잎사귀는 아직 돋지 않았어도 새들은 재재거리고 찌찌거리며 톰방거렸다. 작은 몸뚱이의 새들이 새로 뻗어 나온 가지들과 어우러져 겨울눈이 붉은 몽우리를 매달고 살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내맡기는 기분 좋은 아침, 천문이는 소희의 밥상을 받으며 소박하게 웃음을 지었다. 봄동 겉절이가 송송 썰어 넣은 대파의 푸른 빛깔과 콩콩 다져 넣은 마늘을 붙잡다 놓치고 이내 붙잡아 뒤엉키며 실랑이를 벌이는 폭넓은 접시에 젓가락을 넣어 한 움큼씩 집어다 입안에 몰아넣고는 웃었다. 으음……봄이 살쪘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소희를 바라보았다. 짭짜름하게 구워진 갈치의 두툼한 몸에서 잔가시들을 발라내어 기수의 숟가락에 올려주고, 잔가시들을 발라내고도 혹 숨어 있을 가시들을 살펴 뽑아내고는 가희의 작은 입 안에 넣어주었다. 방실방실 웃으며 숟가락에 밥을 얹어 내미는 기수의 웃음이 장난스러웠고, 자그마한 숟가락을 입 안에 몰아넣고 오물거리는 가희의 웃음소리가 포르릉 날아올랐다 피잉 소리를 내며 땅 위로 내려앉는 새들의 방정마냥 가볍게 새치름했다. 그 무엇도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그제와 다르지 않았다. 푸근하게 따사로운 아침이 지나가는 사이에도 고샅을 뛰며 노는 어린것들의 소리가 말갛게 들려오는 아침이었다.

  소개나루 주막 앞 포구에 배가 닿았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의 볼거리를 찾아 읍내로 나가는 배였다. 바람도 알맞게 불어 머리카락은 살랑거리고 쏟아지는 햇살이 가르마 정갈하게 탄 가시내들 머리꼭지 위로 내려와 검은 빛깔을 더욱 검게 만들었다. 아이들도 학교를 쉬는 날이라 읍내에 나간다고 있는 대로 몰려나온 아침나절 배는 만원이었다.

  이내 배는 떠나려 몸뚱이를 기우뚱 움직이고 뒤늦게 뛰어오는 순덕이네 세 자매가 손을 내저어가며 배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만이네 고모들이 뚱뚱한 몸을 금방이라도 자빠질 듯이 내둘러가며 뛰어오고 있었다. 뛰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얼른 뛰라며 손을 까부는 사람들과 조금 기다려서 태우고 가라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인정 넘치게 배 안을 휘젓고 다녔다.

  겨우 겨우 배에 오른 사람들을 태우고 배는 읍내를 향해 떠났다. 이웃 마을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웃음소리와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운지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일을 떠벌리며 사람들의 뒤섞인 소리들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흔쾌하게 흐르던 어느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기우뚱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배는 쿵 하고 무엇엔가 다시 부딪히고 선장의 다급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뭐라고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배는 기울어지고 사람들은 한 곳으로 몰려 쓰러졌다.

  “오매 오매, 뭔 일이당가?”

  “어찌 된 거여? 배가 기울어지네.”

  “아이구, 아이구.”

  다급한 소리들과 울음소리들이 뒤섞이고 사람들이 가지고 나온 짐과 보따리들이 한데 엉겨 뒤범벅이 되었다.

  배가 막 산허리를 돌아드는 사이 느닷없는 바람이 일어 회오리를 치며 덩치 큰 배를 숨어 있던 암초의 벽에 세게 내리꽂아버린 것이다.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던 순간의 일들이 사람들을 시커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부지……아부지…….”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일까? 있는 힘껏 달려가면 금방 닿을 것 같다. 걸어서 가면 점점 더 멀어질 것 같다. 그 곳에 아버지가 있다. 옷은 얼룩덜룩 흙이 묻어 있는 것처럼 지저분하고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다. 부스스한 얼굴이 희미하게 알아보는가, 어린 가희를 향해 걸어오는 것 같다. 뒷걸음쳐 가는 것도 같다. 왜 아버지가 자꾸만 멀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먼 데 가서 굿을 하고 오다가도, 장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가지고 오다가도 가희가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오던 아버지다. 그런데 지금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머리 위까지 끌어올려 빙글빙글 돌리며 크게 웃던 그 아버지가 아니다. 알 수가 없다. 이상하다. 무서워진다.


   “아부지……아부지……이리로 와. 이리로 오라고…….”


  악을 악을 쓰는데도 아버지는 멍청하게 바라만 볼 뿐 대답이 없다. 그냥 모든 것이 희미할 뿐이다.

  “아부지, 장구 가지고 가. 응? 장구 가지고 가. 어무니가 마당에다 버린당께. 얼른 와서 가지고 가.”

  주저앉는다. 퍼버리고 앉아서 자꾸만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울어댄다. 목이 아프다. 목이 안에서 갈라지는 것 같으면서 따끔거린다. 캑캑 기침을 한다. 입 안의 끝이 마른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을 한다.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나오는데 목구멍이 쓰라린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그냥 어린아이의 느낌일 뿐 무어라 규정지어 말을 할 수가 없다. 배도 아픈 것 같고 가슴도 아픈 것 같은데 저쪽에서 어머니가 부른다.


   “아가……아가, 눈을 좀 떠보아라.”


  애가 타게 부르며 자꾸만 눈을 뜨라고 재촉을 한다. 어머니는 참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눈을 뜨고 있는데 왜 자꾸만 눈을 뜨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밉다. 어머니가 밉다. 무서워 죽겠는데 눈을 희뜩하게 뜨고서 악을 악을 쓰면서 방 안에 있는 그릇들을 마당으로 내던지는 어머니가 무서워 죽겠는데……가기 싫다. 어머니가 부르는 곳으로 가기가 싫다. 도리질을 한다. 눈을 질끈 감으며 도리질을 한다. 아버지한테 갈 거다. 어머니가 마당에 내팽개친 장구를 들고 아버지한테 갈 거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멀리 가버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가희가 일어선다. 검은 빛깔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땀에 젖고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린다. 어머니가 바가지에 박박 문질러서 씻어놓은 미역가닥 같기도 하고 물에 씻어 불린 매생이 같기도 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으며 귀찮게 한다. 손으로 쓸어 올리며 앞을 본다. 금방 손이 닿을 것 같은 곳에 아버지가 서 있다. 아버지가 가희의 양팔을 잡는다. 가희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뭐라고 말한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무슨 그런 얼굴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얼굴로 가희를 바라본다. 슬프다. 아버지가 웃지 않으니 슬프다.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며 빙글빙글 돌리고 볼에다 뽀뽀도 하고 눈을 들여다보며 찡긋 웃어주기도 해야 하는데, 그리고는 아버지 굵은 팔뚝에 앉아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쁘다. 아버지가 나쁘다.

  귀찮다. 어머니가 자꾸 얼굴을 부빈다. 어머니의 냄새가 퀴퀴하다. 어머니한테서 쉰 냄새가 난다. 며칠 지난 밥에 콩깍지 빛깔의 꽃이 피고, 군데군데 강냉이 튀밥 색깔의 꽃이 피면 풍겨오는 냄새가 난다. 끈적끈적하다 어머니의 눈물이 자꾸 이마에 떨어지고 코에도 떨어지고 입술에도 떨어진다. 짜증이 난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버지가 저고리 안쪽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낸다. 노란 손수건을 꺼낸다. 난초 꽃잎이 단정하게 피어 있는 노란 손수건을 펴더니 둘둘 만다. 그리고는 가희의 손목에 둘러 묶는다. 엄마에게 주라고 말한다. 보랏빛 난초꽃이 얼굴을 드러낸다. 환하게 벙그러진다. 아버지의 손이 밀어낸다. 등을 톡톡 친다. 힘껏 밀어낸다.

  ‘아악…….’

  아버지가 손을 흔든다. 가다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가다가 뒤돌아보면 손을 흔든다. 아버지의 손에는 손수건이 없다. 다만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맹탕 같은 얼굴만 있을 뿐.

     

    가자서라 가자서라 씻김정산 가자서라

    우두영산 자자서라 좌두영산 가자서라

    모씨가문 선영조상 모씨가문 선망조상

    삼오칠백 영가혼백 삼오오백 영가혼백

    천고학생 죽은신위 청춘남자 청춘여자

    영도정자 대도정자 목욕하고 극락가자

    누덕철망도 벗고 가세 금사망도 벗고 가세

    부정도 벗고 가세 중복도 벗고 가고 개복토나 벗고 가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 나라가 편해야 신하가 편해

    웃대 선망조상부터 차례차례 제 차례로 손길 잡아 오시어서

    목욕하고 극락가자~

    사람이 생겨날 적 집자리에 탄생할 적

    목욕없이 클 수 있소

    정부부 정사랑 첫날밤 만날 적에

    목욕없이 만날소냐~

    소년이나 백발이나 황천길에 가실 적에

    목욕없이 어이 가리오
     쑥물로 목간하세 향물로 해갈하세 정화수로 벗고 가자

    오날 오신 양가조상 가련하구나 부모형제 일신

    처량하신 청춘망자~

    하늘 울어 천둥대신 땅이 울어 지둥대신

    하늘이 일러더냐 땅이 일러더냐

    천지지신이 일러더냐 일월성신이 일러더냐

    소동파 죽어지니 적백놀음이 허사요

    제갈공명 죽어지니 사통천문이 허사로다

    천리접종 송건이는 휘양남에 죽어있고

    남중일색 호충선이 대장성도 죽어있고

    황후불러 눈치하니 순임금도 죽어있네

    말 잘허는 소진장 열국제왕 다 달려도

    불쌍하신 모씨망자 염라대왕 못 달려서

    황천객이 되었구나~서럽고도 서러워라

    불쌍하신 모씨망자 한번 아차 죽어지니

    육지장포 일곱매듭 상하로 잘끈 묶어

    소방산 대뜰 위에 덩두렇게 올려매고

    북망산으로 향하리라~~ 북망산천 가고 보니

    산토로 집을 삼고 송죽으로 울을 삼아

    두견새 벗이 되야 산은 첩첩 밤 깊은데

    홀로 외로이 누웠으니 서럽고도 서럽구나

    처량하신 넋이로세 불쌍하고 가련하신

    모씨망자 원당 풀고 한당 풀어

    극락세계 가실 적에 육십갑자에 매였구나~     


  새벽안개 짙게 내려앉은 팔월의 마당으로 석구네가 쟁반을 들고 내려온다. 네모반듯한 스뎅 쟁반에 그릇 세 개가 놓여 있다. 쑥물이 담기고 향물이 담기고 정화수가 담겨 있는 그릇 옆으로는 액 그릇이 놓여 있다. 제 몸을 태워가며 어둠을 밝히는 초 하나가 꼿꼿하게 서서 정읍네소희를 바라본다.

  원왕생 원왕생 나비몸 되고 새몸 되어 오만신선이 되어 가시면서 극락 가시라는, 원왕생 세왕 가시자는 축원가를 부를 소희가 맷방석에 앉는다. 치맛자락을 펼치며 앉은자리가 선득거린다. 팔월의 땡볕이 식은 자리에 안개가 내려앉으니 짚자리가 머금고 있던 물기가 속옷을 적신다. 축축한 기운이 살갗에 닿으며 끈적거린다. 꿉꿉하다.

  소희가 창호지를 펼친다. 양손으로 누벼가며 펼쳐놓는다. 하지만 둘둘 말린 창호지 끝이 살짝 들리며 말리려 한다. 그것을 다시 손으로 쓸어가며 네모반듯하게 펼쳐놓는다. 양가 선영조상들이 입고 갈 옷들을 하나씩 꺼낸다.

  하얀 속적삼에 개나리꽃빛 저고리가 덧입혀진다. 칡꽃 빛깔 바지가 반으로 접혀 저고리 섶 사이로 들어간다. 맑은 하늘빛 저고리에 비둘기빛 물먹은 바지가 놓이고, 앵두빛 붉은 저고리에 꾀꼬리빛 치마를 얹으니 양쪽으로 벌려놓은 소매가 살며시 접힌다. 주황빛 노을 물드는 저고리에 은가루 섭섭지 않게 뿌려놓은 옷이 소맷자락 모으고 그 사이로 하얀 버선이 놓여진다. 한 벌씩 몫몫으로 만들어진 옷들이 모두 포개어지자 소희가 창호지 하나를 펼쳐 덮는다. 마치 홑이불을 펼쳐 덮어주는 것처럼 정갈하게 덮는다. 연둣빛 고운 저고리에 진달래꽃빛 치마의 물빛이 창호지에 스며들어 돋아 오른다.

  “누구 옷이디야아? 빛깔들이 걍 이삐네에.”

  누구의 덕담일까. 마당에 웃음소리가 차오른다.

  “살았을 적에는 저런 옷 한 벌 제대로 못 입어본 것 같은디이……스읍 후우……아따, 오늘은 호강허네에.”

  꽁초만 남은 담배를 한 번 더 양껏 빨아재끼던 노인이 입 안 가득 물고 있던 연기를 파아 내뿜으며 말을 한다. 그리고는 다 닳아버린 꽁초를 땅바닥에 짓이기며 창호지에 덮인 옷가지 뭉치를 바라본다.

  “참말로. 살아서는 머했는가, 제대로 된 옷 한 벌 입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디, 이미 죽어서 멋이 됐을랑가는 몰라도 후손들이 저라고 굿을 한 판 히준께 신수가 훤해지는구만.”

  “아따, 젠장맞을……뭣헌다고 담배는 그렇게 끄실러쌈성 옆이 사람 얼굴에다 대고 뿜었쌌능가아 모리겄네. 오소리 잡을랑 것도 아님성 오지게 피었쌌네에.”

  누렇게 뜬 얼굴 곳곳에 검버섯 핀 노인이 눈을 찡그리며 타박을 한다.

  “이라고 저라고 궂은 말 헐 것 있당가. 그냥 좋은 말들만 혀어. 매급시 군소리 해싸믄 좋은 옷 입고도 마음 상헝께 좋은 말들만 혀어.”

  “긍께이. 인자 가면 또 언지 올랑가 기약도 없는디, 넘 좋은 잔치에 재 뿌리지 말고 좋게 좋게 보내주세. 승룡이놈도 발이 잘 안 떨어지겄구만. 춘심이 그 사람이 얼굴 한 번 비처주면 불려온 보람이 더 클 것인디.”

  입맛을 쩟쩟 다시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늘을 본다. 윗도리 주머니에서 거북선담배가 끌려 나온다. 입이 쓴 지 가슴이 쓴 지 가래를 콰악 돋우어 올린다. 그러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후우우 연기를 쏟아낸다. 한숨이 함께 뭉쳐 나오는 연기가 공중으로 퍼져나가며 바람에 흩어진다.  

   “그렁게 말여. 사램이 모진 것인가. 아니믄 딴 사정이 생긴 것인가아. 그렇구만.”

 튕겨 나오는 원망도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도 못이긴 척 내려놓는다.


*대문사진: Daum 이미지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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