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너에 파문을 일으킨 고양이 밥자리 논란
결혼 후 우리가 살게 된 신혼집은 oo 산로에 있는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였다. 은행과 지분을 나눠갖긴 했지만 우리는 고지대에 위치해 창밖 전망이 좋은 이 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새로 살림을 채워 넣기 전 입주청소를 맡기고 돌아오니 청소 업체는 베란다, 싱크대는 물론이고 집안의 샷시까지 다 분리해 유리, 창틀 청소까지 말끔하게 끝내놓았다. 묵은 먼지를 다 닦아낸 유리는 창밖 전망이 좋은 이 집의 장점을 더 빛나게 해 주었다. 예전 거주자가 깨끗하게 썼던 집은 새로 도배도 필요 없을 만큼 새집 같았다. 이만하면 처음 입주하는 신축 아파트 부럽지 않다 싶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면.
이 집은 수납공간이 한참 부족했는데 큰 장을 놓을 공간 또한 충분치 않았다. 결국 옷방 겸 창고로 쓰기로 한 작은방엔 창밖으로 에어컨 실외기 놓는 자리가 있었다. 요새는 실외기 공간을 애초에 실내로 설계해서 건축하기 때문에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에만 남아있는 공간이다. 문제는 이전 거주자가 이사를 가면서 실외기를 들어내고 나니 그 아래 있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은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었다.
비둘기 둥지에 알이라니. 흥부놀부에 제비도 생각나고 언뜻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상 그 풍경을 맞닥뜨리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실외기가 가리고 있던 자리에는 온통 비둘기 배설물과 깃털, 둥지를 만들다 만 잔해들로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였다. 온갖 오염과 세균, 박테리아의 온상이 된 그 흔적의 냄새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역했다. 제일 큰 문제는 그 와중에 비둘기가 낳은 부화하지 않은 알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청소 업체는 '이것도 생명인데 어떻게 치우나요.’ 라며 ‘이것의 뒤 처리는 남은 당신들 몫이니 따로 업체를 부르던지 알아서 하라.‘ 야속하게 말하고 떠나버렸다. 그랬다. 오래전, 재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엔 산자락이었을 이곳은 유명한 비둘기 둥지 맛집이었던 것이다. 높은 지대는 우리에게 뻥 뚫린 전망을 주었지만 비둘기에게는 천적을 피할 둘도 없는 안식처로 보였을 거다. 실외기가 만들어준 그늘을 처마 삼아 살고 있었던 비둘기는 새로 이사 온 우리 덕에 지붕을 잃은 셈이었다.
당장 그 잔해들을 건드릴 엄두도 안 나고 비둘기 알을 냅다 버릴 용기도 없었다. 우리는 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려서 한동안 그곳이 집에서 없는 공간인 것처럼 지냈다. 새끼가 알을 깨고 나와 언젠가 날아갈 테니 그때 치우는 수밖에. 그동안은 그냥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할(판단을 미룰) 시간을 벌었다. 가끔씩 작은방 창밖에서 들리는 구-구- 비둘기 울음소리, 퍼드덕 거리는 날갯짓 소리들은 이 이상한 동거를 잊을만하면 다시 상기시켰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도를 닦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결국 몇 주가 지나 부화한 비둘기 새끼가 날아갔다. 귀소본능이 있는 비둘기가 다시 이곳을 찾아 둥지를 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우리는 전문 비둘기 퇴치 업체를 불러 30만 원을 주고 철옹성 같은 펜스를 설치해 온 사방을 막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로도 비둘기는 예전 제 집자리를 찾아 날아왔지만 이제 비집고 들어올 구멍은 한 치도 없었다.
기묘했던 우리의 동거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최근 급부상한 아파트 앱 시장 1위 서비스 아파트너 앱은 그 사용자가 2100여 단지 및 190만 세대에 이른다. 공지 알림 및 각종 민원접수. 관리비 조회는 물론 주요 안건에 대한 전자 투표까지 앱을 통해 가능하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민과의 소통과 관내 아파트 관리 업무 지원을 위해 아파트너 앱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얼마 전부터 이 서비스를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아파트너 앱 게시판을 통해서는 익명으로 소통활동도 가능하다. 무개념으로 선 넘은 주차를 일삼는 차량 사진을 찍어 경고성 글을 올리기도 하고, 무단 쓰레기 투기자를 단속하는 자경단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근데 얼마 전 아파트너에 올라온 한 글은 이 폐쇄적인 커뮤니티 안에 적잖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단지 화단에 고양이 사료를 놓아두는 행위가 관리사무소에서 허락한 사항인가를 묻는 글이었다. 원글 작성자는 ‘000동 앞에서 고양이 밥을 주기적으로 챙기는 캣맘(고양이 밥 챙겨주는 사람)이 온 가족을 대동하고 나와 사료를 주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자신이 가서 몇 동 몇 호에 사는 누구냐고 물어도 알려주지도 않더라. 이게 아파트에서 허락된 사항이냐.’며 화두를 던졌다.
이 글에 우수수 달린 댓글들은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비난을 쏟아냈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면 개체 수가 늘어나 감당할 수 없어진다.' '사료를 놓으면 고양이뿐만 아니라 바퀴, 쥐, 비둘기가 먹고 다닌다.' '고양이 밥을 주는 캣맘이 선행을 한다는 만족감에 사료를 주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렇게 측은지심이 들고 챙겨주고 싶으면 다 입양해서 집에 데려가 키워라.' '공동주택에서 같이 사는 다른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심지어 '이대로 방치하면 겨울철엔 주차장에 세워둔 따뜻한 자동차 보닛에 들어간다. 모르는 채로 시동을 걸고 벨트에 빨려 들어가면 피범벅이 된 고양이 잔해를 치우게 될 것'이란 무서운 얘기도 나왔다.
물론 '사료를 주는 것에 찬성이다.' '조금 배려하고 더불어 살자'는 취지의 글도 간간이 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주민 한 명이 '이렇게 작은 커뮤니티에 누군지 특정할 수 있게 지목해 가족 모두를 인신공격 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에 하나 요즘 자주 일어나는 캣맘 혐오 범죄가 일어난다면 사실을 적시했다 해도 어느 정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원글 내용에서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은 삭제되고 수정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사료를 챙겨주던 당사자인 것 같은 주민의 글이 올라왔다. 이제 사료 주는 것을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사료를 주는 행위가 아파트너 앱에서 논란이 됐던 것은 몰랐던 것 같았다. 여느 때처럼 고양이 사료를 챙길 때 누군가로부터 '몇 동 몇 호에 사느냐.' '더 이상 사료 주지 말라.'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아파트너 커뮤니티에 다 올릴 것이다.' 란 말을 듣고 당시엔 의연하게 대꾸했지만 많이 놀라서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밥자리가 있는 고양이들을 포획해 TNR(trap-neuter-return, 중성화 수술 후 방생) 하고 밥을 준지 오래지만 이젠 더 이상 사료를 챙기지 않을 것이라 했다.
뒤늦게 그 글을 본 나는 '그 대화가 오고 간 맥락을 다 알 순 없지만 대뜸 몇 동 몇 호 사느냐 묻고, 동의 없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한 것은 명백한 초상권 침해에 듣는 사람에 따라 협박 혹은 위해를 가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소지가 충분하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떠나 서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의견을 조율하자' 라고 댓글을 달았지만 결국 그 글은 논란이 커지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던지 얼마 후에 삭제되었다.
이 일련의 사건을 보고 있자니 심약한 캣맘이 결국 내가 졌소. 승자 없는 전쟁에 백기를 든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논쟁은 비단 우리 아파트 단지뿐만 아니라 포털에 거주지 베이스로 올라오는 이웃에서 화제가 되는 글만 봐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집안에 반려묘를 키우고 있는 나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중립적으로 보려고 해도 당연히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다. 고양이는 사랑인데. 내겐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의 길에 사는 동족에 대한 혐오가 속상하다. 근데 고양이가 싫고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의 글을 찬찬히 보면 그들의 고양이에 대한 혐오는 내가 배설물 범벅으로 오염된 비둘기를 끔찍하게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나한텐 귀엽고 친근한 동물이지만 내 맘과 같지 않은 다른 이들의 상황이 한편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아파트 단지에서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불쌍타 밥을 챙겨주고 있다면. 그 붉게 충혈된 눈과 부리. 뱀가죽 같은 다리와 발톱을 상상하면 몸서리가 친다. 물론 그렇다 해도 '비둘기 밥 주는 당신은 어디 사는 누구냐. 당장 그만두라. 사진을 찍겠다.'는 식이라면 서로 얼굴만 붉히고 갈등만 더 부추길 것이다.
어떻게 해야 이 논쟁이 원만하게 해결될지 나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는다. 길고양이는 야생동물이니 사료를 주지 말고 혼자 자생할 수 있게 내버려 뒀다가 도시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한 고양이들이 다시 쓰레기 봉지를 뜯게 된다면. 포획해서 TNR 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아 개체 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버린다면. 그땐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비둘기처럼 유해 동물은 아니니 사료를 챙기는 게 불법도 아니는라는 말에 아예 유해 동물로 지정하고 포획해 없애버리자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 아무리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눈에 보이는 족족 잡아 안락사 되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냥 내 눈앞이 아닌 어디선가 그 생명이 잘 살고 있길 바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비둘기 가족이 인간들이 빼앗아 들어앉은 거 같은 그들의 전 서식처, 우리 집 창문 바로 밖이 아닌 어딘가 쾌적하고 친자연 환경적인 곳에서 새 둥지를 틀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특정 그룹에 대한 혐오로 치닫지 않으면서 서로의 신념이 존중되고 인간으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생명들도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이곳이 너무 삭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