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재호 Feb 14. 2022

내가 ‘작가’라니 06.

내가 ‘진상 클라이언트’라니

헤아려보니 그동안 약 50개 브랜드의 공사를 도와드렸고, 절반 정도가 영업 중에 있었다.


그중에서 12곳의 살아남아있는 카페들을 찾아갔다.


각각의 브랜드 스토리를 프롤로그 형식으로 만들어 귀한 시간을 내주는 분들께 격식을 차렸고, 그와 동시에 카테고리와 어울리는 답변을 유도할만한 질문거리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만반의 준비가 돼서야 비로소 노트북과 녹음기를 들고 클라이언트를 찾아뵐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잘 준비된 질문보다 우문으로부터 돌아오는 답이 얘깃거리도 풍성했다.

그런 순간이 너무 기다려져 열두 번이 반복되어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시작되면 보통 3시간 가까이 대화가 이어졌다. 한 번은 인터뷰 도중 개인적인 전화가 와서 녹음기를 꺼두는걸 깜박하고 잠시 밖에서 용무를 본 적이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녹취를 푸는데, 내가 잠시 용무를 다녀온 사이 클라이언트가 나직이 내뱉는 탄식이 녹음돼 있었다.


'하, 당 떨어져···'


그 말을 듣기 전에는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 대화의 유익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그제야 3시간 가까이 말을 이어나가야 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의 고단함이 인지되었다.

이후에는 편의점에서 간단한 스낵과 ‘에비앙’을 준비했고, 1시간마다 휴식을 권유드렸다.

그토록 쉽지 않은 3시간 동안 12 카페의 업주 분들은 자신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내 주었다. 무척 감사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 이제 본격적인 인터뷰어(Interviewer)의 고단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조차도 달갑게 느껴졌다.



누가 그랬더라, 글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 힘으로 쓰는 거라고. 그 말대로 나는 괄약근에 힘을 빡(!) 준 채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갔고, 그러는 동안 두 분의 에디터는 준비된 원고를 다듬는 한편 사진작가와 편집 디자이너를 섭외했다.


생각해보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항상 하청을 받는 입장이었던 내가 외주를 주다니.


그 때문이었는지 첫 편집디자인 시안을 받았을 때 의견을 필역하는 방식이 무척 서툴렀다. 에디터 분들께서 중간 역할을 잘해주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 디자이너분은 아마도 학만 떼지 않고 손도 뗐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진상 클라이언트였다.

돌이켜보면 입장이 바뀌는 경험에서 배운 게 많았다. 이를테면 돈 값을 하고 있다는 것을 클라이언트에게 증명하기 위해 작위적이거나 혹은 소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많이 해왔구나 하는 생각도 처음 들었다.


사진 촬영을 맡아준 작가님은 이번 프로젝트가 스스로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했는데, 설령 그게 인사치레일지라도 너무 감사하게 들렸다.


두 분의 에디터들과는 최종 교정 과정에서 다소 마찰이 있었다. 문제는 나 자신에 있었다.

책을 써나갈수록 글을 보는 눈이 향상(?)되어간 게 문제였다. 많이 부족했던 초반의 글을 점차 더 좋은 문장으로 다듬고 싶은 욕심에 교정 과정에서 수정 분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자연히 에디터 분들께 업무량을 가중시켰고, 결정적으로 최종 교정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챕터 하나를 더 추가하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책의 출간도 한 달 이상 늦춰졌다.

그래도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임을 서로가 잘 알았기에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끝까지 소임을 다해주신 에디터님들께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작가’라니 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