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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현 Jun 17. 2022

미국의 온라인 장보기

이게... 온라인이 맞을까요...?

    미국에서 생활한 지 막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코로나에 걸렸다. 나를 시작으로, 같은 집에 사는 룸메들이 차례로 감염되어 우리는 근 3주가량을 격리해야 했다. 원래 일주일에 하루 장보는 날을 정해서 다 같이 장을 보고는 했는데, 모두 격리 중이라 장을 보러 갈 수 없어 온라인 주문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느낌의 마트인 Vons에서 주문을 했다. Vons 자체에서 제공하는 배달 서비스는 아니었고, 우버이츠로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처럼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온라인 장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가격은 똑같았고 다만 서비스 이용료가 10~15% 정도 추가로 부과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마켓컬리 헤비유저였던 나는, 당연히 전산화되어 있는 마트의 시스템을 생각했다. 장바구니에 필요한 식료품을 모두 담고 결제까지 마쳤는데, 별안간 우버이츠를 통해 메시지가 왔다. 하겐다즈 녹차맛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녹차맛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몇 가지 품목 또한 재고가 없다는 메시지가 왔다. 재고가 곧바로 주문 시스템에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을 하고 있던 중, 어떤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마트의 아이스크림 코너를 찍은 사진이었다.


    세상에, 우리가 주문을 하고 나서 마트 직원이 직접 우리의 장을 대신 봐주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럼 녹차맛을 딸기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Sounds Good!"이라는 메시지가 곧바로 도착했다. 이어서 아보카도가 있는 야채 코너의 사진, 닭고기 코너의 사진들을 받으면서 재고가 없는 상품의 대체품을 선정했다. 약 30분 정도 메시지를 주고받고 나서 마치 화상통화 같은 장보기 심부름이 끝났고, 그로부터 한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녹차맛이 없다 해서 딸기맛으로 주문한 하겐다즈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신선한 딸기가 되어 돌아왔다. 귀여운 실수까지 더해지니, 정말 동생한테 장보기 심부름을 시킨 것 같았다. 걸린 시간과 추가로 나간 서비스 이용료를 생각하면, 직접 장을 보러 가는 것이 훨씬 낫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도 코로나 격리가 끝난 이후로는 다시 이용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한국에서의 온라인 장보기 시스템과 비교해보자. 보통은 자사 앱을 이용한 주문과 결제, 배송 시스템이 있고, 요즘 배달의 민족 어플에서도 B마트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전자의 것은 이마트, 홈플러스, 마켓컬리 정도를 이용해봤는데 모두 주문을 하면 배송까지 1일 정도 소요되었다. 후자는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처럼, 내가 미국 Vons에서 온라인 주문을 했던 것처럼 주문 후 1시간 내외에 배송을 받아봤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서비스든 간에 온라인 시장을 위한 중앙 물류 센터가 있으며 모든 재고와 품목이 전산화되어 관리된다. 그래서 주문을 할 때, 재고가 없는 품목을 미리 알 수 있고 따라서 대체품을 소비자가 주문 시에 이미 결정하고 결제하는 식이다.


    미국도 역시 마트마다 있는 자사 앱을 이용해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배달을 지원하지 않아서 우버이츠를 이용했던 것인데, 자사 앱으로 주문할 경우 배송비가 상당히 비싸다. Vons와 비슷한 또 다른 마트로 Ralphs가 있는데, 앱을 이용해 주문을 하면 배송비로 최소 $9.9가 추가된다. Pick-up 시스템도 있는데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마트 직원이 미리 담아서 준비해두면,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우리나라의 최소 주문금액처럼 $35 이상의 물건을 구매할 때 이용 가능하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했던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은 최소 주문금액이 4만 원이면 다음날 새벽까지 무료로 상품을 배송받을 수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배송비가 3천 원을 넘어가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니 미국에서 마트 자사 앱으로 온라인 주문할 때 재고 관리가 전산화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데, 배송 지역이 아니라 이용해본 적이 없어 아쉽다. 아마 배송 지역이라 하더라도 배송비로 $9.9를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택배, 온라인 장보기 등으로 점차 소매점과 소비자 사이의 거래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소매점 거래가 대부분인 것 같다.


    미국에 와서 한 학회 활동에서 공교롭게도 UNFI에 대한 기업분석을 했다. Whole Food Market이라고, 유기농 신선식품에 방점을 둔 마트가 있는데, 이 마트로 다양한 기업의 식료품을 납품하는 회사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위에서 말한 Vons, Ralphs, Whole Food Market 모두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기업분석 당시에도 UNFI가 온라인 시장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음을 투자 포인트로 잡았었으나, 그 비중이 너무 미미하고 실제 사업의 성과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만연한 온라인 식료품 시장의 성장이 미국에서는 여전히 초기 단계인 것이다. UNFI의 매출도 대부분 소매점을 향한 납품이었어서, 매출 추정 단계에서 투자 매력도를 끓어 올리기 어려웠다. 납품할 소매점을 더 확장하거나 이미 납품 중인 소매점을 향해 물류량을 확대하는 것이 매출 증대의 방식인 것인데, 이는 확실한 계약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공격적인 매출 추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게 남은 마지막 궁금증. 미국에서는 왜 중앙물류 기반의 온라인 시스템이 확장되지 못했을까? 한국이 기준이 아니라면, 미국이 일반적인 거라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온라인 시장이 성장할 수 있던 것일까. 미국에서도 전산으로 재고 관리만 된다면 훨씬 더 나은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만약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애초에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서 온라인 시장이 성장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 먹을 건데 어떻게 보지도 않고 살 수 있어? 하는 생각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생각이 팽배했겠지만, 이는 몇 번의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물건을 받아보니, 내가 직접 장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그런 사실을 리뷰에서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마켓컬리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온라인 장보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우선은 전산화가 먼저. 그리고 이 넓은 미국 땅에서 배송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다음 소비자들의 우호적인 인식까지. 16세부터 운전하며 장을 보러 다니는 미국에서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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