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현 Jun 27. 2022

갑자기 Amy가 된 이유

미국 생활 4개월 만에 고집을 꺾었다.

    교환학생으로 1년간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한 후, 주변에서 영어 이름 쓸 거냐는 질문도 종종 받았다. 초등학교 원어민 선생님 시간에 쓴 영어 이름이 있기야 하지만, 굳이 영어 이름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국에 와서도 계속해서 한국 이름을 사용했다. 약간의 심술 혹은 고집이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 이름 안 쓰는데, 내가 미국 간다고 해서 영어 이름을 쓸 필요는 없지! 진짜 내 이름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교환 학교에 등록할 때도 여권에 있는 영문 이름을 사용했다. Mihyeon. 어쨌든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건 영어나 한글이나 같으니, 별 문제 될 것도 없다고 여겼다.


    출국 , 비대면으로 2주간 수업을 들어서 학교 수업시간이 내게는 미국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교수님은 출석을 부르며 모든 학생들에게 당신이 학생들의 이름을 맞게 발음했는지 확인하셨다. 워낙 국제학생들이 많아서 자연스러운 배려로 자리 잡은  같았다. 그렇게 이름을 부르면, 몇몇은 자신의 영어 이름이나 별명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교수님은 출석부 옆에  이름을 적고 다음 시간부터는 영어 이름으로 호명하셨다.  이름이 그렇게 어려운 발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Mihyeon' 계속해서 사용했다.


    문제는 발음이 아니라 낯섦이었다. 처음에 한번 발음을 알려주면 누구나  이름을 읽고 발음할 수는 있었다. 다만, 영어에서 [yeon] 소리는  사용되지 않고, 더군다나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과정에서 스펠링을 하나하나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에  이름이 미국인들에게 낯설고 어려운 이름이 되어버렸다. 안녕, 반가워. 이름이 뭐야? 사람을 만나 10 내로  이름을 이야기한다. 안녕, 나는 Mihyeon이야. 소리로만 인식하는 Mihyeon이라는 이름은, 상대가 곧바로 사과하도록 만든다. 미안해, 다시 말해줄래? 그러면 나는 조금  천천히, 음절별로 끊어서, Mi-Hyeon-이라 이야기하고, 서툰 발음으로 [-]? [-]? 반복하다 보면,  이름은 [미현]이지만, 그냥 적당히 [미혀], [미허], [미헌] 정도로 타협한다.


    그래도 다들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기 위해 노력해주니, 첫 학기가 끝날 동안은 계속해서 Mihyeon을 사용했다. 찻 학기에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학기의 대부분을 비대면 수업을 들어서 사람을 직접 만날 기회가 적었다. 그런데 3월 이후부터 점차 코로나가 안정되고 대면 수업을 시작하자, 이름의 중요성을 더욱 체감했다. 사람과 처음 만나고 10초 만에 난관에 봉착하면, 당연히 남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된다. 이름이 어렵더라도, 내가 영어를 편하게 사용하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잘 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왔으므로 그들의 대화에 원활히 끼어들기란 어려운 일이다.


    Mihyeon 발음을 알려주고, 몇 번 불러보더라도, 다음에 다시 만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를 Mihyeon이라 불러주던 친구들도 세 번째 만남까지는  이름을 여러 차례 물어봤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물어보면서  이름을 기억해주려는 친구들이 당연한  아니라는 , 시간이 조금 지나고 깨달았다. 두 번째 학기에 들었던 현대무용 시간에는  수업  교수님이  친구들과 작은 활동을 하도록 했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친구들과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어떤 인도계 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줬지만, 나는  친구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못했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여러 차례 물어보기도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고, 분명 알려줬을 때는 따라 발음할  있었지만 다음 시간에 만나면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역지사지의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나는  이름이 나에 대한 진입장벽을 잔뜩 높여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진즉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같이 사는 한국인 룸메   명은 애초에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고,  친구가 외국인 친구들을 소개해줄  나도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나는 Amy 되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이름은 Ann이었지만, 미국에 와보니  이름은 다소 올드한 느낌인  같아 기억하기 쉽고, 내게도 낯설지 않고,  이름의 [] 발음을 가진 Amy  이름으로 정했다. Amy 되고 나서는 사람을 처음 만날  이름을 여러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고, 한번 통성명을 하고  뒤에는 상대가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연락하기 더욱 쉬워졌다.


    우리 엄마 아빠가 지어준  이름을 두고, 굳이 영어 이름까지 사용하는  엄연한 사대주의야, .  나가는 나라 미국에 대한 심술과 오기로 4개월을 버티던 나는,  역시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기억하기 어렵고 발음하기 어렵고, 혹여 실수할까 걱정되어 다시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망설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Amy 되었다. 미국에 와서 미국인 친구들을 만들고 싶었으면서 그들과 처음 대화할 때부터 미션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웃겼다. Amy 소개하기 시작한 이후 Mihyeon이던 시절  이름을 불러주던 친구들에게 새삼 고마웠다.


    미국에서의 인연들은 아무리 길어봐야 1 미만의 시간을 함께할 뿐이고, 21년을 한국에서만 았기 때문에 미국인들과 세상 제일가는 절친이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를 소개하는 가장  단계부터 애를 먹는다면, 그마저의 인연도 내게 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Amy 된다고 해서, 미현이라는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 아닌데.


   모든 사람의 이름은 고유하고, 그래서 소중하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것처럼, 이름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름도 결국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고, 도구는 편리한  제일이다. 미국에 왔으면 응당 미국법을 따라야지! 이름도 미국식으로!라는 것보다 이곳에서 더 편리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관광으로 미국에 잠시 들르는 것이라면, 굳이 영어 이름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생활하고자 한다면, 영어 이름이 그 처음을 더 쉽게 열어줄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관광을 하더라도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영어 이름을 쓰고 가장 유용했던 건, 역시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의 온라인 장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