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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현 Oct 11. 2023

계속해서 탐험하고 싶은 나를 위해

Exploration, Exploitation

    이번 학기, 개발경제특수문제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Exploration과 Exploitation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해요." 한국어로는 각각 ‘탐험’과 ‘이용’.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당신께서는 교수로서 은퇴하지 않겠다 생각하셨다 한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정교수가 되고 나니 이전에 있던 탐험에 대한 열정과 욕구는 덜해지고, 검증된 방법을 이용하려는 ‘Exploitation’의 마음이 강해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수업을 마무리하시며, 아래와 같은 예로 Exploration과 Explotation을 설명하셨다.


여러분이 만약 전혀 새로운 동네로 이민을, 혹은 이사를 간다고 생각해 봅시다. 미국의 샌디에고에서 살게 되었다고요. (공교롭게도 교수님의 예시가 내가 작년 1년 동안 생활했던 샌디에고였다.) 여러분은 그 동네의 맛집을 찾고 싶은데, 알고 있는 정보가 없으니 일단 주변의 식당들에 한 번씩 가볼 거예요. 첫 번째, 두 번째, 매일매일 다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보는 거죠. 그렇게 한 열 번째쯤 식당까지 가본 뒤에는, 그중에서 특히 맛있었던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식당에 자주 가야겠다 다짐할 수 있겠죠.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는 열 번의 시도가 바로 Exploration, 그 뒤에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식당에만 가는 것을 Exploitation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이 과목 저 과목 공부도 해보고, 유학도 다녀와보고, 개발도상국에 직접 가서 연구를 해보고, 다양한 경험을 위해 노력했어요. 제 인생에서 충분히 ‘탐험’할 시간을 가졌던 겁니다. 그런데 교수가 되고 나서 여러분을 만나며 생활하는 지금은, 예전만큼 충분히 ‘탐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잘 들지 않습니다. 그 탐험의 과정에서 찾아낸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몇 가지의 선택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죠. 사회도 똑같습니다. 여러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방법을 골라 반복합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죠. 그러나, 검증된 방법을 반복하면 더 이상의 큰 성장과 발전은 없습니다. 성장을 지속하려면, Exploration과 Exploitation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선진국도, 이를테면 인구 감소와 같은 사회 구조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Exploration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젊은 나이에 충분히 Exploration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듣는 이 수업도, 새로운 과목을 배워보고 탐험하는 마음가짐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공부를 하고 있든 간에, 개인의 발전을 통해 이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이 시점에,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최대한 빨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적이 있다. 돈을 많이 벌면,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루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지 고민해보려 하면 계속해서 뿌연 안갯길을 마주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날 때에 “꿈이 뭐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어떤’ 직업을 이야기해 왔다. 의사였기도 했고, 방송 PD였기도 했으며 한때는 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며 나는 오히려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이제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특정한 직업이 떠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하나 해치워갔고, 그 안에서 나름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목표를 잃은 노력 앞에 한없이 무너졌던 때도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1년간 휴학을 했고, 미국 샌디에고로 교환을 갔다. 샌디에고에서의 1년은, 정말 오랜만에 내가 마주한 새로운 '도전'과 '탐험'이었다. 교수님의 어린 시절처럼, 새로운 도전과 탐험을 기꺼운 마음으로 선택했고, 그 안에서 다시 활력을 얻었다. 1년간의 학생 비자가 만료되고 어떻게든 미국에 더 있고 싶어서 인턴을 구해보고, 캐나다에 갔다가 다시 여행비자로 미국에 입국해서 만 14개월을 미국에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새로운 도전을 마주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탐험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학교로 돌아와서 정말 처음으로 하는 신촌에서의 대학 생활도 만족스럽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친구와 함께 신청했던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덜컥 당첨이 되며 한동안 고민이 깊어졌다. 다시 새롭게, 자유롭게, 무한한 Exploration의 기회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신청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취업이 걱정되고, 대학 졸업 후 경력 공백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일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덜컥 대학 졸업만 해버리면 어떡하지? 워홀이 끝나고 한국에 와서 취업을 준비하면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을까? 그때 가서야 취업 준비를 하면 한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는 한 걸까? 한국에 돌아온 뒤, 갑자기 4학년이 된 나는 나와 같은 다른 친구들처럼 언제나 취업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불편한 내색을 겨우 감추며 살뿐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을 수업 시간에 들었을 때, 마음에 켜켜이 쌓인 형체 없는 불안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결국 사회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어 튀지 않고 무난한 내 인생 모형을 설계했다. 10개의 식당 중에서 마음에 드는 맛집을 한 두 개 찾고 그 식당만 가는 단골손님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 식당의 음식은 영영 맛볼 기회조차 잃는다는 것. 교수님은 당신께서 지천명에 가까워질 때 스스로 인생의 자세가 탐험보다 이용에 가까워짐을 깨달으셨는데, 나는 이제 겨우 스물넷, 만으로 해도 스물셋 인 나이에 고작 몇 걸음 떼어 보지도 않은 채 평생 갈 맛집 한 군데만을 찾으려 하다니. 매일매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고, 그때마다 찾아오는 무력감에 잠시 굴복하면서도 결국 나는 ‘탐험’을 하고 싶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 교수님의 애정 어린 말씀이 유독 시리게 닿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삶에 애정을 갖고, 인생에서 더 나은 맛집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꺼이 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젊음’을 마음껏 탐험하며 개인의 성장을 멈추지 말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성장도 이끌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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