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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현 Mar 17. 2022

미국의 서머타임

눈 뜨고 한 시간을 도둑맞은 경험

3월 12일 새벽 두 시라는 시간은 영영 사라졌다.


내가 와있는 곳과 한국은 열일곱 시간의 시차가 있다. 3월 11일 자정을 넘겨 12일이 되었고, 새벽 한 시 반이 조금 넘어서 룸메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나는 엄마에게 택배로 부쳐달라 부탁할 물건이 하나 생각이 나서, 카톡을 남기고 막 침대에 누웠었다. 유튜브 영상을 한 두 개 정도 본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은 새벽 세 시가 넘었고, 룸메이트가 샤워를 마친 시간은 새벽 세시 십 분이었다.


"아, 자야겠다. 시간 너무 늦었네."

"몇 신데?"

"지금 세 시 넘었어. 대박이지?"

"뭐? 진짜로?"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눈을 뜨니 정오가 넘는 시간이었다.


"와, 오늘 미국 와서 제일 늦게 일어났네."

"어떻게 이렇게 자지?"


룸메이트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황급히 외출 준비를 했다. 그중 한 친구가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가 있는 친오빠의 SNS 계정에 올라온 영상을 보여줬다. 핸드폰 화면의 '1:59'라는 숫자가 잠시 뒤 '3:00'으로 바뀌는 영상이었다. 그제야 미국의 서머타임이 생각났다. 출국하기 전에 시차를 계산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그게 오늘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18세기 후반 미국의 B. 프랭클린이 제안했다는 서머타임은, 여름철에 표준시보다 한 시간 시계를 앞당겨 일을 더 일찍 시작하고 일찍 잠에 들어 햇빛을 활용하는 시간을 늘려 등화를 절약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잇따라 실시했지만 일상생활과 학술적 면에서 불편함이 있어 폐지한 국가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3월 둘째 주 일요일부터 11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서머타임을 채택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나의 3월 12일 새벽 두 시라는 시간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던 것이다.


찾아보니, 한국에서도 실시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88 올림픽을 개최하고 1989년도에 폐지되면서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정말 신기한 하루였다. 매번 일몰이 너무 이르고 밤에 가로등이 많지 않은 동네의 특성상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며 불평했는데, 하루 만에 일몰 시간이 저녁 일곱 시 즈음으로 미뤄졌다. 한국과의 시차도 열일곱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어제 새벽 룸메이트는 한 시간이 넘도록 샤워를 했던 게 아니었다. 사실 정오가 넘어서 눈을 뜬 것이 아니고, 열 한시 즈음, 그마저도 늦잠이지만 그래도 죄책감을 조금 덜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새벽 시간에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할 만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인간이 시계의 숫자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하루였다. 어떠한 일상의 루틴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흘러 잠을 자는 줄 알았는데, 사실 시계의 숫자에 맞춰 살고 있는 거였다. 한국에서 서머타임 정책에 대해 들었을 때는 사람들이 시간을 헷갈리는 거 아닐까, 한 시간 손해 보는 거 아닐까, 이런 불편한 제도가 있다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본 결과, 사람은 시계에 표시된 숫자를 시간으로 인식하고,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도 않으며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시계의 숫자뿐 아니라 이 사회의 어떤 시그널들이 우리를 또한 더욱 무신경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재밌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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