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한류'에서 관찰되는 현상들
2020년이 《기생충》이었다면 2021년은 《오징어 게임》이다.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017년 웰메이드 사극 《남한산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황동혁 감독은 이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게 올해 9월 중순이라는 사실마저 이젠 새삼스럽다. 한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종강 무렵엔 현실이 돼 있다. 드라마 바깥이 더 드라마틱한, K-월드의 진면목이다.
《오징어 게임》 이전엔 방탄소년단(BTS)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있었다. 이들의 히트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전부 다 한국에서 1등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황동혁 감독은 뛰어난 연출가였지만 박찬욱/봉준호와 함께 거론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BTS 역시 처음엔 수많은 남자 아이돌 그룹 중 하나로 보였을 뿐이었다. 싸이 역시 좋은 음악과 명민한 개그의 중간 어디쯤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 보였지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라가는 사건을 만들어낼 위인처럼 생각되진 않았다.
이들의 성공은 한류가 결코 예측 가능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한국에서 1등을 해야만 해외에서 1등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심지어 《오징어 게임》의 경우 공개 직후에는 한국 내에서 진부하다는 평가마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진부했던 것이 세계인의 눈에는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최적의 콘텐츠였다. 지금은 아무도 《오징어 게임》을 진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드롬의 주인공들이 모두 ‘한국 1등’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창작자들의 자율성을 더 많이 보장해줘야 할 이유가 된다. 어떤 것이 히트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은 일단 많이, 그리고 자유롭게 만들어내고 보는 것이다. 그 자유 안에 그들의 창의력과 열정이 깃들 수 있다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과는 앞으로도 계속 따라올 것이다.
뛰어나지만 1등은 아니었던 이들이 세계를 매혹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개방성’을 꼽을 수 있다. 싸이의 경우 유튜브에서 바이럴 되면서 인기가 탄력을 받았고, BTS 역시 마찬가지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라는 개방형 플랫폼 덕분에 세계인들에게 실시간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류 드라마의 원조격인 KBS 《겨울연가》의 경우도 개방성의 수혜를 입은 사례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누렸지만 1등은 아니었던 이 드라마는,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결과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드라마가 미국 주류문화로 진입하기 시작한 지금,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선례를 만들어온 여러 성공사례들을 계속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창작자들의 자율성과 플랫폼의 개방성이다.
최근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넷플릭스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은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 아울러 PPL로 범벅이 된 장면들을 상상하며 작성한 '오징어 게임이 지상파에서 방영됐을 때 일어날 일들'이라는 게시물이 큰 호응을 얻은 이유가 무엇일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이제 더 이상 ‘방송국 어른들’의 고리타분한 사정까지 고려해가며 콘텐츠를 봐줄 생각이 없어보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선을 넘나들어가며 만들어진 모든 콘텐츠야말로 'K'의 새로운 동력이다.
2022년은 넷플릭스 이외에도 애플tv+, 디즈니 플러스, HBO Max에 국내 OTT들까지 가세해 다양한 플랫폼들이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는 원년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오징어 게임》이 《마이 네임》과 《지옥》에 대한 주목도를 올려놓은 것처럼, 많은 드라마들이 'K-드라마'라는 것만으로도 주목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율성과 개방성이 구축한 이 한류의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원동력이 유지되는 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20XX년은 종영이 없는 드라마처럼 이어질 것이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과제로 제출한 글을 브런치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