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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Dec 29. 2022

누수

                                                                        

“사장님! 천정에서 비가 떨어져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한밤중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애원하듯 가늘었지만 애써 화를 누르는 듯 냉냉함이 서려 있었다. 처음엔 술에 취한 누군가가 장난 전화를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조금 짜증스러웠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전화기를 밀쳐놓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를 찾는 소리가 앵앵거리는 모기처럼 집요하게 잠속으로 따라왔다. 잠에 빠져들면서도 왠지 희미해져 가는 몇 마디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비가 떨어져요. 잠을 잘 수 없어요.’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누군가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다 덜컥 우리 펜션에 손님이 묵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내 몸은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나를 비켜 가지 않았듯 전화 속의 소리는 분명한 현실이었고 정말로 지붕에서 비가 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큰일 났구나!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는 한동안 몸도 마음도 굳어진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내 앞으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가 자욱했고 아무리 살펴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창밖의 비는 물을 퍼붓듯 쏟아지고 방바닥에는 이미 어지럽게 수건과 빗물받이 그릇들이 깔려있었다. 방안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그릇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들로 요란했다. 소리의 높낮이에 일정한 리듬이 생겨나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펜션에 묵고 있는 십여 명의 손님들은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에서 서성거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서 어이없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초저녁 시간만 해도 그들은 물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옆에서 자연의 깨끗함에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어요 ?”하며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은 그들의 그런 소중한 시간을 완전히 지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따가운 시선과 무거운 죄책감에 서서히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란 존재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그릇에 가득한 빗물을 비울 큰 그릇을 준비하고 창고에서 비닐을 찾고 사다리를 받치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지붕으로 올라가 비닐을 덮고 벽돌을 옮겨와 비닐을 눌렀다. 어두움 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뛰어다닌 탓에 온 몸이 땀과 비에 흠뻑 젖었지만 그 정도로 손님의 화를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게는 더 큰 고통과 시련이 필요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 막막한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르르 흘러내리던 빗물이 점차 멎고 투숙하던 사람들의 표정도 조금 펴지긴 했지만 나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건은 한 달 전에도 벌어졌다. 정확히는 아주 오래전부터 비가 새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살았던 주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비가 새는 곳을 찾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가 이곳저곳을 더듬거리며 의심이 가는 곳은 페인트와 실리콘으로 막았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완벽히 수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비가 그친 날 아침, 방문 앞에 서면 몹시 긴장되었고 행여 바닥에 물이 고여있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벽기둥을 만져 보았는데 놀랍게도 축축해져 있었다. 얼마나 비가 샌 것인지 기둥 전체가 젖어있었다. 아아!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수고한 보람도 없이 여전히 비는 새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 현기증이 일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왜 하느님은 유독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인지........’ 한 점 구름 없는 푸른 하늘이 야속해 보였다.      

천장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비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로 인해 삶의 의욕도 점차 떨어져 가고 내겐 전에 없던 트라우마가 생겼다. 어느 날 화장실에 걸린 시계 소리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들렸고 폭포수 같은 비가 누운 내 몸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곤 했다. 


지붕에 올라가면 내 불안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새는 정확한 지점을 찾지 못해 물이 스며들만한 곳마다 붙어있는 접착제에는 답답한 내 마음도 함께 눌러 붙어있었다. 덕지덕지 발랐지만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들은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괴롭혔다. 몇 해 전에 칠해 놓은 페인트에서 지난 장마철의 실리콘에 이르기까지 불분명했던 처방의 흔적들이 시간과 방법을 바꾸어가며 바래져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불분명한 행적이기도 했고 끊임없이 끌려다니며 몸부림쳤던 아픈 기억이기도 했다. 

     

뒤늦게 지붕 전체를 교체하기로 결정하고 나서야 비가 새는 곳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기술자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단번에 누수 지점을 찾아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는 아주 작은 틈이었다. 그것을 찾기 위해 발버둥쳤던 많은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작지만 중요한 것, 가까이 있지만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찾기 위해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 것일까 ?

    

새롭게 단장한 지붕에 앉아보니 푸른 하늘 아래로 하얀 구름들이 흘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름은 바람의 세기에 따라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가 빠르게 흘러가기도 했다. 흘러가는 것은 온전히 그의 뜻이 아니라 바람의 뜻인 듯 보였지만 무엇보다 바람이 밀어주는 힘이 있어 쉽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종종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더 단단하게 해주었다. 지붕이 새것으로 바뀌니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체증이 사라지고 비가 오면 안절부절하던 마음도 차차 진정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비가 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장을 확인해 본다. 그때마다 나의 걱정을 달래주듯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그렇지만 방문을 열 때마다 천장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습관은 당분간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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