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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Dec 01. 2024

기술자 곤조라니, 나도 낯설다.





글을 하나씩 쓸 때마다 몇 분에게 보냈다. 전기를 전공한 분에게도 보내고, 전기를 스위치 켜고 콘센트 꼽는 것만 아는 사람에게도 보냈다. 지난번에 어떤 글에서 내가 화성으로 이사를 한 것 같다고 했더니, 아니란다. 금성같다고 했다. 화성보다 금성이 더 낯설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는 정말로 금성에 갔다 왔다. ㈜금성이라고, 수직으로 옹벽을 쌓는 대신 쌓아 올리는 블록을 만드는 공장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보일러실에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고쳐달라고 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여태 그 모양이란다. 

  “가까운데 다른 전기업자가 있으면 맡겨서 공사해 보세요. 우리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는 GS밖에 몰라요, 저 것도 GS에서 공사한 거예요. 그러니 GS에서 고쳐 주세요.”

  “그래요? 지난번에 공사부에 전달을 했는데, 바빠서 그런지 통 오지를 못하네요. 알았어요. 내 다시 연락해 볼게요.”

공장장이 나와 헤어지려 하다가 다시 다가와 저기 한군데 더 보잔다.

  “여기 야간 조명등을 달았잖아요.”

아까 내가 지나가면서 스위치 박스가 열려있던 걸 닫고 지나간 그 자리다. 3층 건물 양 쪽 끝 꼭대기에 조명등을 달고 그 스위치를 1층 바닥에서 끄고 켤 수 있도록 손 높이에 달았다.

  “비가 오면 이 스위치 박스에 물이 고여요. 지난번에서 스위치를 켜려고 여니까 물이 ‘확’ 쏟아지더라고요.”
   “그러게 생겼네요. 스위치박스로 전선관이 연결되기 전에 유트랩(U trap)을 한번 돌려서 물이 들어가지 않게 했어야 했네요. 그리고 전등이면 스위치를 달아야지 왜 누전차단기를 달았데요?”

  “모르겠어요. 그냥 그걸 올리면 된다고 하던데요?”

기왕 공사를 한 것은 하는 수 없다. 나는 다만 스위치박스에 구멍을 하나 뚫어 주었다. 물이 들어가더라도 밑으로 빠지게 해 주었다. 


  처음에 보일러실에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을 때, 여기에 스위치로 달아준 것과 똑같은 누전차단기를 갈라고 한 적이 있다.

  “점검을 해 보니까, 이 차단기가 고장이네요. 이것과 똑같은 것을 사다가 끼우면 돼요. 작업을 할 때는 이 판넬에 주차단기를 내리고 작업하세요. 여기 선을 끼우지 않고 표시를 해 둘 테니까 고대로 끼면 돼요. 아셨지요?” 

여기는 한 달에 한번을 오니까, 그 다음 달에 왔을 때, 또 누전차단기는 똑같은 것으로 갈아 끼웠는데도 보일러실에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었다. 나는 공사부에 전달을 했고, 사장에게도 문자를 넣었다. 그것이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모터를 납품하러 온 기사에게 전등선 좀 봐 달라고 했단다. 자기도 잘 모르니까 전기시설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그냥 갔단다. 이제는 내가 손 봐야할 것 같다. 회사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보니 그런 건 안전관리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눈치다.


  내겐 또 조부장이 있다. 조부장이 근처를 지나간다기에 불렀다. 보통은 남의 관리업체에는 좀처럼 가지 않는다. 자기 일도 바쁘고, 남의 일에 손을 대기도 그렇다. 손을 댔다가는 그 스위치가 달려 있는 한 만진 사람의 책임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공사 했는데, 그런 사고가 났네.”

이런 식이다. 그런데 나에겐 조부장이 있다. 조부장은 나를 사명감을 가지고 도와주려고 한다. 이제 전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30년을 전기를 한 사람으로서,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 전기인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한단다. 

  “전기를 모르는 사람이 전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면 가르쳐주지 않을 수가 있어요. 위험하니까요. 하지만 김부장님은 자격증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하시잖아요. 당연히 가르쳐 드려야지요. 알면서 가르쳐 드리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에요.”

  “정말이에요? 고마워요. 금성에 좀 같이 가 주세요.” 

그래서 금성에 같이 갔다. 화성보다도 더 낯설다. 원칙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 전등이 낯설다.   

  스위치가 여기고, 전등이 여기 저기 저-기 세 개가 달려 있고, 전기가 나가는 판넬을 열어 보여 주었다. 전등 3개에 스위치가 2개다. 그리고는 조부장이 하는 양을 손전등을 비춰주면서 지켜보았다. 우선 ELB(Earth Leakage Breaker) 2차 단자를 잰다. 220V다. 

  “여기서 나가서, 저기 박스에서 분기를 해서, 전등이 3개가 달렸으니, 스위치 하나는 전등하나고, 아래 스위치는 전등이 두 개 달렸네. 그런데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전등이 안 들어  온다 이거지요?”

  “예.”

  “그럼, 저 박스 안에 분기회로는 까보지 않아도 되겠네.”

하면서 스위치로 갔다. 스위치를 뜯어 재끼니까 선에 3개가 나온다. 하나는 전기가 들어 간 선이고, 두 개는 한 회로에 하나씩 나가서 전등에 닿은 선이다. 스위치간 연결선은 속으로 연결되었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을 찍어 놓고 스위치에서 선을 분리했다. 각각 선을 전압을 재 본다.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래요.”

  “이상한데, 세 선이 모두 전압이 잡혀요.”

하더니, 한선씩 벽으로 처진 샌드위치판넬에 박은 나사머리에 접지를 삼고 전압을 재 본다. 모두 200V가 나온다. 그러면 세 선은 모두 380V라는 이야기가 된다. 

  “아니, 한 선은 전기가 오는 선이고, 두 선은 전기를 보내는 선인데, 전기가 오는 선은 380V가 잡힌다고 해도, 스위치를 분리했으면 가는 두 선은 0V가 되어야지, 왜 모두 380V가 잡히느냐고.... 세상에 이런 게 어디 있어요.”

내가 소리를 쳤다. 조부장은 중얼거리면서 이번에는 사다리를 놓고 전등에 연결되기 위해서 나온 선을 깐다.

  “어? 여기 두 선에는 전압이 안 잡혀요?”

  “여기 스위치에서 선을 연결했는데도 전압이 안 잡혀요?”

  “이상한데....”

사다리에서 내려 온 조부장이 깊은 생각에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이 전등회로를 그려보는 모양이다. 거기다 대고 내가 또 한마디 했다.

  “조부장님, 톨스토이가 어떤 소설 첫머리에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요?”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가정은 서로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어요. 그걸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전등이 들어오는 회로는 모두 비슷하지만, 불통하는 회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차라리 전선을 다시 까는 것이 쉽지, 틀린 회로를 바로잡기가 어디 쉽습니까?”

  “맞아요. 하다하다 안 되면 다시 깔아야 해요. 무식하지만 차라리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해요.”


  조부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이다. 난 그 사이 판넬 안을 뒤적였다. 전선관 안으로 선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보고 싶었다. 조부장은 나를 제재한다.

  “부장님, 판넬 안에 선을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전기 와요.”
   “알았어요. 잠깐만요.”

  “만지지 말래두요. 그냥 보기만 해요. 선을 뒤적이지는 말고요.”

  “알았어요.... 앗, 찾았어요. 이거예요.”

좀 떨어져서 생각하며 나를 제재하느라고 양 갈래 길을 걷던 조부장이 찾았다는 소리에 성큼 다가선다. 

  “여기, 여기를 보세요. 내가 갈으라고 했던 ELB에 한 단자에 두 개의 선이 연결이 되었는데, 같은 단자의 두 선이 한 전선관으로 들어갔어요. 중성선에 연결된 두 선이 또 다른 전선관으로 들어갔고요.”

  “어디요?”

  “여기, 핫선에 적색선과 흰선이 함께 물려 있는데, 이것이 고대로 전등선 전선관으로 들어갔어요. 중성선 단자에도 적색선과 흰선이 두 개 물려 있는데, 다른 전선관으로 들어갔어요. 본래는 핫선에 적색선 두 개가 물려야 하고 중성선에 흰색선 두 개가 물려야 해요. 그런데 한 선씩 바꿔서 물렸어요.”

  “그러네요. 바꿔 보세요.”

내가 ELB를 내리고 적색은 모두 핫선단자에 물리고, 흰선은 모두 중성선단자에 물렸다. 스위치를 켜 보니 가운데 전등하나가 켜지고, 다른 스위치를 누르니 양쪽 가에 전등 두 개가 켜진다. 


  둘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어이없는 웃음이다. 찾고 나면 이렇게 쉬운걸, 찾을 때까지는 정말로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다. 같은 ELB에서, 2센치 떨어진 단자 하나를 잘못 끼웠더니, 보일러실 전체가 암흑천지다. 간단하게 선 하나씩 바꿔 끼웠더니 대명천지, 서너 달 동안 신경전을 벌이던 일이 시원하게 해결이 되었다. 공장장을 찾아서 전등을 고쳤노라고, 지난번에 저쪽 건물 스위치박스에 구멍도 뚫어 놓았노라고 하고, 시멘트 가루가 구름처럼 퍼진 공장을 벗어났다.   


  공장을 걸어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사단의 자초지종이 파악이 된다. 

  “조부장님,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저 일이 누전차단기가 고장이 나서 교체하라고 내가 선을 연결하지 않고 갔을 때부터 비롯됐네요. 내가 그때 공장장에게 선을 구분해 주면서 고대로 끼우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마도 공장장이 끼웠든지, 다른 사람이 끼웠든지, 생각 없이 끼운 거야. 그러니까 선이 바뀌었지.”

  “그러게요. 참, 간단한 선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난리를 치다니, 참 한심합니다. 이걸 안 된다고 공사부장에게 이야기 했다가, 정말로 공사부장이 왔어 봐요. 웃어요, 웃어. 체면이 저기 굴러다니는 참나무 잎사귀처럼 곤두박질치는 겁니다.”


  차를 타기 전에 조부장이 또 담배를 한 대 피운다. 나는 바람을 등져서 연기가 내게 오지 않고 조부장 뒤로 날아가도록 섰다. 

  “부장님, 오늘 일을 부장님이 해결하셨다고 해도, 여기 수용가에서는 부장님을 한 수 아래로 볼 거예요.”

  “그래요?”

  “그럼요. 부장님이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날 데려왔잖아요. 부장님 체면이 깎였어요.”

  “그러네. 저 사람들이 볼 때는 난 반으로 접힌 거네.”


  조부장은 다시 한 모금을 머금었다가 내 뿜더니 한마디 더 한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누굴 데리고 올 생각을 하지 마세요. 차라리 하루 종일 헤매다가도 못하면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세요. 이틀에 안 되면 사흘을 와요. 그만큼 어려운 일인 줄을 저 사람들은 다 알아요. 그러니까 해결하지 못하고 부장님께 부탁을 했겠지요.”

  “아, 그러네. 하루에 다 못한다고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네.”

  “그러다가 정 안 되잖아요? 그러면 아까 말한 대로 선을 다시 깔아버려요.”

  “하하, 그래요?”

  “사실 쉽기는 선을 다시 까는 것이 가장 쉬워요. 내가 계산한 대로 하면 되잖아요.”


  조부장은 재를 툭툭 떨어 날리더니 한마디 더 한다.

  “저는 수용가에 가면 거기 전기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고 일해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럴 테지요.”

  “가끔은 전기를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드라이버를 주면서 가서 ‘직접 하라’고 해요. 직접 하지 날 왜 불러요. 여기도 보일러실에 부장님 혼자 가셨으면, 부장님이 제일 잘 아는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하면 ‘하라’고 하고는 나와 버리세요. 기술자가 왔으면 지켜 보기만하지 왜 끼어들어요. 왜 이래라저래라 해요.”

  “그래요?”

  “그걸 어떤 사람은 기술자라고 곤조 부린다고 할지 몰라요. 하지만 기술자는 자기의 실력으로 일을 해결하고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조부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전기 30년 기술자의 일하는 자세란다. 


  그러더니 갑자기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부장님, 부장님은 절 부르세요. 다니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뭐든지 물어 보세요. 단지 저는 부장님이 어디를 가든지 전기기술자로서 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쫄지 마세요. 저건 다 하나 둘 경험이 쌓이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금성 공장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가 ‘윙’하고 솔바람 소리를 낸다. 조부장의 담배연기가 춤을 추듯 사라진다. 내가 살던 그 별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기술자 곤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곤조를 부려야할지도 모른다는 금성에 살게 되었다. 여기가 ㈜금성이다.  

  “점심 먹으러 갑시다.”

각자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뱃심도 빠졌는지 허기가 한꺼번에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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