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은 못 생겼다.
뭉툭하고 퉁퉁하고 커다랗다.
우리 아빠와 가장 많이 닮은 신체 부위다.
나의 외모는 전체적으로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가졌는데 유독 손은 운동 좋아하는 중년의 아저씨 분위기의 손과 닮았다.
6학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매달 저축을 하던 통장이 있었는데 6학년 졸업을 하면서 해지를 하기위해 반 아이들은 번호 순서대로 앞에 나가 엄지로 지장을 찍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키가 큰 순서대로 1번부터 남자아이들 먼저, 여자아이들 키큰 순서대로 지정되었다. 나는 키가 제일 컸고 작은 남자아이들 다음에 내 번호 순서가 돌아왔다. 나를 부르시는 담임선생님 앞으로 갔다. 내 엄지를 잡고 인주를 찍어 내 이름 옆에 내 지장을 찍으시며 피식 웃으시는 담임선생님.
“이야. 선애는 엄지발가락같이 큰 엄지손가락을 가졌구나!
(내 엄지를 번쩍 들어 올리시며)
얘들아 선애 엄지봐봐라. 와 진짜 크다! 지장 찍는 칸이 너무 작구나.”
“와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얼굴이 시뻘개졌고 그 뒤로 나는 교실에서 ‘엄지발가락’이 되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놀림 받는 기분이란.
그 기억은 3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는데 그 뒤로 나는 한동안 그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게 되었다. 내 손은 나의 치부가 되었다.
중 3 때의 일이다 짝사랑하던 교회 오빠가 있었는데 그 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손톱에 메니큐어를 바르고 교회를 갔다. 잘 보이고 싶었을까? 예배 후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가게 되었는데 내 손을 보고 한마디 했다.
“너 손에 춘장 발랐냐. 크하하.”
‘춘장? 자장에 들어가는 춘장?’
메니큐어 색이 검정색이었던게 문제였다.
안 어울린다고 하면 될 것을 춘장이라고 놀리듯이 말하는 그 오빠에게서 정내미가 뚝 떨어졌다. 손에 대한 콤플렉스가 또 하나 보태지던 순간이었다. 춘장이라니. 자장면을 한동안 먹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17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는 신비로운 배우자님은 나의 자존감을 낮은 바닥에서부터 ‘하늘을 찌를 듯’하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여성스러운 손을 볼 때면 확실히 부러운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데 그때마다 '예쁘니까 손은 조금 통통해도 괜찮아'라고 애써 스스로 위무한다.
얼마 전 복지관에서 근무 했을 때 노인일자리 전담 담당자로 일을 했다.
어르신들은 한달에 열 번, 하루에 3시간 근무를 하신다.
아침에 근무 전에 담당자에게 일지에 사인을 받아서 가시는데 164명의 인원 중 80%는 내게 사인을 받았다.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사인받을 때 나는 유난히도 그들의 손에 눈길이 갔다. 두툼한 손가락, 얇아진 피부와 구부러진 마디마디를 가졌다. 그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정이 들었는지 그분들의 눈빛이 좋았다. 환경 정비로 동네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용돈도 받는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일자리가 축소되어 자신의 생계비를 위협당할까 염려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그 분들의 마음을 생각해 [나이든 손]이라는 시를 지었다. 나이든 손에서 어르신들의 인생을 볼 수 있었다. 자녀를 잘 키웠던 손. 가족을 위해 일했던 손. 부모를 위해 섬겨 드렸던 손. 또 자신을 위해 운동 해왔던 손. 나의 손도 인생을 살아가며 다양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겠지. 그러면서 차차 피부도 얇아질 것이고 마디도 굵어질 것이고 지금 보다 더 못생겨지겠지.
지금 보니 건강한 내 손이 어여쁘다. 어딘가 아프지도 않고 내 생각을 잘 적어 내려가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도 열일 할 나의 손을 더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이 예뻐해 줘야겠다.
노인 일자리 선발된
전국의 수많은 어르신들
일지 들고 사인받고
일터 향해 걸어간다
얇은 피부 덮인 굵은 손마디는
구부러진 나뭇가지처럼
깜깜하고 건조하다
모자 쓴 회색 머리칼
마스크 덮인 어두운 얼굴들
순서를 기다리는 눈빛들
하루 3시간 한 달 열 번
환경 정비로 온 동네
말개지는 아침
보령시는 87억 투입
창원시는 442억 투입
어르신 통장에는 27만 원
태평양의 거리만큼
대서양의 거리만큼
시간이 흐르면
AI가 나이 든 손을 대신할까
나이 든 손은
더 많은
더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