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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May 28. 2022

라임크라임 이모저모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까 2000년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힙합을 좋아했습니다. 둘은 같이 음악도 듣고 언제부턴가는 라임크라임이라는 이름으로 가사도 쓰고 조잡한 컴퓨터용 핀마이크로 녹음을 해서 당시 아마추어 뮤지션 사이트인 millim.com에 곡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힙합은 저희가 세계를 접했던 첫 번째 사건입니다. 그 당시 저희가 다닌 중학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한쪽은 가까운 아파트촌에 사는 아이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그 다음 블록인 다세대촌 아이들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아파트촌에 살았고, 싸움을 가장 잘하는 일명 통이라 불리는 친구는 다세대촌에서 나왔습니다.

 이 영화는 힙합을 좋아하는 두 소년 송주와 주연이 서로 친구가 되고 서로 다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팀이 해체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해체가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둘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어린 시절 잠깐이나마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을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인터뷰나 GV에서 많이 나왔던 질문에 대한 답들,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욱이와 저의 목소리를 취합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① Memory


- <라임크라임>은 두 감독이 나고 자란 둔촌동과, 힙합을 비롯한 언더 뮤지션들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홍대일대를 중심으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두 감독의 모교인 동북중학교, 그들이 살던 동네 주공아파트, 실제 랩 연습을 하고 삥을 뜯겼던 장소들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다. 이 영화는 우리의 이야기와 그 시절 느꼈던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 ‘라임크라임’과 ‘삶과 꿈’이라는 곡은 당시 우리가 만든 노래가 실제 존재한다. 학교축제에서 그 곡으로 공연을 한 적도 있고, 배우들에겐 녹음본들을 참고삼아 들려주며 새로운 버전의 노래를 만들었다.

책상 아래 나란히 앉아 녹음을 하던 기억, 옷걸이에 엄마가 신던 스타킹을 씌워서 팝필터로 쓰던 것도 소품으로 반영되었다.


- 주연이 송주에게 자신이 직접 굽고 자켓을 만든 추천곡 CD를 건네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내가 재욱이에게 그런 선물을 준 적이 있다. 어설프지만 그림판으로 디자인을 하고 트랙배치까지 고심했던 기억이 난다. 재욱이도 정성스러운 선물에 감동했었다. 이 CD는 아직까지 간직되어 인서트컷까지 찍었지만 극의 흐름상 편집이 되어 아쉽다.


- MNG도 보성고에 실재했던 동아리이고, DJ ADOL이었던 승환은 보성고 진학 후에 MNG 멤버가 되었다.


- <8마일>,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 등 외국의 힙합영화들을 참고삼아 보기도 했지만, 갱이나 총 한 자루 등장하지 않는 한국의 중학생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상희 패거리의 존재나 ‘수프림’ 티 강매와 같은 맥락들은 미국 힙합영화에 흔히 보이는 마약 거래 등의 귀여운 치환이긴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실제 겪었던 일들을 기반으로 했다(우리때는 ‘버버리’ 옷을 스탁제품이라며 파는 친구들이 있었다). 레퍼런스를 찾기보다는 한국지형에 맞는 힙합영화의 좋은 선례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했다.


- 송주와 주연이 영화에서 점점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로 몸을 치거나 접촉하게 했다. 다만 그것이 퀴어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 그 무렵은 아직 어른이 되기 전, 서로간의 스스럼이 없고 신체적 거리가 가까운 시기였던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피아를 형성해가며 그런 미묘한 시기를 지나왔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 중학생 친구들의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동네 청소년센터에 찾아가 아이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코치를 받았다. 모교 수업에도 참관하고 학생들과 어울리며 가깝게 지낸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또 예전에 썼던 글이나 가사, 당시 찍은 사진들을 꺼내보면서 그때의 정서를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 어렸을 때, 소풍 때였나. 엄마가 쓰라고 얼마를 줬냐고 친구가 물었었다.

“너는?” 이라고 묻는 내 질문에 친구가 말한 액수는 우리집의 액수보다 훨씬 적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나도.” 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눈빛의 흔들림을 보았으리라,

“거짓말..” 이라고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친구의 눈가에 눈물같은 게 맺혔었던것도 같고.

그때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그때 친구의 표정을 떠올리며 송주의 표정을 그렸다.

친구의 친절에, 돈을 훔칠 수밖에 없던..

다름을 알고, 극복하고. 때론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는 자랐다.

친구들이 그립다.



② Film & Music


- 곡 작업은 작곡가와 감독, 배우가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율했다. 랩 가사는 배우가 직접 썼고, 진실성을 담기 위해 본인의 생각과 극중 캐릭터로서의 아이덴티티가 만나는 접점을 찾으려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가사는 선결 조건이 많아 까다로운 컨펌을 여러번 거쳤다.

1. 듣기 좋은 랩으로 기능함과 동시에 2. 스토리에 이바지해야 했고, 3. 캐릭터의 언어에 부합해야 했다.

곡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비트와 가사 모두 우리가 힙합을 접했던 당시의 올드스쿨 느낌을 살리면서도 지금 듣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세련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 김종연

우리와 중학교때부터 제일 친했던 또 한명의 친구가 있다.

김종연이라는 친군데, 학창시절 재욱이와 내가 ‘삶과 꿈’ 공연을 할 때 보컬로 참여를 한 적도 있다.

지금도 음악을 하고 있고, <라임크라임> 곡들의 상당수는 음악감독 김종연이 작곡했다.

김종연은 이전에도 우리 둘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었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준 음악이 마음에 들고 항상 의지한다.


- 밀림에 대하여

<라임크라임>은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종의 평행세계이기도 하다.

이센스를 비롯한 현역의 래퍼들이 영화상에 똑같이 존재하지만,

지금은 사라진 ‘밀림’이라는 사이트도 여전히 존재한다.

밀림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곡을 올리던 당시 인디의 등용문같던 사이트이다.

우리도 학창시절에 이곳에 곡을 올렸었고 즐거웠다.

이 사이트가 아직도 존재한다면? 이라는 것도 이 영화의 출발점.

사이트의 외관은 지금 인터넷 폼에 맞추어 바꾸고 직접 제작했다.

음악도, 영화도 그 시대의 정서와 지금의 트렌드를 자연스럽게 섞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밀림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면 모르는대로 상관없고,

알면 설마 디자인까지 바꿔서 현대에 부활시킨 20년 전의 사이트를 가지고 고증을 문제 삼진 않을 거라고 봤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심지어 예고편만 보고도) 옳은 추론을 해주었다.

개봉 전에 힙합엘이에 올라왔던 MarshallMathers님의 글 한토막을 살펴보자.

“예고편에서 주인공의 우상이 이센스라는걸 고려하면, 두분의 경험을 지금 시대에 이식해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 힙합 성지 이름을 '밀림'이라고 지었던데, 이건 감독분들의 연령대를 고려했을때 밀림에서 활동한 경험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내 마음을 그대로 짚어주는 듯한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화 본편을 보고도 시사회때 MC메타님이 추천영상에서 해주신 “시대를 불명확하게 잡은 부분이라던가 외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준 것도 좋았던 부분인 거 같아요.” 말씀을 듣고 다시 한번 안도했지만, 씬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식의 애정을 가지고 어떠한 틀 속에서의 해석을 하는 경우도 드물게는 눈에 띄었다.

“내가 저땔 살았는데 스마트폰이 말이 돼?!” 식으로 일단 밀림이 눈에 걸리고 나서부턴 제어할 겨를없이 온갖 것들이 시비거리가 되는 모습을 봤다. 모두가 좋을수 없단 것도 알고 그 화를 달래드릴수도 없지만 바로 봐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단 사실에 오히려 새삼 든든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 이야기를 음악으로 푸는 것이 재밌었다. 랩으로 서로 원하는 것을 얘기하고, 싸우고, 행복을 표현하는 것. 힙합음악이 나오는 뮤지컬 영화를 찍은 느낌도 난다. 어떤 때는 리얼한 형식을 취하고(프리스타일, 랩 연습) 어떤 때는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빌리고(To E SENS) 경계를 왔다갔다하며 서사를 진행시키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 한국에 제대로 된 힙합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리는 유년시절, 힙합을 굉장히 사랑했다. 동시에 우리들의 이야기를 접목하면 성장영화로서도 그림이 그려졌다.

대한민국 최초 본격 힙합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라임크라임>은 그밖에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진 영화다. 방금 언급한 힙합 혹은 음악 X 청춘 혹은 성장영화의 요소,

우리가 랩을 하던 시절의 정서와 현재의 씬, 즉 과거와 현재.

자전적인 이야기와 영화적 상상력, 논픽션과 픽션.

(계급에 대한) 사유와 (오락적) 재미, 더 나아가서 독립영화적인 요소와 상업영화적인 요소...

이러한 병렬적이거나 상반되는 여러 요소들을 겉핥기가 아니라 제대로 다루고, 우리식대로 잘 융합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였다.

이런 요소들을 인지하는 재미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것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보더라도 한편의 재미있는 영화로 완결성을 갖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연출하며 이루고자 했던 또 다른 목표였다.



③ Rapper & Actor


- 오디션의 경우, 공연하는 장면도 있고 실제 랩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배우들의 랩 실력이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투 트랙으로 사람들을 찾았다. 랩을 잘하는 배우, 혹은 연기를 잘하는 래퍼.


- 이민우

송주 역의 이민우 배우를 처음 접한 건 쇼미더머니 지원영상을 통해서였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였고, 연기경험은 전무했다.

실제로 만나본 이민우 배우는 이미지와 랩스타일이 송주와 너무 어울리고(Jeff Myler 시절. 현재 Kozue in Seoul은 다르다) 성격도 송주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좋았다.

이민우 배우는 고운 심성을 갖고 있는데 그 점이 사람들을 묘하게 매료시키고 스크린에서도 그게 보인다.

처음이지만 잘 해보고자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게 좋았고, 장면 장면마다 신선한 연기를 보여줬다. 꾸며낸 연기가 아니라 그저 자신으로 연기한 것 같아서 좋았다. 이민우 배우가 연기를 할때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장면이 더 지속됐으면 했다.


- 장유상

송주가 신인이기에, 주연 역으로는 중심을 잡아줄 노련한 배우가 적합하다 생각했다.

좀처럼 원하는 배우가 물망에 오르지 않다가, 장유상 배우를 보고 그가 오디션장을 나가자마자 재욱이와 함께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이 영화가 성립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느낌!

장유상 배우는 우리와 같은 동네에 나고 자라서 같은 학교를 다녔고, 비슷한 것들을 경험했는데 그 모든 것 또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장유상 배우도 우리처럼 학창시절에 랩을 했다.

똑똑하기도 하고 천진하기도 하고 시니컬하기도 한 주연이를 소화할 배우는 장유상밖에 없었다.


- E SENS

우리 둘다 이센스의 팬이고 특히 ‘The Anecdote’ 앨범을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진짜 많이 들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삶을 보며 송주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래퍼라 생각했다.

가사를 통해 드러나는 이센스의 과거와 송주의 삶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이센스는 힙합씬에서 위상이 높고 랩을 잘하는 걸 넘어 독보적인 면이 있다. 보통 그 정도 급의 래퍼들은 레이블을 만들거나 예상되는 행보가 있는데, 이센스는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의 랩은 소위 ‘플렉스’를 내세우기보다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건 래퍼 쿠딕이 가고자 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 Wu-Tang Clan

이 영화가 지금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과거 정서를 끌어올 수 있도록 사용된 장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영화상에 밀림을 부활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니악한 주연의 취향이다.

주연은 스트리밍 시대에 CD를 콜렉팅하고, 국힙과 외힙의 역사를 꿰고 있는 힙합박사다.

“Bite a fake, 너한테 우탱클랜을 강요한 적 없지만”

주연은, 이센스가 좋아서 기원도 모르고 따라부르던 송주를 좀 더 딥한 힙합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가 듣던, 이센스가 듣던, 주연이 듣고 송주가 듣게 된 힙합의 세계로, 이 영화도 누군가를 인도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


- 존경하는 래퍼들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가슴설레었다. 래퍼들은 퍼포머이고 기본적으로 연기자의 기질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동근이나 윌 스미스, 스눕독처럼.

올티는 학창시절 실제 MNG 리더 형과 유사한 느낌이 있어 꼭 캐스팅하고 싶었다. 기존의 반항적인 이미지를 가져오되 살짝 비틀어 부잣집 아들로의 전복을 시도했다.

올티와, MNG 부리더 역을 맡았던 브레이는 녹음실에서 후시녹음을 하는 상황까지도 있었는데 황송하기도 하고 너무 영광이었다. 하지만 둘 다 디렉션을 줄 것도 없이 한번에 OK가 나버려서 역시 프로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브레이도 언프리티 랩스타 무대에서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아 직접 섭외를 한 래퍼였고, 까메오로 나오는 JJK는 사실 어렸을 적 우상이었다. 우연히 라이브공연을 보게 됐는데, 세상에서 제일 라이브를 잘한다 생각하고 곡도 찾아들으며 학창시절 한동안 내 머릿속을 꽉 채우던 래퍼다. 그런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④ Anecdote


- 송주아빠는 주연이가 송주의 친구로 곁에 있어줬으면 한다. 문자 그대로 ‘양날의 검’인 주머니칼을 송주에게 주길 꺼려했지만, 유사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주연에게는 선뜻 내준다. 주연이를 신뢰하는 것도 이유겠지만, 정말 아들이 아니어서이기도 하리라. 반면, 상희같은 친구에겐 화를 내며 무시한다. 어렸을 적 친구 부모님들의 기억이다. 부모들은 항상 친구들을 가리는 것 같다. 송주아빠처럼 대놓고 티를 내느냐 덜 내느냐의 차이일 뿐.


- 어렸을 때 프리스타일을 잘하고 싶었다. 벽보고 연습도 했는데, 늘진 않더라.

Jin이라는 중국계 래퍼가 프리스타일 배틀에서 흑인 래퍼들을 꺾으며 압도하는 장면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그 사람은 무조건 상대 래퍼의 랩네임으로 라임을 맞추며 시비를 걸었다.

프리스타일은 힙합 문화에서 중요하고 특별함을 주는 요소이다. 프리스타일을 못하면 부끄럽고 상대방보다 잘하면 위너다.


- 송주가 MNG 멤버들 앞에서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민우 배우에게 해당 장면을 진짜 프리스타일로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가사를 생각해 오면 이 장면은 완전히 가짜가 될 거라고. 근데 그 앞에 MNG 리더 역을 맡은 프리스타일 랩의 최강자 올티가 앉아 있었다. 이민우 배우가 많이 부끄러워했다. 영화를 보면 그 장면에서 송주의 얼굴이 빨개지고 핏대가 선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이렇게 탄생한 장면은 날것의 기운을 담을 수 있어 어떻게 보면 다큐적인? 그 자체로 흥미로운 순간이기도 하고 힙합영화로서의 면모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성장서사의 관점에서 볼때도 중요한 지점에 있는 씬이라 우리 영화의 여러 결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 가사는 모두 배우들이 직접 썼지만, 재욱이와 내가 쓴 가사가 딱 한 군데 들어간다. ‘라임크라임’의 훅인데, 우리가 불렀던 ‘라임크라임’에서 그대로 따왔다. “라임크라임 끝나지 않을 게임, 너와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인생게임. 라임크라임 끝나지 않을 게임, 힘이 들땐 우릴 불러 우리가 세상의 메인.” 많은 컨펌에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던 이민우 배우가 유일하게 대놓고 불만을 드러낸 대목이다. 아무래도 저 훅이 요즘 쓰이는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래퍼로서 용납이 어려웠을 거다. 연출적인 판단으로 결국 강행했다.ㅎ


- 학창시절, 공연을 보러 간 클럽 화장실에서 나란히 변기에 오줌을 누고 있었는데, 데프콘이 옆자리로 와서 오줌을 눴다. 평소 그의 광팬이었던 우리는 신나하며, 재욱이는 옷의 등판에 싸인을 받았었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 그대로 극화되었다. 근데 촬영 당일날 웬일인지 소변기가 하나 뜯어져 있었다. 원타임 2집의 오줌싸는 남자 네 명의 뒷모습 앨범자켓을 오마주로 담고 싶었기 때문에 소변기가 하나 모자라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현도에게(조연출) 그냥 허공에서 오줌싸는 시늉을 하다가 태연하게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소변기 없는 게 그냥 다 보이게. 결과적으로는 내 취향에는 정말 맞는 장면이 나왔고, 의외로 그 장면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통제 바깥의 순간 선택이 활기를 남기기도 한다.


- 송주의 집은 이혼가정이지만 송주는 엄마와도 아빠와도 사이가 좋다. 반대로 주연의 집은 유복하지만 부모님이 통화상으로밖에 등장하지 않는 의도적인 대비를 줬다. 영화상에 등장하는 개 CCTV는 주연 부모의 시선을 의미한다.

주연에게 파출부 아줌마는 부모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악의 없이 줬던 상처들이 아줌마 안에는 쌓여갔고. 아줌마가 떠나간 후에도 주연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일은 주연 안에서 보기보다 큰 사건이었고, 소중한 사람이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송주에게 투영하기 시작한다.


- 이 영화는 예전처럼 곁에 있진 않지만 내 안에 소중히 남아 나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힙합일수도 있고, 열정일수도 있고, 그시절 우정일수도 있다.

나는 곁에 재욱이가 있어서 반정도는 그때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정말 고맙다.


- 라임크라임 후반작업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께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한게 못내 아쉽다.

이제야 자랑스런 모습을 보여드리나 싶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며 이센스의 ‘The Anecdote’를 많이 들었었는데 이 곡이 그때와는 다르게 와닿는다.

개봉 전날도 이 노래를 들으며 각오를 다졌던 기억이 난다.

내 길을 걸어왔고, 내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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