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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정 Apr 23. 2023

MBTI 극 J형의 삶이란

꿈목록 버킷리스트 열차

MBTI에서 나는 극J형이다. 

계획이 이루어졌을 때, 온몸에서 도파민이 폭죽처럼 터지는데 그 짜릿함은 거의 감동이다.

목표를 일단 세우고, 그것을 완수할 때까지 철저하게 루틴적이다. 

세상이 두 쪽나도 몇 년이 걸려도 이루어질 때까지 하고 또 한다.

덕분에 이루어 놓은 것도 제법 많은 편이다.


'인생 뭐 별거 있어? 그냥 재미나게 살자고들 하는데 그게 도대체 어떤 건가요?'


선배 한 분은 내게 어떤 패턴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을 벌이고, 그것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 연락이 없다.

그것이 다 끝나면 전화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깊은 허탈감과 공허감이 깃든 똑같은 말들을 반복해 왔다는 것이다.


'이제 정리해야겠어요.'

'무의미해요.'

'아무런 연관이 없어요.'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삶을 쇼핑하며 사는 느낌이에요.'


이런저런 고해성사를 실컷 하고 나서는 또다시 잠적한다.

궁금해서 전화를 걸면 에너지가 넘치는 말투로 '요즘 너무 바쁘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삶거리를 찾아다니는  사냥꾼과 같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마도 버킷 리스트가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존 고다드의 127가지의 꿈 목록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너무 신선했다. 

홀린 듯이 그 자리에서 나도 꿈 목록을 작성했다.

그 첫 번째 목록이 '유럽 여행'이었다. 

문득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홀연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중에 책 쓰기, 대학강단에 서보기, 내 사무실 갖기 등이 있었다.

모두 가시적인 성과물이었고, 남들도 인정해 줄 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강력하게 꿈을 끌어당겨주는 버킷 리스트의 추종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것들의 상호 연관 관계, 왜 해야 하는지, 나는 즐거운지, 그런 것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냥 도장 깨기 처럼 전진할 뿐이었다.

해보고 싶어서,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하니까 등의 연유로 흥미진진한 계획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인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단체 탁구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었다.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몇 달간 탁구 레슨을 받았다.

그때 비싼 라켓과 공, 옷과 신발들을 처음으로 구입해야 했다.

준우승이라는 쾌거 이후 멤버들은 흩어졌고, 탁구는 그 이후 치게 되지 않았다. 

벌써 7년 전인데도 탁구 장비들은 집 안에 아직도 굴러다니고 있다.


'그런 잔해들이 뭐 한 두 개이겠는가.' 


엊그제 쓰레기를 버리려고 문을 나서는 순간 현관문 비번을 잊은 것 같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도 안 가지고 나왔고, 이미 문은 닫혀 잠겨버렸다. 

침착하자, 일단 쓰레기를 버리고 오자,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이 공허한 느낌은 뭐지? 

당황하며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치매? 알츠하이머? 온갖 상념으로 식은땀까지 났다. 다시 올라와 현관문 도어록 앞에 섰다. 

손이 기억하는 대로 맡겨보았으나, 삑삑 소리만 내다가 먹통이 되기를 수차례...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을까, 그러다가 어찌어찌하다가 겨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많은 일들로 과부하가 걸린 것일까?'


그래, 버킷 리스트는 존 고다드가 고안한 그만의 창의적인 인생 열차였다.

재미있어 보여 앞뒤 재지 않고 나도 냉큼 운전대를 잡았다.

클라이밍, 등산, 당구, 테니스, 드럼, 배드민턴, 바리스타 등 버킷 리스트 차량은 점점 길어졌다.

온갖 잡동사니를 실은 채, 누더기가 된 채 덜그럭거리며 운행 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팟빵, 유튜브까지 시작했다!

이놈의 극 J형은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버킷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모양이다.


'목표가 포착되는 순간, 탱크로 돌변하며 태양을 향해 이카루스처럼 돌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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