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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도, 빌딩도 한 번에 거래 : R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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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WA는 실물 자산, Real-World Asset의 줄임말입니다. 이 기술의 핵심 목적은 현실 세계에 묶여있던 자산들을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장부 위에 올려, 전 세계 누구나 24시간 내내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수십억 원짜리 빌딩, 비상장 기업의 주식, 고가의 미술품처럼 과거에는 거래가 어렵고 복잡했던 자산들의 유동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이 기술의 지향점입니다.

RWA라는 개념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 역시 현금이나 미국 국채와 같은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RWA의 가장 성공적인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RWA는 그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며 둘 사이에는 명확한 목적의 차이가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의 목적은 가치 변동이 없는 교환 수단, 즉 1달러라는 특정 화폐의 가치를 일대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산의 가치가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 생태계 내에서 안정적인 지불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RWA는 자산 자체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빌딩을 토큰화한 RWA는 1달러에 고정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빌딩의 시장 가치가 오르면 토큰의 가치도 함께 오르고, 임대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배당받습니다. 채권을 토큰화했다면 정해진 이자를 받습니다. 즉, 자산의 가치 변동과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토큰 보유자가 그대로 가져가는 투자 자산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제 RWA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작동 원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오프체인, 즉 블록체인 밖의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준비 단계입니다. 토큰화할 실물 자산을 먼저 선정합니다. 이 자산의 가치를 공신력 있는 기관이 평가하고, 법적인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합니다. 그리고 이 자산을 법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특수목적법인이나 신탁사에 안전하게 보관, 즉 신탁합니다. 이 과정이 부실하면 디지털 토큰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 현실의 자산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연결하는 브릿지 단계입니다. 오라클이라는 기술이 이 역할을 수행하며, 실물 자산의 가치, 소유권 정보, 이자율 같은 데이터를 블록체인 안으로 안전하게 가져옵니다. 이 데이터가 정확하고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온체인, 즉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을 발행하는 단계입니다. 신탁된 실물 자산의 가치만큼, 그 자산에 대한 권리를 증명하는 디지털 토큰이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자동화된 계약 프로그램을 통해 발행됩니다. 투자자들은 이 토큰을 구매함으로써 해당 실물 자산의 일부 지분을 소유하게 되며, 임대료나 이자 같은 수익이 발생하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자동으로 배분받을 수도 있습니다.


RWA 기술의 비즈니스 적용 사례

RWA 기술은 금융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술 자체가 금융 상품으로 판매되는 사례입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BUIDL이라는 토큰화된 펀드를 출시했습니다. 이는 미국 국채나 단기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로, 투자자는 펀드의 지분을 토큰 형태로 보유합니다. 블랙록이 이 기술을 활용한 이유는 기존 펀드 시스템의 근본적인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투자자는 24시간 언제든 이 토큰을 거래하거나 환매할 수 있으며, 이자 수익은 매일 토큰으로 자동 지급됩니다. 이는 기존의 T+2일, 즉 거래 후 이틀이 지나야 정산이 완료되는 시스템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이 펀드는 출시 이후 수천억 원의 자금을 끌어모으며 RWA의 가능성을 증명했습니다.

두 번째 역시 기술이 상품화된 경우로,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들이 대표적입니다. 과거에는 수백억 원짜리 강남의 상업용 빌딩에 일반인이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토큰화 플랫폼은 빌딩의 소유권을 수백만 개의 작은 토큰으로 나누어 발행합니다. 투자자들은 만 원, 십만 원 단위의 소액으로 이 토큰을 구매하여 건물 지분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은 중개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얻고, 투자자들은 적은 돈으로 우량 부동산에 투자하고 매달 임대 수익을 배당받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됩니다. 건물 소유주 입장에서도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기업이 내부 운영 효율화를 위해 이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입니다. 고가의 와인이나 명품 시계를 유통하는 회사는 진품 증명과 재고 관리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합니다. 한 고급 와인 유통사는 RWA 기술을 도입해 와인병 하나하나에 대한 소유권과 생산지, 보관 이력 등을 블록체인에 기록한 디지털 토큰을 발행합니다. 이 회사가 기술을 도입한 이유는 복잡한 재고 관리 절차를 단순화하고 위조품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통해 재고 관리 비용이 크게 절감되었고, 소비자들은 구매하려는 와인의 모든 이력을 투명하게 확인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브랜드 가치 상승과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네 번째는 민간 대출, 즉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에서의 활용입니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대한 대출 채권은 유동성이 매우 낮아 한번 대출이 실행되면 만기까지 자금이 묶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RWA 기술을 활용해 핀테크 기업들은 이러한 대출 채권들을 모아 하나의 풀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토큰을 발행합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이 토큰을 구매함으로써 다양한 중소기업 대출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대출을 실행한 핀테크 기업은 자금을 조기에 회수하여 새로운 대출을 실행할 수 있게 되고, 투자자들은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처를 확보하게 됩니다.


기술 도입의 한계점 및 해결 방안

RWA는 막대한 잠재력을 지녔지만, 현실화를 가로막는 명확한 한계점들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장벽은 법적, 규제적 불확실성입니다. 빌딩이나 채권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토큰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증권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복잡하고 엄격한 기존의 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규제를 모두 준수해야 합니다. 각국 정부가 이 새로운 형태의 자산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제할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처음부터 규제 당국과 긴밀히 협의하며 증권형 토큰 발행, 즉 STO의 형태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 기업들은 규제 준수를 자동화하는 컴플라이언스 솔루션을 개발하여 이 장벽을 낮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현실 세계와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데이터의 신뢰성 문제가 있습니다. 오라클이 해킹당하거나 잘못된 부동산 가치, 잘못된 이자율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전송한다면, 그 위에 발행된 토큰의 가치는 순식간에 붕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술적 해결책으로 여러 데이터 소스를 교차 검증하는 탈중앙화된 오라클 네트워크를 사용하거나, 데이터 검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을 두는 방식으로 보완되고 있습니다.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자산 보관의 신뢰 위험이 존재합니다. 토큰은 블록체인 위에 있지만, 그 토큰이 표방하는 실물 자산, 예를 들어 금괴나 미술품은 현실의 창고에 보관됩니다. 만약 이 자산을 보관하는 신탁사나 관리 기업이 파산하거나, 자산을 훼손하거나, 몰래 빼돌린다면 토큰 소유자는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 문제는 엄격한 법적 계약과 정기적인 외부 독립 감사를 통해 실물 자산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신용도 높은 대형 금융기관이 이 보관 업무를 맡도록 함으로써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향후 전망 및 산업 내 영향력 분석

RWA 기술은 향후 몇 년간 금융 산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과 같은 기관들은 이 시장이 2030년까지 16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미래에는 단순히 자산의 소유권을 토큰화하는 것을 넘어, 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 흐름 자체가 프로그래밍되는 동적인 자산 토큰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상업용 빌딩 토큰을 보유하면 매달 임대료 수익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자동으로 토큰 보유자들의 지갑으로 분배되고, 이 토큰을 담보로 즉시 대출을 받는 등의 복합적인 금융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지대합니다. 우선 탈중앙화 금융, 즉 디파이 시장에 막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디파이 시장은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를 담보로 하는 투기적 성격이 강했지만, 미국 국채 이자나 부동산 임대료와 같은 안정적인 실물 수익이 블록체인으로 유입되면서, 디파이는 비로소 전통 금융과 경쟁할 수 있는 안정적인 투자처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전통 금융 기관들 역시 이 변화를 주도하거나, 혹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입니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RWA를 활용하여 중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 새로운 투자 상품을 출시하고, 24시간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여 경쟁력을 강화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RWA 기술은 과거에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전통 금융 시장과 디지털 자산 시장을 하나로 융합하는 거대한 다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는 유동화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모든 종류의 가치를 시장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자본 시장의 접근성을 전례 없이 확장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작성자: ITS 28기 권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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