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
딱 하나의 계절을 고르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름을 가리킬 것이다. 거리의 녹색이 가장 짙어지는 여름날의 풍경과 장마가 찾아오면 눅진해지는 습기를 포기할 수 없다. 온전한 사계절을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온통 여름만을 느끼고 싶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여름의 태양 아래서 민소매에 짧은 치마를 입는 게 좋다. 옷을 가볍게 입고 신발은 워커를 신어 큰 보폭으로 걷는 것도 좋고, 달라붙는 바지에 힐을 신고 거울에 비친 나를 힐긋 쳐다보는 것도 좋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콧등에 가끔 손등을 가져다 대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는 것도 좋다. 나의 모든 사랑이 여름날 시작되는 것처럼 나는 여름마다 습관적으로 사랑을 하니 나의 세상은 여름의 진창일 수밖에 없다.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숨을 참고 갈비뼈가 드러난 내 배를 보는 것도, 곳곳에 멍이 든 다리를 내려다보며 허벅지 살이 얼마나 잡히는지 가늠하는 것도 좋다. 약간의 강박을 동반하지만 그렇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여름의 무더위와 그 지독한 열기가 좋다.
겨울이 싫은 이유는 말하기에 입 아플 정도로 많지만, 우선 첫 째는 내 몸을 감싼 여러 겹의 겨울옷이 싫다. 몸은 옷에 맞춰진다고 하지 않는가. 펑퍼짐한 옷 안으로 툭 튀어나온 아랫배도 감출 수 있고 통 큰 바지로 잔뜩 부은 다리도 가릴 수 있으니 내 몸은 겨울만 되면 부풀어 올라 통통해진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나태함과 게으름 속으로 나를 밀어 넣어서, 나는 겨울이 되면 슬픈 돼지 증후군에 걸렸다가 의지박약의 ‘박’이야 말로 박서령의 ‘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두 번째로는 밤이 길어 싫다. 내 슬픈 우울을 달랠 때면 속으로 밤을 너무 길게 보내지 말자, 하고 다짐한다. 누군가 슬퍼 보이면 밤을 너무 길게 보내지 말라고 똑같이 말해 준다. 밤이 길면 밤이 아닌데도 밤처럼 느껴지고 온 세상의 조명이 꺼진 듯해 곳곳에 어둠이 드리우며 분명 밤인데 아직 아홉 시도 넘지 않은 시간을 탓하게 되기 때문이다. 잠들기엔 이른 시각이니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나는 대부분 술을 찾는다. 누군가 너는 애주가가 아니라 의존증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다가 이렇게 (속으로만) 답했다. 애주가나 의존증이나 술을 찾는 건 똑같지 않느냐고. 그러면 되었다.
유튜브를 보다가 인간의 3대 영양소는 니코틴, 알코올, 카페인이라는 말을 듣고 박수까지 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영양소는 것은 가장 해롭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겐 특히나 탄수화물만큼 중독적이라는 것인데 너무 정확한 비유가 아닌가 싶었다. 그 해로운 알코올은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불필요한 실수를 저지르게 만든다. 그럼 술을 안 마시면 되지 않는가, 같은 질문은 술에 크게 데인 적 없는 내게 전혀 와 닿지 않아 문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라면 살을 빼고 싶을 때마다 술부터 끊자는 결심을 해보는 것인데, 가장 편한 원 푸드 다이어트는 온종일 며칠 내내 술만 먹는 것이고 그렇게 술로 다이어트를 하다가 지금 라마단 기간이야? 라는 대학 시절 농담이 생각나 그만두었다. 모든 것을 유머라고 치부하기엔 점점 눈치 볼 게 많아지는 이십 대 중후반에 접어들었다. 그러면 삼십 대가 되면, 사십 대가 되면 얼마나 더 눈치를 봐야 하는 걸까, 생각하다가 과연 눈치를 보게 될까? 라는 생각으로 끝나 한숨만 내쉬었지만.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보단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는 게 나을 듯하고 그 판단이 바로 겨울은 여러 모로 싫다는 것이다.
여름이었다면 아직 날이 밝으니 집 밖을 산책할 수도 있고, 그래도 날이 밝으니 괜히 어딘가를 들러 사지도 않을 것들을 구경하다가, 이제야 좀 어두워지는구나 하며 저녁을 먹고, 드디어 해가 졌구나 하고 시간을 보면 벌써 아홉 시다. 그러면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본다. 가끔은 책을 읽고, 가끔은 원고를 보다가 눈을 뜨면 아침이다. 그러니까 이른 새벽부터 해가 떠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새벽의 안개 낀 하늘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원론적으로 겨울이 싫은 세 번째 이유는 너무 춥다는 것이다. 추위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면 태세의 동물들처럼 나를 동그랗게 말아 방구석에 처박아 놓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회사 안에서 간단히 밥을 먹거나 아예 굶어 버리는 내가 추위에 떨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바람에 자꾸만 허기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밥을 든든히 먹으면 끈적한 졸음이 몰려온다. 조금 졸다가 잠에서 깨면 짜고 매운 점심에 온몸이 퉁퉁 부어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진다.
아직 온전히 찾아오지도 않은 겨울에 질려 버린 나는 선배님과 밥을 먹으러 갔다가, 오늘로 출판사에 입사한 지 딱 일 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 내가 파주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는다는 건 이곳에 온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는 거지. 그래도 잘 버텼구나, 그런데 아예 파주로 들어와 버린 이상 앞으로 계속될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는 겨울마다 파주의 독한 추위를 탓하며 계속해서 합리화에 젖어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무언가를 탓하며 살 수는 없겠다는 기특한 생각에 다음 일 년이 찾아올 때까지 겨울을 잘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거였고, 왠지 글을 쓰면 밤이 길어도 괜찮을 듯하고 술을 마셔도 글을 쓸 것 같고 글을 쓰다 보면 교정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더 이상한 것은 왠지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살도 빠질 것 같았다.
여름과 겨울 중 단 하나의 계절 속에서 살 수 있다면 나는 누가 먼저 채가기 전에 여름을 골라 품 안에 숨길 것이다. 그런데 있잖아, 그럴 수 없는 거잖아. 그래서 여름과 겨울을 모두 가져야겠다는 이상한 욕심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욕심은 나의 의지박약이 더 무거운 탓에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리기 일쑤지만, 문득 내가 일 년을 파주에서 잘 보냈다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일 년을 자꾸만 기대하게 만든다. 나는 그 묘한 마음을 겨울의 진창에 걸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