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커피를 사랑한다.
눈 뜨자마자 커피를 찾기 시작해서 심지어 자기 전에도 마신다.
예전에 일할 때는 믹스커피를 하루에 10잔 정도 마셨다고 하니 중독(?)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텀블러 500ml 정도에 내가 직접 원두커피를 타준다.
그것도 부족한지 가끔 당이 필요하다며 믹스커피나 다른 달달한 종류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몸에서 커피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단다. (그냥 먹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닌가?)
카페에 들어서면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면 커피로 시작하고 커피 관련된 메뉴가 먼저 나열되어 있다.
나는 한참을 지나 커피와 관련 없는 다른 음료 칸을 눈으로 훑는다.
이럴 때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 종류를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매번 먹고 싶은 것이 달라지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저들도 남편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일까 궁금하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잠을 쫓기 위해 친구들이 커피를 한 잔씩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그때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커피 향이 썩 좋지 않았고 까만 물이 맘에 들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첫 MT를 가서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선배가 커피를 타 줬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먹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커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날 먹은 술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커피를 전혀 손도 대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못 마시겠다고 하면서.
이런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어떻게 커피 한 잔 마시지 않으면서 버티냐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친구는 캐러멜 마키야또는 커피 맛이 전혀 나지 않으니 한 모금 마셔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커피 맛이 나지 않을까 궁금해서 한 모금 입술에 살짝 대보았다.
입술에 닿는 순간 씁쓸한 커피 맛이 느껴졌다.
쓴 맛이 나서 못 먹겠다고 하자 친구, 어리둥절해한다.
이건 커피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내 미각이 커피에 예민한 건지 커피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쩌겠나.
사람들을 만나 차를 마실 경우가 꽤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때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고 얘기해야 했다.
모두 커피로 통일된 가운데 동떨어진 내 메뉴 하나.
그게 좀 튀는 것 같기도 하고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먹지 못하는 음료를 시킬 수는 없지 않나.
예전엔 이런 나를 이해 못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뀐 듯하다.
커피 못 먹는 사람들도 있더라면서 이해해 주니 말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예전엔 커피 향도 싫어했는데 지금은 매일 남편 커피를 타주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지 괜찮다.
커피가 약간이라도 함유된 음식(티라미수, 커피 사탕 등)은 먹으면 뱉었는데 요즘엔 먹을 수 있다.
즐겨하지 않을 뿐이지.
임신하면 원래 먹지 않던 음식이 당긴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럴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커피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그럴까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직 더 나이를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냥 커피 자체를 즐겨하지 않는가 보다.
쓴 맛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기엔, 다른 음식은 잘 먹는다.
쌈채소, 씁쓸한 나물 등에서 느껴지는 쓴 맛은 맛있다며 먹으니까.
예전에 어른들이 커피는 어른이 되어야 마실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덜 된 것일까?
결혼하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나이만 먹었지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에 내 몸에서 커피를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예전에 피터팬 증후군이 조금 있었던 나이기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아니, 내가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의문이 든다.
남들 다하는 거 안 하면 뒤쳐지는 거라고 배웠던 것이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커피 안 마실 수도 있지.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모두 다르니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눈치 보지 않고 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