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아들.
1학년 2학기때부터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다.
학기 초에 선생님께서 받아쓰기 급수표를 나눠주시면,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연습한 후 한 급수씩 받아쓰기 시험을 치는 것이다.
틀린 문제는 3번씩 쓰면서 익히라고 숙제도 내주신다.
아들에게 먼저 공책에 쓰면서 익힌 후 준비가 되면 엄마가 받아쓰기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몇 번 연습한 후 약간은 긴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불러 달라고 한다.
난 그냥 책 읽듯이 불러줬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며 띄어쓰기할 부분은 충분히 띄어서 읽으라고 하고, 문장부호도 이야기해 주신다며 그렇게 불러 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아니, 이렇게 다 알려주는 것이 받아쓰기라고?
나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요즘 이런 말하면 안 되지?)
어쩔 수 없이 요즘 트렌드에 맞춰 요구하는 대로 불러준다.
집에서 연습할 때 아들의 글자를 보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글자들이 다 급하게 어디로 도망가는 줄 알았다.
또박또박 썼으면 좋겠는데, 팔이 아프다며 갈겨쓴다.
(아... 이건 나도 인정. 학창 시절에는 엄청 이쁘게 썼는데... 지금은 나도 갈겨쓰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냐고 말했는데, 학교에서 받아쓰기해 온 공책에는 반듯반듯한 글자가 적혀 있다.
이렇게 잘 쓸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썼다고?
집에서 연습할 때도 좀 잘 쓰면 좋겠지만 집에서는 어림도 없다.
힘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나?
그래도 이젠 집에서도 조금씩 잘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예전엔 이 글자가 뭔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다면 지금은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니까.
예전엔 공책에 연습을 한 번 한 후에 나에게 불러달라고 하더니 요즘엔 그냥 써보겠다고 한다.
무슨 자신감인지...
하다 막히면 중간에 그제야 연습하고 쓰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는다.
일단 다 쓰고 보자고.
그런데 헷갈려하는 것 1~2개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맞다.
'나보다 나은데?' 속으로 생각한다.
아이가 쓴 글자들에 동그라미와 체크 표시를 한다.
체크 표시한 것은 틀린 것으로 다시 확인한 후 조금 더 연습하게 한다.
그렇게 1년 정도 했나 보다.
어느 날, 첫째 아들이 나에게 얘기한다.
"엄마, 엄마도 받아쓰기해 봐요. 맨날 나만 하잖아요. 그러니 엄마도 해봐요."
아니, 갑자기 왜 불똥이 나에게 튀는 것인가?
받아쓰기 초등학교 때 해보고 안 해 봤는데?
자기는 어떤 급수에서 시험을 볼지 선생님께서 미리 알려주시는데 나에게는 그러지 않겠단다.
괜히 긴장된다. 아이에게 제대로 쓰라고 해놓고 나는 제대로 못하면 조금은 창피하기도 하고 말이다.
연습을 할까 하다가 귀찮다. 그냥 불러보라고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아들, 신났다.
자기가 문제를 내고 내가 써야 하는 상황이 즐거운가 보다.
다행히 그렇게 어렵지 않다. 2학년 받아쓰기라 그런가?
글자도 되도록 갈겨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썼다.
다 쓴 다음 아들에게 주니 채점을 시작한다.
두근두근 조금은 긴장된다. 틀릴 수도 있다고 항상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다 맞다.
그런데 아들은 나에게 태클을 걸고 싶었나 보다.
내가 체크 표시하는 것이 싫었는지 다 맞은 것에 체크 표시를 하나 한다.
그러고는 '잘 좀 쓰세요.'라는 코멘트와 얼굴 표정을 그려놓았다.
저 정도면 잘 쓴 것 아닌가? 싶다.
둘째 아들이 와서 보더니 "형, 엄마 이 정도면 잘 썼네. 다 알아볼 수 있잖아." 내 편을 들어준다.
첫째 아들은 엄마라고 매번 문제를 내고 채점만 하는 것이 조금은 못마땅했나 보다.
그래서 나도 졸지에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학생의 기분을 느껴보라는 것일까?
나도 충분히 오래전에 느껴봤는데... 지금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들 덕분에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